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자아탐구 실제수행방법 및 이론 정리(77)

무한진인 2023. 1. 25. 22:52

 

질문 : 바가반께서는 어제, 우리가 '내면의' 신을 찾고 있는 동안에도 '외적인' 일은 자동적으로 진행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리 짜이따니아의 일대기에서, 그는 제자들에게 강의를 하는 동안에도 실제로 내면에서는 크리슈나를 추구하여,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일체를 잊어버리고 크리슈나에 대해서만 계속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일을 그냥 내버려두어도 괜찮을지 의문이 생깁니다. 신체적인 일에 부분적인 주의라도 기울이고 있어야 합니까?

 

마하리쉬 : 진아는 모든 것입니다. 그대는 진아와 별개입니까? 아니면 그 일이 진아 없이 진행될 수 있습니까? 진아는 없는 곳이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행위들은 그대가 그것을 하려고 애를 쓰든 않든 진행될 것입니다. 그일은 저절로 진행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가바드 기타에서)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꺄우라바 일족을 죽이는 것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들은 신에 의해 이미 살해되었다고 말입니다. 그가 할 일은, 그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그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성품이 더 높은 힘의 의지를 수행하도록 허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질문 : 그러나 제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일이 잘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마하리쉬 : 진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그 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대는 자기를 몸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일을 그대가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일을 포함해서, 몸과 몸의 활동들은 진아와 별개가 아닙니다. 그대가 그일을 보살피든 않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대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걸어간다고 합시다. 그대는 자신이 딛는 발걸음에 주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목적지에 도착해 있습니다. 그대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걷는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십시오. 다른 종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 : 그러면 그것은 몽유병과 같습니다.

 

마하리쉬 : 몽유병과 같다고요? 정말 그렇지요. 아이가 곤히 잠들었을 때 엄머가 음식을 먹이면 아이는 완전히 깨어있을 때처럼 그 음식을 먹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아이가 엄마에게 말합니다. "엄마, 나 어젯밤에 저녁 안 먹었어." 엄마와 남들은 아이가 먹었다는 것을 알지만, 아이는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이는 (자신이 아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 행위는 진행되었습니다. 한 여행자가 소달구지 위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소들은 (목적지로 가는) 여정의 도중에 움직이기도 하고, 가만히 서 있기도 하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멍애가 끌러지기도 합니다. 그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모르지만, 깨어난 뒤에 자신이 다른 곳에 와 잇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는 도중에 일어난 일들을 모른 채 행복하게 잠들어 있었으나, 그 여정은 끝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진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깨어 있는 진아는 달구지 안에서 잠이 든 여행자에 비유돱니다. 생시 상태는 소들이 움직이는 것이고, 삼매는 소들이 가만히 서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삼매는 '생시-잠',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이 자각하고 있으나 그 행위 (소들의 움직임과 멈춤)에 신경쓰지 않고, 황소들은 멍애를 지고 있지만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뜻하기 때문이다].

잠은 황소들의 멍애를 끌러주는 것인데, 왜냐하면 황소들이 멍애에서 풀려남에 상응하여 (소들의) 활동이 완전히 정지하기 때문이다.

또 영화의 예를 들어 봅시다.

영화에서는 스크린 위에 화면들이 영사됩니다. 그러나 그 움직이는 화면영상들은 스크린에 영향을 주거나 그것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관객은 화면에 주목하고 스크린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화면 영상들은 스크린과 별개로 존재할 수 없지만, 스크린은 무시됩니다. 관객은 화상(畵象)에 주목하고 스크린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화면영상들은 스크린과 별개로 존재할 수 없지만, 스크린은 무시됩니다. 마찬가지로 진아는 그 화면영상들, 활동 따위가 그 위에서 진행되는 스크린입니다.

인간은 그 장면과 활동들은 알지만 본질적인 진아를 모릅니다.

그렇기는 해도 그 화면영상들의 세계는 진아와 별개가 아닙니다.

그가 스크린을 자각하든 못하든, 그 행위들은 계속될 것입니다.

 

질문 : 그러나 영화에는 작동자(상영자)가 있습니다.

 

마하리쉬 : 영화는 지각력 없는 재료들로 만들어집니다. 전등, 화면영상들, 스크린 등은 모두 지각력이 없고, 그래서 작동자, 곧 지각력 있는 행위자를 필요로 합니다.

반면에 진아는 절대적 의식이고, 따라서 자기충족적입니다.

진아와 별개로 작동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질문 : 저는 몸을 작동자와 혼동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기타> 제18장 제61연에 나오는 크리슈나의 이 말씀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스와라는 모든 존재들의 심장 안에 거주한다. 아르주나여,

기계 위에 올려진 듯한 모든 존재를 환력(幻力,파동력)으로 빙빙 돌리면서.

 

마하리쉬 : 작동자의 필요성과 관계되는 몸의 기능들을 염두에 둔 거지요. 몸은 지긱력이 없기 때문에 지각력 있는 작동자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개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리슈나는 신이 개아들의 작동자로서 심장 안에 거주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사실은 어떤 개아도 없고, 말하자면 그들 바깥에 어떤 작동자도 없습니다. 진아는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그것이 스크린이고, 화면영상들이고, 보는 자이고, 행위자이고, 작동자이며, 불빛이고, 극장이고, 기타 모든 것입니다.

그대가 자기(진아)를 몸과 혼동하여 그대 자신을 행위자라고 상상하는 것은, 보는 자가 자신을 그 영화 속의 한 배우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배우가 (영화 속에서) 스크린 없이도 자신이 어떤 장면을 연기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자신의 행위들이 진아와 별개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경우가 그와 같습니다.

 

-마하리쉬의 복된 가르침 (탐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