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는 찾는 자의 의문이 일어나는 바로 그곳에 있다.
슈리 푼자 : 당신 안의 '아는 자'는 알고 있는 지식뿐만 아니라 잊어버렸던 지식 또한 자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런 저런 것을 잊었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잊음에 대한 지식이 그곳에 있을 때, 아는 자는 분명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 아는 자는 어디에도 가지 않습니다.
아는 자는 영원불멸합니다.
질문자 : 아는 자의 의식과 아는 자 그 자체는 어떠합니까? 그 둘은 같습니까, 아니면 다릅니까?
슈리 푼자 : 그 둘은 같은 것입니다. 아는 자와 아는 자의 의식은 같은 것입니다.
당신은 그들의 차이를 어떻게 증명할 것입니까? 의식과 앎은 같은 것입니다.
질문자 : 저는 이 아는 자가 좀 성가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지각의 순수를 방해합니다.
슈리 푼자 : 그것은 당신이 이 아는 자를 잘못된 목적으로 오랫동안 사용해 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당신은 아는 자를 다른 어떤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참된 아는 자는 항상 같습니다. 그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는 자를 알면, 당신은 자신의 개념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당신이 보고 경험이라는 변화는 무엇이나 모두 당신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됩니다.
만약 당신이 그것에 대한 최초의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순식간에 그것은 일어납니다. 모든 현상계도 단지 당신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수십억년의 과거와 미래와 같은 이 모든 창조는 단지 하나의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하나의 생각이 생겨나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순식간에 창조됩니다.
생각이 그 모든 것을 만들어 냅니다.
질문자 : 이것은 어떤 생각입니까? 그것은 "나는 존재한다" 라는 생각입니까?
슈리 푼자 : 그렇습니다. 이 생각은 과감히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탐구할 때, 그것은 사라집니다.
탐구는 당신을 생각이 없는 자리로,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난 적이 없는 자리로 데려갈 것입니다.
나무가 없는 뿌리로 데려갈 것입니다. 나무는 바깥에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있는 것은 내부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을 뿌리로 데려다 줄 물음이 하나 있습니다.
이 생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입니다.
당신은 반드시 '나'의 뿌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고 있는 한 가지 생각입니다.
모든 것은 이 '나'라는 생각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수십억 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도 모두 이 '나'라는 생각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탐구할 때, 이러한 영겁의 모든 시간은 끝이 납니다.
탐구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끝낧 것입니다.
(새로운) 질문자 : 노력없이 어떻게 탐구합니까?
슈리 푼자 : 노력은 현상입니다. 노력은 밖으로 향합니다.
'나'라는 생각이 일어나면 현상계는 일어납니다. 이것은 노력입니다.
당신이 '나'라고 말할 때, 그, '나'의 정체가 실제로 무엇인지 보려고 하는 것이 바로 탐구입니다.
당신이 '나'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과거, 현재, 미래라는 모든 것이 거기에 있습니다.
바로 이 '나'를 보십시오. 이것이 제가 말하는 탐구입니다. 바로 그것을 보십시오.
반대 방향으로 보십시오. '나'라는 것이 현상계를 창조했습니다. 이제 그 '나'를 보면서, 방향을 거꾸로 돌리십시오. 현상계로부터 '나'로 돌아가십시오. 후진 기어를 넣어주십시오.
전진 기어를 사용하지 마십시오. 전진기어가 사용되면, 당신은 마음의 영리함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물음이나 모든 논쟁은 이러한 영리함의 범주에 들어 갑니다.
이성과 추론 또한 이런 영리함의 일부입니다.
먼저 제가 말하는 것을 행하고 스스로 그 결과를 보십시오.
그러면 스스로 알게 될 것이며 직접적인 경험들로부터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잠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잠에 대해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한 번도 잠을 자본 적이 없다면, "내가 잠자리에 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잠 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람들이 잠에서 경험한다고 말하는 이 행복이란 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끝없이 계속할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어느 누구도 정말로 말해 주지 못합니다.
이것은 당신이 스스로 경험해 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잠에 대해 정의하고 이야기하면서 아침을 다 보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것으로 당신이 이 상태를 이해하겠습니까?
즉시 잠자리에 들어서 스스로 보십시오.
자유도 이와 같습니다. 수천 권의 책에는 자유와 깨달음이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책만 읽고서 자유를 얻었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깨달음은 책을 읽음으로써 오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은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책을 던져 버림으로써 오는 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질문자 : 어떻게 제가 그것을 볼 수 있죠?
슈리 푼자 : 저는 이것을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먼저 저는 당신이 자기 자신과 1센치미터, 아니 1 밀리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자신의 참나를 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곳에서 저에게 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바로 그곳은 이 질문이 일어난 곳입니다.
이 질문이 나온 곳은 너무 가까워서,당신과 떨어져 있다는 생각조차도 거의 없습니다.
이 물음이 일어난 곳으로 돌아가십시오.
이 물음이 보이거나 인지되는 곳이 아닌, 물음이 원래 일어난 장소로 돌아 가십시오.
이것은 심지어 숨이 일어나기보다 먼저, 물음이 일어나기 보다 먼저인,
그 모든 곳이 비롯되는 그곳은 도데체 무엇입니까?
그곳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참나입니다.
하지만 "어떻게요?" 물을 때, 자동적으로 당신은 그곳과 멀어지게 됩니다.
어-떻-게라는 이 세 글자는 당신을 그곳에서 멀리 떨어지게 할 것이므로 그 말을 사용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왜 그 말에 시간을 낭비합니까?
그것들은 당신의 주의를 이곳으로부터 딴 곳으로 돌리며 마음을 흩뜨립니다.
이 말을 절대 선택하지 마십시오.
숨을 쉬지도 말고 그 말을 하지도 마십시오.
그 둘보다 앞서있는 이곳을 발견하십시오.
만약 그곳에 이른다면 당신은 그것을 얻은 것이고, 만약 그곳을 찾지 못한다면 그것을 잃을 것입니다.(210)
- 슈리 푼자 법문집 <빠빠지와의 삿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