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禪詩

경허선사 선시(禪詩) 몇수 감상

무한진인 2022. 10. 4. 23:32

 

우연히 읊음

 

새가 먼 하늘을 나는데

바라 보아도 끝이 없지 않은가

모양 있는 것으로는

궁극에 이를 수 없나니

절반도 못가서 숲이 끝나고

피곤해도 쉴 곳이 없네.

계획 잘못된 것은 모르고

멍하니 주저하네.

 

 

인생의 약(藥)

 

병든 이가 나에게 묻기를

무슨 병이기에 낫지 않는가

방장산에는 신약이 있어

먹으면 장수한다 하지만

인생이란 풀 끝에 이슬이라

또한 편안히 지냄을 얻을 수 없네.

병자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편안함조차 얻기 어렵다며 망설이네.​

 

 

인생 1​

 

천지가 이렇게 넓은데

이렇게 산다는 것 가소롭구나

반평생 벌써 지나갔으니

남은 해는 얼마나 될까

근심 걱정에 늘 시달리고

편안한 시간은 얼마나 되랴

취한 듯 깨지 못하니

공연히 주저만 하네.

 

인생 2

 

인생이란 믿을 게 없네

장가는 누구며 조가는 누구인가

안다는 사람 꼽아보니

살아남은 사람 그 몇이더냐

젊거나 늙었거나 할 것 없이

황천으로 가기는 매일반이니

몸으로 일찍 깨달아서

급히 서두르거나 주저하지 말아라.​

 

인생 3

 

가마솥에 달이는 구절초는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기늘

어린아이들은 모르고

병도 없는데 서로 구하려 하네

가만히 돌이켜 스스로 생각해 보니

병 없는 자 누가 있겠나

슬프다 인생 백년이

너와 내가 한 무덤이네.

 

인연

 

산중에서 나무꾼을 만나

잠시 이야기 함도 또한 인연이기늘

요즈음은 선비 고을에서 놀다가

석양하늘에 내려가네.

버들가지는 벌써 날라가고

나비 꿈은 아득하여 깊이 들기 어렵네

돌아 보아도 아무도 없고

먼 하늘에 까치 소리만 들리네.

 

 

만행두타(萬行頭陀) 1

 

십년을 공문(空門)에 지내니

자연스레 세상 인연 다 잊었네

온갖 꽃 곱게 피었고

밝은 달 청천에 떠오르네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만상은 공원(空圓)으로 지극함을 삼네

흥이 오늘에 이르름은

거울과 마음이 먼 데까지 비치는 것을​

 

만행두타 2

 

풀벌레 소리 울리고

베갯머리엔 가을달 밝게 비치네

낙옆은 뜨락에 쌓이고

바람은 냇가에 소슬히 부네.

생각 사록(史錄) 끝없이 허전한데

무료한 시름만 젖어 오누나

하루살이 같은 세상 돌아보니

또한 일기(一氣) 거둠에 해당될 뿐이네.

 

만행두타 3

 

기이하다 여기가 어디인가

앉아 지내니 벌써 한 여름도 다 흘러 갔구나

평상머리엔 푸른 하늘 달이 밝고

옷깃엔 맑은 바람 시원하구나

처음엔 부처님 손길로 이루고

중건은 스님네가 오랜 공을 세웠네

현인들이 메고 온 힘 때문에

그대들과 더불어 여기 살 수 있다네.

 

경허스님이 한암스님에게

 

그대 멀리 떠나 보내는 내 마음

눈물이 흐르누나

인생은 한백년 나그네

어디에 묻힐지 아득하구나

먼 산에 조각구름 일고

해는 긴 물가에 저무네

인간사 손 꼽아 보니

그저 모두가 시름일 뿐이어라.​

 

 

마음 달이 외로이 둥굴어

그 빛이 만상을 삼켰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면

다시 이것이 무엇인고

 

 

우연히 읊다

 

노을 물든 텅 빈 절

무릎 안고 졸다

소슬한 가을 바람 놀라 깨어보니

서리 맞은 단풍잎만 뜰에 차누나.​

 

 

무이법(無二法)

 

누구에겐들 둘이 아닌 법 없겠는가

가을 되면 기러기 떼 남쪽으로 가네

저간(這間)의 진짜 소식이여

봄이 오면 응당 북쪽으로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