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바시슈타 요가

[바시슈타 요가] 창조에 관하여(2)

무한진인 2023. 5. 11. 21:53

 

바시슈타가 계속 말했다.

창조자 안에는 보는 자도 없고 지각의 대상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창조된 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화가의 마음 속에 있는 그림처럼 그는 우주적 의식 안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바시슈타가 계속 말했다.

창조자 안에는 과거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에 그는 이전의 까르마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신체적 몸조차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영적 실체는 태어나지 않습니다.

사멸하는 존재들은 신체적 몸과 영적인 몸이라는 두 개의 몸을 지니고 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창조자는 영적 몸만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체적 몸을 만드는 원인이 그의 내부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존재의 창조자입니다.

금팔찌같은 창조된 대상들은 그것이 만들어진 것인 금과 동일한 실체입니다.

창조자의 생각이 이 다양한 창조물의 원인이 되고 또 창조자 자체가 신체적 몸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창조물 또한 물질이 없는 생각의 내용을 정말로 지니고 있습니다.

 

창조자 안에서 한 진동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그의 생각이 우주가 되어 펼쳐집니다.

이 진동은 모든 존재의 지성으로 만들어진 미묘한 몸을 존재하게 합니다.

생각으로만 이루어진 이 모든 것은 비록 그 모습이 실재처럼 느껴지지만,

실재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꿈 속에서의 성적 즐거움이 그러하듯이,

실재라고 상상된 이 나타난 모습은 실제적인 결과들을 가져 옵니다.

이와 비슷하게 몸이 없는 창조자( 이 이야기 속의 신성한 사람) 조차 몸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창조자 또한 의식과 생각이라는 이원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의식은 순수하며, 생각은 혼란을 겪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자는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지만,

일어나 존재 안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온 우주를 지지하는 지성입니다.

그 지성 안에서 일어나는 매 생각은 하나의 형태를 일어나게 합니다.

이 모든 형태들은 순수한 지성이지만,

이것에 대한 지기 미혹과 물질적 형상들에 대한 생각으로 그것들은 물질적 형태로 굳어집니다.

악귀들은 형상이 없지만, 지각하는 자의 미혹 때문에 형상들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창조자는 그러한 미혹에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항상 영적 본성이지 물질적이지 않습니다.

창조자는 영적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의 창조물 역시 근본에 있어서는 실제로 영적입니다.

이 창조에는 원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창조물은 지고의 존재인 브라만이 그러하듯이 본질적으로 영적입니다.

공중에 있는 누각처럼, 창조가 지닌 물질성은 자신의 마음의 환영적인 투사입니다.

 

창조자는 마음입니다.

마음 즉 순수지성은 그의 몸입니다.

생각은 마음 안에 내재하고 있습니다.

지각의 대상은 지각하는 자 안에 내재하고 있습니다.

이 둘에 대한 구분을 누가 한 적이 있습니까?

 

발미끼가 말했다.

이 단계에서 태양은 현자의 말을 명상하기를 열망하고

땅의 다른 부분들을 비추려는 듯이 서쪽 언덕으로 향해 졌다.

다음 날 아침 모든 사람은 전과 같이 궁정에 모여들었다.

 

바시슈타가 대답했다.

텅 비어 있고 움직임이 없는 무(無)가 공간으로 알려져 있듯이,

마음은 텅 빈 무(無)입니다.

마음이 실재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마음은 지각의 대상들 안에서 알수 있습니다.

라마여 ! 생각은 마음입니다. 이 둘 사이는 구분이 없습니다.

영적 몸을 입은 나를 마음이라 합니다.

마음은 물질적, 신체적 몸을 존재하게 합니다.

무지, 삼사라(반복되는 역사), 마음, 속박, 불순, 어둠, 둔함 등은 모두 비슷한 말들입니다.

경험만이 마음입니다. 마음은 지각되는 것들일 따름입니다.

 

금으로 된 장신구가 금과 다르지 않듯이,

이 온 우주는 각 원자 안에 머무르고 있는 의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장신구의 모습이 금 안에 존재하고 있듯이, 대상은 주체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대상에 대한 개념을 확고히 거부하여 주체에서 없앴을 때,

외형적, 잠재적 대상성이 없이 의식만 존재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 이끌림과 혐오, 사랑과 미움 같은 악들과 세상, 너, 나 등의 거짓 개념들 또한 자신의가슴 속에서 멈춥니다. 대상화시키려는 경향성마저도 멈춥니다.

이것이 해방입니다.

 

라마가 물었다.

성스러운 분이시여!

지각의 대상이 실재한다면, 그것은 존재하기를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실재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이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바시슈타가 말했다.

오, 라마여! 하지만 그것을 이겨 낸 신성한 이들이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공간과 같은 외적 대상들과 '나' 등과 같은 심리적 요소들은 단지 이름으로만 존재합니다.

실제로는 대상적 우주도, 지각하는 자신도, 그와 같은 지각도, 공도, 둔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우주적 의식(찌뜨)입니다.

이것 안에서 다양성, 다양한 행위들, 경험들, 속박이라는 개념과 해방을 향한 갈망을 그려내는 것은 마음입니다.

 

- 스와미 벤까떼사난다 지음, 김병채 옮김 < 바시슈타 요가> 슈리크리슈나다스 아쉬람 -

 

                                                                          <도봉산 신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