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의심할 바 없는 확신에 대하여

무한진인 2022. 11. 10. 20:27

 

의심할 바 없는 확신에 대하여

 

강의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묻습니다.

"'브라흐만의 지혜'가 사물이 아닌데 어떻게 여전히 존재합니까?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브라흐만이 행위자가 아닌데도 어떻게 모든 것을 행할 수 있으며,

브라흐만은 즐기는 자가 아닌데도 어떻게 모든 것을 즐기며,

브라흐만은 모든 것의 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어떻게 따로 떨어져 있습니까?

 

선생님은 브라흐만과 일체가 된 요기가 즐기거나 고통을 받는 동안일지라도

즐기는 사람이나 고통받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또한, 그러한 사람은 천국에서 즐기거나 지옥에서 고통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모든 사람은 누구나 출생과 죽음에 연관된 고통을 느끼는 것은 분명하지만,

선생님이 요기는 고통받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삶 속에서 많은 고통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위대한 요기는 두들겨 맞아도 맞는 것이 아니며, 울지라도 우는 것이 아니며,

힘겨운 노동을 하면서도 불평불만이 없습니까?

 

비록 태어났지만 태어난 것이 아니고, 비록 잘못을 저질렀지만, 타락하지 않으며,

비록 여러 가지 고생을 겪었지만. 고통과 괴로움을 극복한 사람입니까? "

<맨 첫줄 부터 여기까지가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한 질문 내용입니다.>

 

이와 같이 잘못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청자(聽者)들이 내놓은 추측들인데,

이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만족스러운 대답이 주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연사(演士)는 강의를 듣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여러분들은 좋은 것을 말하지만, 여러분들이 말하는 내용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여러분 자신들의 경험들을 기반으로 해서 말한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에 따라서 말을 하지만,

깨달음의 지혜(Jnsna)도 별로 없으면서도 대담하게 말한다면, 그러한 언설은 무의미합니다.

 

깨달음의 지혜가 많지 않으면, 무지(無知)의 형태로 비천한 재앙이 오게 되고,

말에 국한된 지식의 한계로 인해 괴로움에 시달리게 됩니다.

 

위대한 요기는 다른 요기에 의하여 알려지고,

위대한 진인(Jnani)는 다른 진인(Jnani)들에게 알려지며,

매우 영리한 사람 역시 또 다른 영리한 사람에 의해서 알려집니다.

 

체험이 있는 사람은 체험이 있는 사람에게 알려지고,

무심한 사람은 무심한 사람을 만날 때에 공통적인 만족감을 느끼며,

육체의 잘못된 동일시를 버린 사람은 육체의식이 없는 사람에게 알려집니다,

 

"성취한 자", 즉 싯다(Siddha)가 속박된 자와 똑같고,

속박된 자가 싯다와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두 말할 나위 없이 바보가 됩니다.

 

귀신이나 영혼에 홀린 사람과 무당(엑스시스트)은 둘 다 몸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둘 다 동등하다고 볼 수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무식하고 자기에게만 관심있는 사람이 지혜롭고 해방된 사람과 동일하게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

어떻게 옳바르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것으로 직유(直喩)에 의해서 충분히 답변이 된 것 같습니다.

이제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얻을 수 있는 목표를 가질 수 있도록 말씀 드리겠습니다.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잠시 동안 주의를 기울여서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지혜로운 사람인, 진인(Jnani)은 따로 떨어진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말을 본 사람입니다.

진아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그는 전적으로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찾습니까? 그것을 발견하면 그것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되었으므로,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사람이 만약 몸 속에서 그것을 찾는다면 거기에서는 볼 수가 없고,

만일 오 원소에서 찾는다면 거기에서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가 되면, 브라흐만은 어떤 것과도 분리되지 않습니다.

 

진인(Jbani)은 신체적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신체 안에 존재한다는 어떤 느낌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진인을 겉으로만 관찰할 때에 그의 내면 체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내면을 탐색해야 하며,

그는 영원히 그곳에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집니다.

그것을 발견한다면, 사람의 불안한 마음상태가 사라지고,

그는 어떤 속성도 없고, 영원히 변하지 않게 됩니다.

 

그것만이 홀로 절대 진아인, 파라마트만입니다.

그 안에는 환상이라는 불순물이 없습니다.

이원화로 나눠지지 않으면,그것은 욕망이나 희망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요기의 왕"인데, 그는 항상 힘들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진아 상태이며,

베다 경전의 기원이며, 브라흐만의 완전성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육체의 형태로 생각하는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육체만 보면 그가 육체처럼 보이지만, 그의 내면의 체험은 전혀 다릅니다.

그것을 발견하면 생사윤회(生死輪廻)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와 집니다.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습니까? 그러한 것은 결코 진아의 성품이 아닙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어떤 곳에서 가져 올 수 있습니까?

 

만약 속성없는 것이 출생을 하거나 죽임을 당한다면,

이러한 출생과 죽음의 개념은 자신의 상상일 뿐입니다.

 

이것은 대낮에 태양을 향해서 침을 뱉다가, 침이 자신에게 도로 떨어지거나

혹은 만약 한 사람이 내심 다른 사람에 대한 악의적인 원한을 갖고 있으면,

그러한 부정적인 영향이 스스로에게 느껴지는 것과 유사합니다.

 

진아를 깨달은 사람의 위대함을 알게 되면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만약 개가 매우 큰 소리로 그에게 짓기 시작하더라도 그의 위대함은 줄어들지 않는 반면,

개는 계속해서 개로써만 남아 있습니다.

 

진인(Jnani)은 진아의 참된 모습이지만, 무지한 사람은 그를 인간의 모습으로만 봅니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이 신(神)을 향한 것처럼, 신(神)은 같은 방식으로 되돌아 옵니다.

 

신은 형태도 없고 속성도 없지만, 사람들은 돌로 만든 우상을 숭배합니다.

돌은 부서지지만, 속성이 없는 것이 어떻게 부서지겠습니까?

 

신은 항상 모든 곳에 골고루 퍼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다수(多數)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신은 다수(多數)로 된다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진인(Jnani)은 진아 지혜로 충만해 있어서,

그 지혜 속에서 완전히 만족해 합니다.

분별력을 통해서 그는 진아 안에서 항복했으며,

실제로 그는 '진아의 참된 상태'입니다.

 

불이 나무를 태울 때 불이 나무 모양을 띠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이 나무가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장뇌는 타오르고 있을 때는 그 모양이 보여질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진인(Jnani)의 육체는 보여집니다,

그러나 일단 장뇌가 불에 다 타 버리면, 원래 공장에서 나온 장뇌 상태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일단 진인이 육체 동일시를 벗어나 버리면, 그는 다시는 육체 동일시 상태로 되돌아 올 수가 없습니다.)

 

불에 탄 씨앗은 싹이 트지 않고, 불에 탄 천 조각은 제대로 펴지지 않으며,

갠지스강과 합쳐진 하천은 다시 분리될 수 없습니다.

 

갠지스강으로 합류되기 전에는 따로 떨어져 있는 강을 볼 수 있지만,

그 후에는 별도로 떨어져 있는 강은 볼 수 없습니다.

진인(Jnani)은 외모를 가진 육체가 아니라, 모든 것에 두루 편재(遍在)해 있는 진아입니다.

 

금(金)은 철(鐵)이 아닌 것처럼, 진인(Jnani)은 결코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고 무지한 존재에게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시각 장애인이 아무 것도 볼 수 없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시각장애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꿈을 꾸면서 꿈 속의 사건에서 겁에 질린 사람은 꿈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큰 소리로 비명을 지릅니다.

깨어 있는 사람이 꿈으로 인한 두려움에 어떻게 영향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뱀 같이 생긴 나무 뿌리를 두 사람에게 보여주면,

한 사람은 겁을 먹고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나무뿌리로 알아차립니다.

어떻게 두 사람의 상태가 같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나무뿌리를 손으로 잡고 있어도 물지는 않지만,

그의 상상력 때문에 뿌리가 아닌 것처럼 보이며,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전갈이나 뱀이 누군가를 물더라도, 그 사람만 영향을 받습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그 고통에 영향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추측(推測)이 풀렸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 지식을 이해합니다.

무지한 사람들은 생사윤회의 수뢰바퀴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진아를 알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출생과 죽음의 고통을 견디어 냅니다. "

 

이 설명은 다음 절(節)에서도 계속 될 것이므로,

"정신 차려서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연사(演士)가 말합니다. (9-3)

 

<스승과 제자와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