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신(神)을 인지(認知)하기

무한진인 2022. 9. 27. 21:04

신(神)을 인지(認知)하기

이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순수지혜'가 들음(聽問)을 통해서 매우 이해하기 쉽도록 구성된, 

이 <스승과 제자와의 대화> 내용에 주의를 집중해 주기 바랍니다.  

 

평생동안 수많은 경전을 삿삿히 뒤지고, 온갖 곳을 찾아다닌다 해도, 

여전히 신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며, 

의심의 괴로움은 계속 증가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유명한 순례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곳은 쉽게 찾을 수 있으나 어떤 곳은 좀처럼 찾기가 어렵고, 

또 어떤 곳은 방문하면 복을 받는다고 말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 모든 순례지에 빠짐없이 갈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평생동안 그 모든 순례지를 방문하기에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종류의 금욕수행과 내핍생활을 하고, 

여러 봉사단체에서 자선행위를 행하며, 

다양한 종류의 요가와 신을 깨닫기 위하여 추구하는 많은 영적 실천수행방법들이 있습니다. 

 

신(神)들 중의 최고신(神)인 절대신을 깨닫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다양한 노력을 견디어내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으로 알려진 견해입니다. 

 

신을 깨닫는 방법에 관련하여 실천방법과 이론들이 다양하고 많지만,  

신의 참된 성품은 과연 무엇입니까?

 

자연 속에는 다양한 신들이 그렇게 많은데,어느 누가 그것을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헌데 그런 복잡한 신의 개념 속에서 살면서, 

정말 참되면서도 단 하나의 유일신에 대한 앎이 어떻게 다가 오겠습니까? 

 

많은 종류의 예배의식과 정신수행실천방법이 있습니다. 

사람이 원하는 어떤 결과를 약간 얻게 되면 마음에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유형의 실천수행을 습관처럼 지속하게 됩니다. 

 

자기들 욕망이 충족된다고 여겨 특별히 애착을 갖는 신(神)도 많고,

많은 헌신자들에게 숭배받는 다양한 신들도 또한 많이 있습니다. 

의견들이 각기 다른 현자들도 많습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다른 견해 중에서 선택하려고 할 때, 어떤 확고한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경전 사이에서도 견해가 다른 것이 있을 때, 열망자는 확신을 얻는 방법을 모릅니다. 

 

여러 가지 경전 속에서도 다양한 견해의 차이가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평생동안 다툼과 갈등으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분별력을 이용해서 신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수천 명 중의 단 한 명 뿐이며,  
그마저도 신의 참된 성품을 제대로 알지를 못합니다. 
 

내가 왜, 신의 성품이 아직도 잘 이해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겠습니까? 

자존심이 아직도 나에게 현존해 있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에고) 때문에 신은 나에게 여전히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일단은 이 정도로 해두고, 
문제는, 요가의 그 다양한 수행실천을 모두 해 본 사람들을 위해서, 
이 신을 어떻게 깨닫게 해줄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누가 신(하나님)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어떻게 그가 알려질 수 있습니까? 
이제 간단한 설명으로 이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신(하나님)은 생명있는 것과 무생물의 세계를 창조하신 분이시며, 
모든 활동의 움직임을 이끌어 낸 분이시며, 
모든 일을 하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는 구름의 함대, 달빛 속의 서늘함을 창조하셨고, 

태양에 빛과 밝음을 주셨습니다. 

 

그는 바다가 그 경계 안에 머물도록 해주고, 
우주의 받침대를 단단하게 떠받치며, 
별과 하늘을 창조해 내는, 
그런 위대한 힘을 가진 신(神)입니다. 
 
생명의 네 가지 흐름, 네 종류의 말(語), 840만 종의 생명체, 
세 가지 세계를 창조한 하나님을 신이라고 부릅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브라흐마,비슈누,시바(우주의 창조,보존 파괴의 활동)로 화현하시는 
유일신이신 것이 확실합니다. 
 
신전 안에 거주하는 신의 형상이 밖으로 나가서 모든 생명체를 창조한 것도 아니고, 
이 우주를 창조한 것도 아닙니다. 
 
많은 곳에 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이들 작은 신들은 지구, 달, 태양, 별, 구름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유일 신인 하나님은 여러 부분이 없는 만물의 집행자로서, 
만물에 대한 운용방식과 창조라는 신의 놀이는 브라흐마나 다른 신들조차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에 대한 약간의 의구심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되는데, 

다름 절(節)에서 해결될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듣고 있는 사람의 마음 자세가 주의만 기울여야 합니다. 

 

원래, 무한한 공간(空)이 사방에 퍼져 있었고, 
아무 것도 포함되지 않은 채 완전히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 빈 공간(空)에서 바람(風)이 태어났습니다. 
 
바람으로부터 불(火,빛)이 나오고, 불(火)에서 물(水)이 나왔습니다. 
이렇게 경이롭게 창조물들이 생겨나왔습니다. 
 
물(水)에서 모든 생명체(동식물 등)가 아무런 방해없이 생겨났습니다. 
이 놀라운 일을 하신 분을 우리는 '하나님(神)'이라고 부릅니다. 
 
신은 돌로 형성된 이 땅(地)을 창조하셨습니다. 
분별력을 활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돌로 만든 우상을 신(神)이라고 부릅니다. 
 
이 세상의 창조자는 이 창조 이전에 존재하셨고, 
창조 이후에 나타난 것은 그의 능력에 의한 피조물입니다. 
 

마치 도공(陶工)이 항아리가 생기기 이전에 존재하므로, 항아리가 도공이 아니듯이, 

마찬가지로 신은 태초에 존재하므로, 돌로 만든 우상이 아닙니다. 

 

장난감 군대는 진흙으로 만들어졌지만, 군대의 제작자는 진흙과 군대와는 전혀 다릅니다. 

진흙과 군대가 하나로 간주되드라도, 원인과 결과(제작자와 군대)는 다릅니다. 

 

하지만, 이 예에서는, 창조자와 창조물은 오로지 오대 원소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원인과 결과라는 차별은,오대 원소를 넘어서 있는,속성이 없는 그곳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체 피조물의 창조자인 신(神)은 피조물과는 다릅니다. 
이것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합니다. 
 
꼭두각시 인형을 춤추도록 조종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이 꼭두각시 인형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창조의 모습은 마치 화면에 비친 그림자 인형극과 같습니다. 
인형극 조종사는 줄을 잡아 당기지만, 
결코 무대에 보여지는 많은 등장인형은 되지 않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신은 우주의 창조자이지만, 그 피조물은 아닙니다. 

많은 존재들을 창조한 자가 어떻게 자기가 창조한 피조물들 중의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무언가를 창조할 때, 어떻게 창조된 것(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까? 

가련하고 무지한 많은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이것에 대하여 의심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우주의 본질은 이와 같습니다. 
사원의 아름다운 탑을 건설하는 사람은 탑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을 창조한 자는 세상과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 자체가 세상의 신(神,Jagadesha)이라고 어리석게 말합니다. 
 

세상의 주(主)님은 그의 예술작품인 그의 창조물과 다릅니다. 

그는 모든 것 속에 존재하지만, 여전히 모든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므로 신(AtmaRam)인 진아는 이 오대 원소의 혼합물과는 다릅니다. 
이 환상이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지(無知) 때문입니다. 
 

그 신의 놀라운 광대함 속에서 환상의 창조물들이 실재한다고 상상하는 것은 

깊은 탐구적 성찰 결과와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며, 

그러한 내용은 비이원성에 대한 어떠한 문헌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실은 이렇습니다. 
세상은 비실재하며, 진아(Atman)는 실재합니다. 
절대 진아(Paramatman)는 모든 것을 초월해 있고, 
모든 곳에 퍼져 있는 내적 자아(Antaratman)입니다. 
 
오직 진아 만이 신이라고 불러야 하며, 그 밖의 모든 것은 거짓입니다. 
이것이 베단타 속에 내재된 의미입니다. 
 
모든 대상물들은 파괴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신(하나님)은 대상물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은 순수하고 움직임이 없습니다. 
이것은 모든 경전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결코 일시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신이 오셨다, 신이 가셨다. 또는 신이 태어나셨다, 신이 죽었다, 등으로 말하는 것은 
신과 떨어지게 하는 잘못된 생각의 무더기에 불과합니다. 
 
탄생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신에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다른 신들을 불멸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닌 하나님이 어떻게 영원히 죽을 수 있겠습니까?
 

태어나고 죽는 것, 오고 가는 것, 고통과 슬픔은 모두 신의 창조물입니다. 

그러므로 그 원인자로서 신은 이 모든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내면 마음(Antahkarana), 다섯 프라나의 작용,

그리고 많은 작동원리를 가진 육체에 대한 지식은 모두 무상하므로, 

신(神)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개념도 없는 것을 신(神)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신이 있다"는 개념조차 거기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듣고 있던 제자가 질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면 우주는 어떻게 창조되며, 원인인 행위자는 피조물 또는 결과 속에서 어떻게 있습니까?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 속에 '속성없음'이 있습니까?) "
 
보는 자는 노력없이 본다는 행위와 함께 보여지는 대상이 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자기 행동에 의해서 행위자는 속성없는 것에서 속성을 가진 것으로 됩니다.
 

듣고 있던 제자가 또 물었습니다. 

"우주를 만드는 자는 누구입니까? 그는 어떻게 인지됩니까? 신은 속성이 있습니까, 아니면 속성이 없습니까? 

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브라흐만이 창조물을 만든 것은 단순한 의지라고 말들 합니다. 
브라흐만 이외에 창조물을 만든 자는 누구입니까?
이제 이 주제의 강의는 이것으로 그만 마감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이 모든 환상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에 대하여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은 들은 스승이 대답합니다 

" 다음에 설명하는 내용을 정신을 바짝 차려서 주의깊게 들어야 합니다. 

브라흐만에서 환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는 다음에 설명하겠습니다. 

설명하는 내용을 경청하고,그 내용에 대하여 스스로 면밀하게 분석하고 성찰해 봄으로써,

열망자들은 그 동안의 의심에 대하여 만족을 얻게 될 것입니다. (8-1)

 

                                                              <스승과 제자와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