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영가현각선사의 지관법문(36)

무한진인 2022. 11. 16. 21:26

 

(4) 일심(一心)으로 귀의 :

 

1) 진속불이-2

 

[본문]

그러므로 삼덕의 묘한 성품이 완연하여 어그러짐이 없음을 안다.

 

[해설]

3덕은 지금까지계속 논한 대로 법신과 반야 해탈의 3 가지 덕을 말한다.

이 세 가지 덕이 모두 각각 중도를 이루어 원만하고 자유자재하며 부족한 것이 없다.

행정은 진제 차원의 법신, 반야, 해탈을 다시 각각 속제 차원에서의 온, 처, 계와 탐,진,치와 업행을 통해 설명한다.

"그러므로 3덕이 라는 것은 음(陰), 입(入), 계(界)의 고통이 곧 법신이지, 드러나는 것(顯現)을 법신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아니다. 탐,진,치의 성품이 곧 반야이지,능히 밝히는 것을 반야라고, 이름하는 것이 아니다.

업행으로 속박에 매임을 해탈이라고 부르지, 속박을 끊음을 해탈이라고 이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와 셋이 융합하므로 어그러짐이 없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법신은 일체의 근원이므로 5온-12처-18계로 이루어진 고통의 현상세계 자체가 곧 법신의 표현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진제는 속제를 포괄하는 것이지 속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상락아정의 법신의 현현만이 법신이 아니라, 범부가 느끼는 온처계(蘊處界)의 고통도 모두 밥신이 속하는 것이다. 또 밝음만이 반야가 아니라 탐.진,치의 성품도 모두 반야에 속하고, 속박을 끊는 것만이 해탈이 아니라 업행의 속박도 모두 해탈에 속한다. 이와 같이 일체가 법신, 반야, 해탈의 3 덕(德)에 포섭된다.

 

[본문]

일심은 깊고 넓어 생각하기 어려우니 어느 것이 벗어남(해탈)의 요점의 길이 아니겠는가?

 

[해설]

법신과 반야와 해탈, 이 3덕은 모두 일심의 발로이며 따라서 모두 일심으로 귀결된다.

이렇게 일심은 일체를 포괄하기에 그 넓이 와 깊이가 무한히 넓고 깊어 그것을 온전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이 일심이 해탈의 핵심이지만, 일심의 무한한 넓이와 깊이 안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결국 어떤 수행이든 모두 해탈의 길이 될 수 있다.

어떤 수행 방법이든 일심 안에 포함된 것으로서 중생을 번뇌로부터 구제하는 해탈의 길이 될 수 있다.

행정은 이렇게 설명한다.

"근본 지혜와 깊이 명합하고 진여의 근원을 널리 비추어도 진여의 지혜는 생각하기 어려우니,

어느 것이 해탈이 아니겠는가? 일심이 총섭하니, 벗어남(해탈)의 요점이 여기에 있다.

일심은 법신과 반야와 해탈 전체를 포섭하므로 그 안에 무한한 해탈의 길이 놓여 있다.

 

[본문]

이 때문에 마음에 즉해 도를 구하는 자는 흐름을 찾아 근원을 얻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해설]

3덕이 모두 일심 안에 있으므로 일심은 일체를 모두 포함한다.

따라서 일심의 마음에서 도를 구하는 자는 곧 일체 모든 것 안에서 도를 구하게 된다.

일체 모든 것은 곧 인연 따라 현상세계를 형성하며 흐름으로 유동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일심에서 도를 찾는다는 것은 곧 일체 안에서, 일체의 흐름 안에서 도를 찾는 것이다.

도는 세상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 그 근원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흐름의 근원은 흐름 바깥이 아니라 흐름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행정은 " 그 도를 심(心)으로 여기면 날마다 쓰면서 요달하여 알고, 그 근원을 흐름으로 여기면 헤엄을 치면서 알 수 있다. 고 말한다.

도가 마음을 떠나 있지 않고, 근원이 흐름을 떠나 있지 않으므로, 흐름 속에서 근원을 알듯이 마음이 포함하는 일체 안에서 도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함허는 마음 안에 일체가 포함되어 있기에 모든 수행이 마음을 관하는 공부로 귀결된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마음을 관하는 하나의 법이 모든 수행을 총괄적으로 포섭한다. 마음을 관하여 통달하면 일체가 갑자기 끝나게 된다. 그러므로 일심을 지적하여 해탈의 요점이라고 한다.

마음을 관하는 관심(觀心)이 철저해지면, 일체의 수행이 완수된다.

그러므로 일상을 해탈의 요점이라고 한다.

 

2) 관하는 본체를 드러냄

[본문]

둘째로 그 관하는 본체를 드러낸다는 것은 단지 일념이 곧 공이고 불공이며, 공도 아니고 불공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해설]

여기서 관하는 본체는 말한 일체의 수행의 요체로서의 마음이다.

이 마음이 행하는 관이 바로 3제(諦)의 3관(觀)인 공관,가관, 중도관이다.

여기서 마음은 마음이 일으킨 분별적 념이 아니라 바로 마음 본체의 일념(一念)이다.

본체를 드러내는 것은 곧 이 마음의 일념이 공이고 불공이고 비공 비불공이라는 것을 아는 것을 말한다.

공관으로써 일념이 공관임을 알고, 가관으로써 일념이 불공입을 알며, 중도관으로써 일념이 비공, 비불공임을 안다.

행정은 "먼저 3관을 세워서 닦게 하고, 그다음 상응의 깊고 얕음을 체득하게 한다. "고 말한다.

여기에서 공,가,중 3관을 논하고 이어 마음이 그 각각에 상응하는가의 여부를 논한다는 것을 말한다.

 

-한자경 지음 <선종영가집 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