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이 보이는 세상이 환(幻)이라고 하는 까닭

무한진인 2023. 4. 5. 22:02

 

- 싯따르 메쉬와르 마하리지의 <다스보드 제 13講> -

 

[제 13강 주제 : "여러분들이 이전에 한 문제를 제기한 바 있습니다.즉 '형태가 없는 것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가, 또한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지금 답변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 다스보드 제 8장 2절 1문단 -

 

우선 구도자는 깨달음을 획득하고 나서 남에게 말해야 합니다.

육신은 그 자체의 업보(행동)에 묶여 있으며, 헌신은 마치 농장과 같고, 지혜는 과실과 같습니다.

브라만은 신체기관들이 없는데 어떻게 내부에 마야를 품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한 청자(聽者)가 물었습니다.

 

브라만은 영원합니다.

마야는 겉모양입니다.

베단타에서는 원인없음(비바르타)과 원인있음(우파다나)이라는 두 가지 설(說)이 있습니다.

'원인없다'는 이론은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언가가 있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원인이 있다'는 이론은 그 원인을 직접적으로 또는 명백하게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물건이 항아리인데 그 원료는 진흙입니다.

만약 브라만이 환상(마야)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면,

이 환상의 창조과정에서 브라만으로부터 무엇인가가 빠져나가야 할 것입니다.

'앎의 힘'인 의식이 브라만이 된 것입니다.

신은 원인이고 환상은 결과입니다.

 

이원론자들에 의해 제기된 인과론(因果論, Parinamavada)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이론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객관적 세계를 실재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이 세상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실한 참나를 잊고 무지로 인해, 세상을 실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무원인(無原因)'의 이론에 따르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 의식 위에 나타납니다.

이 환상이 브라만 위에 나타났습니다.

"내가 깨어있다"는 모든 것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이 나타날지라도 브라만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설탕이 물과 섞이면, 설탕의 모양은 사라지지만,

그러나 설탕은 단맛의 형태로 거기에 남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야는 숨겨진 상태로 브라만에 잠재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이 브라만에서 어떤 다른 방식으로 나왔겠습니까?

브라만에게서 온 것이라면 그만큼 브라만에게 손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파라브라만에서 왔습니다.

물에 넣은 설탕이 녹아 버리듯이, 세상도 브라만 안에서는 사라져 버립니다.

일단 당신이 자신의 본성에 접근하면, 환상이나 마야는 사라집니다.

 

만약 파라브라만과 브라만을 분리한다면, 브라만은 원초적 환상(물라 마야)이라고 합니다.

힘과 지식(프라크리티와 프르샤, 샥티와 쉬바)은 하나이며 동일합니다.

(신에 대한)지식은 매우 미묘한 개념이나 생각입니다.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세상은 부패할 육체가 존재하는데 까지만 존재합니다.

신은 헌신자가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꿈이 지속되는 동안 꿈꾸는 사람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바탕은 아무 것도 없는 파라브라만입니다.

신은 파괴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합니다.

두려움이 없는 것은 무엇이든간에 파라브라만입니다.

 

이 ' 공(空)'상태에는 신도 없고, 남자도 여자도 없고, 무지나 지식도 없습니다.

만약 브라만(신)과 파라브라만이 같다면,

'파라'(그 너머)라는 접두사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바르타는 아무 것도 없을 때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상상력으로 인해 무언가가 있다고 느낍니다.

세상은 개념을 인식함으로써 현상화되는데, 그래서 머물 장소가 요구되지 않습니다.

 

신과 헌신자는 함께 공존하며, 전자는 후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신이란 헌신자가 그를 상상할 때만 존재하고, 신이 없다면 헌신자도 없습니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지(知)와 무지(無知)가 둘 다 없어져야 합니다.

 

진아는 5겹의 껍질 또는 덮개 속에 있습니다.

진아는 네 가지 몸과는 다릅니다.

그 네 가지 몸을 초월해서 파라브라만(절대진아)이 있습니다.

거친 물질적 육체(조대신)는 음식물질로 되어 있어서 음식의 덮개라고 합니다.

열 개의 감각기관, 다섯 가지 생명기운(프라나),그리고 마음과 지성은 마음의 덮개(미세신)를 형성합니다. 따라서 미세신 안에도 세 가지 범주(생기,마음,지성)가 있습니다.

 

아무 것도 남지 않으면 무지(無知,원인체)가 있습니다.

이것(원인체)이 지복의 껍질입니다(아난다마야 코샤).

이 망각으로 이루어진 (원인신) 덮개 안에는 행복도 슬픔도 없습니다.

즐거움이 경험되기 위해서는 낮과 밤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만약 사람이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전혀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휴식은 즐거움입니다.

잠을 자는 동안 거지일지라도 왕과 같은 행복을 얻습니다.

 

지바(에고)가 다섯가지 껍질 속에서 얽혀 있지만,

참주인(절대진아)은 그 모든 껍질 너머에 있습니다.

무(無,원인체)를 초월한다는 것은 앎(지성)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기의식의 근원, 순수 자각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망각의 상태에서 얻은 만족감은 사라지고,

충만한 자각의 상태에서 얻은 만족감이 지복으로 가득 찹니다.

 

이 순수자각상태를 사트-치트-아난다(존재-의식-지복), 옴(Om), 나라얀(Narayan), 깊은 지혜의 브라만(프라드나야나 브라만) 등과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 절대무상(無相)의 상태에서는 '내가 있다(I AM)' 존재조차도 없습니다.

이 '무상'의 상태에 어떤 이름도 붙일 수가 없기 때문에 파라브라만 또는 브라만 너머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 자신이 바로 파라브라만입니다.

 

만약 파라브라만이 세상이 되었다면 어떤 왜곡이나 변형을 겪었을 것이고,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알려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 이전에 파라브라만이 있습니다.

그 후에야 앎과 망각, 지성적인 마음,육체 등이 들어 온 것입니다.

 

본래적인 바탕은 오로지 파라브라만 뿐입니다.

파라브라만에서 '나'가 생겨 나왔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기억하지도 않고 잊지도 않습니다.

앎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든 (미세신 속에) 우주가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앎은 임신한 여성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있다'는 존재 앎에 의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신이 이 환상을 창조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신의 뜻이고 그래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본래상태 입장에서는 환상(마야)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속성없는 브라만 또는 무속성 브라만 속에 처음부터 그 환상의 성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것은 신의 의지 때문 입니다.

앎이 있는 한 환상은 실재(實在)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꿈 속에서, 아주 작은 접시 안에 담긴 거대한 코끼리를 본다면,

이것은 비현실적인 가짜라는 것을 즉각 알아차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그 작은 눈구멍으로 광대한 세상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고 해서,

이 세상이 실재하고 있는 진짜라고 말 할 수가 있을까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보여지는 세상과 모든 대상들은 무엇이든지간에 진실하지 않고 허황된 것이며,

절대적으로 거짓된 환(幻)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 <Amrut Laya (The Stateless stat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