성인들 가르침/현대선지식들법문

해골이 나의 본래 면목

무한진인 2023. 6. 23. 22:58

 

올해는 눈도 많이 오고 춥기도 많이 추었습니다.

대중들 께서는 지난 삼동 안거 동안 건강하게 잘 지내셨습니까?

노골은 최근 몇 년간 여름과 겨울을 무문관에서 지내는데 아주 편하고 좋습니다.

 

왜 이렇게 편하고 좋은가, 큰 도인이 돼서 그런가 했더니, 그건 아니고,

나이가 들어 이빨이 빠지고 별로 구할 바가 없으니 조금씩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구할 바가 없으면 이렇게 좋다는 걸 진즉에 알았으면 젊어서부터 그렇게 할 걸,

다 늙어서 뒤늦게 알았으니 좀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도 되고 그럽니다.

 

여러분도 중이고 나도 중이니 오늘은 한 가지 물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깨닫고자 중이 되었습니까?

지난 석 달 동안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누가 좋은 대답이 있으면 손들고 한 말씀 해보기 바랍니다.

 

노담은 언젠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 내몸>이란 게송을 쓴 적이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남산 위에 올라가 지는 해 바라보았더니

서울은 검붉은 물거품이 부걱부걱거리는 늪

이 내 몸 그 늪의 개구리밥 한 잎에 붙은 좀거머리더라.

 

무슨 말인가 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허망하고 무상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태어난 모든 것은 잘난 척 해봐야 누구나 늙고 병들어 죽어갑니다.

개구리밥에 붙은 좀거머리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평생 중노릇을 하고도 이것 이상은 깨달은 바가 없습니다.

뭐 대단한 소식을 기대한 분은 실망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궁구해 봐도 이것 이상 무슨 진실이 있겠습니까.

 

뒤돌아 보면 나도 한때는 푸른 청춘이 있었고 건강했습니다.

하고 싶고 먹고 싶은 것도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얼굴은 쭈그러졌고, 이빨도 다 빠지고 오갈 데 없는 노인입니다.

이게 인생이고, 이런 걸 가르쳐주는 것이 불법입니다.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가 깨달은 것도 이것 밖에 없습니다.

가끔 심심해서 경전이나 어록을 펴보아도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이

"모든 것이 무상하니 헛되게 살지 말라' 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열반에 들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제행이 무상하니 헛된 일에 빠지지 말고 부지런히 공부하라 '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다른 무엇이 더 있는 줄 알고 욕심부리고 화내고 망상 피우고 삽니다.

그러다가 노골처럼 나이들어 죽을 날만 기다릴 때가 되서야,

'아, 내가 헛발질하고 살았구나'하고 뒤늦게 깨닫습니다.

이렇게 뒤늦게 깨닫는 것을 뭐라고 합니까, 후회라고 합니다.

이런 걸 미리 아는 것을 뭐라고 합니까. 선견지명( 先見之明)이라 합니다.

 

부처님이나 역대 조사는 성정각(成正覺), 즉 정각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이 말은 무상의 이치를 선견지명, 즉 미리 알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노골은 어리석은 사람이라 미리 아는 선견지명이 없었습니다.

알아도 좀 늦게 알았습니다.

 

그러나 늦게라도 안 뒤에는 그걸 잠시하도 잊지 않으려고 방에다가 해골 모형을 갖다 놓고

눈만 뜨면 그걸 바라봅니다.

누구는 볼쌍사납다고 치우라고 하지만, 그 해골이 나의 본래면목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노골처럼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지 말고

부처님이나 역대 조사처럼 미리 알고 후회없이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진실로 내가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것을 뼛속 깊히 미리 깨닫는다면 이렇게 욕심 부리고,

잘난 척하고, 허망한 일에 집착할 일이 없습니다.

 

삼독을 멀리하면 마음의 평화, 마음의 자유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대열반이고, 대반야이고, 대해탈입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이 중노릇이 얼마나 보람된 일이겠습니까.

우리가 이런 마음으로 산문을 나선다면 얼마나 유쾌한 해제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올겨울에 수행을 잘했으니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 줄 믿습니다.

그 깨달음이 어느 정도 깊으냐, 그걸 아는 척도가 있습니다.

앞으로 닥쳐올 일을 미리 아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면

깨다음이 깊은지 얕은지 단박에 알수 있습니다.

 

늙고 병들어 죽을 것을 미리 아는 사람, 깊히 깨달은 사람은 더 이상 헛짓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해도 조금 합니다.

해봐야 허망하다는 것을 미리 알면 욕심을 부려도 덜 부리고,

잘 난척하다가도 고개를 숙이고, 허망한 것에 집착하다가도 웃습니다.

아렇게 하지 않으니 어리석다 하는 것입니다.

 

선견지명 얘기가 나왔으니 세상 얘기 한 마디 하겠습니다.

듣자 하니 지난 겨울 바깥세상에서는 적폐청산이니 정치보복이니 하며

이런 저런 갈등이 많았다고 합니다.

적폐라 주장하는 사람도, 보복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이유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산중 늙은이가 보기에는 모두 나중에 닥쳐올 일을 미리 생각하지 않고

나만 옳고 너는 그르다 하며 싸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나중에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까.

또 적폐니 보복이니 하는 일이 반복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앞일을 미리 생각하는 선견지명으로

남의 처지를 먼저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그렇게 사는 것입니까.

 

얼마전 오대산 밑에서 열린 평창 올림픽이 끝났습니다.

1등을 하고 메달을 딴 선수들은 많은 축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등수에 못들어 예선에서 탈락한 선수들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대체로 1등을 한 사람만 기억하고 못 한 사람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취업한 청춘만 잘났다 하고, 미취업자는 못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른 견해도 아니고 지혜로운 삶도 아닙니다.

1등을 못한 사람, 실패한 사람도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최선을 다한 사람은 자기 나름으로는 1등을 한 사람입니다.

최선을 다헀다면 비록 남과 견주어 1등을 못했다 해도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1등 한 사람 못지 않게, 도리어 실패한 사람,

각광받지 못한 사람을 안아주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선경지명으로 역지사지하며 사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반야지혜를 얻기 위해 수행합니다.

그리하여 바르게 보고, 미리 알아챈 사람은 나를 먼저 내세우지 않고,

허망한 일에 욕심부리지 않으며, 잘난 사람보다는 못난 사람을 안아주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마음 쓰는 법을 익히려고 지난 석 달간 문 닫고 공부했습니다.

이제 세상에 나가시면 그 공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곧 길 떠나는 여러분에게 옛날에 노담이 지은 게송하나 들려드리고 마치겠습니다.

혹 힘들거나 망상이 생기거든 가끔 떠올려 보기 바랍니다.

제목은 <내가 죽어보는 날>입니다.

 

부음을 받는 날은

내가 죽어보는 날이다.

널 하나 짜서 그 속에 들어가

눈을 감고 죽은 이를

잠시 생각하다가

이날 평생 걸어 왔던 그 길을

돌아보고 그 길에서 만났던 그 많은 사람

그 길에서 헤어졌던 그 많은 사람

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

아직도 나를 따라다니는 사람

아직도 내 마음을 붙잡고 있는 사람

그 많은 얼굴들을 바라보다가

화장장 아궁이와 푸른 연기,

뼛가루로 뿌려본다.

           (2017년 동안거 해제법어(백담사, 2018년 3월 1일)

 

                                           - 김병무,홍사성 엮음 <설악무산의 방할> 인북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