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다' 앎은 주시의 느낌이며 형상이 없다.
질문자 : 그리스도가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라고 했을 때, 그는 지고의 존재로서가 아니라 이스와라(하나님)로서의 자신의 아버지를 이야기한 것입니까?
마하리지 : 그 존재성에 대해 책임이 있는 행위들을 하는 자가 아버지오
질문자 : 그리스도는 아버지로서 어떤 육신존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데요?
마하리지 : 거기에 대해서는 내가 뭐라고 판단하지 않겠소. 그리스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 존재성은 그 음식 몸에 의해 유지되었소. 그리스도는 큰 도인이었소, 그의 조상 계보는 상관하지 마시오, 그에 대해서 명상하고, 그에 대한 기억하는 걳으로써 그대자신을 정화하시오. 그렇게 하다 보면 그대 자신이 순수해 질 것이고, 어떤 이미지도 그대에게 남지 않게 될것이오.
질문자 : 서양 전통에서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질병을 고친 많은 성자와 도인들이 있습니다. 동양의 도인들은 치유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마하리지 : 어떤 동양의 도인이 신비치유능력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유명해져서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지위가 될 것인데, 그러다 보면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자만심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오.
질문자 : 하지만 자만심을 가질 도인은 없을 텐데요.
마하리지 : (자꾸) 그런 개념을 지어내지 마시오.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이 그대를 목졸라 죽일 것이오. 희귀하기는 하지만 어떤 도인들은 기적을 행하면서도 자만심을 갖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오.
질문자 : 도인은 자만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도인인데) 자만심을 가질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마하리지 : 이 현상세계의 모든 움직임은 의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오. 그대는 육체를 가진 어떤 도인(개인적인 사람)을 생각하고 있소. 이 존재성은 다섯가지 원소 모두 안에 포함되지만, 그것은 인격적인 면이 없고 보편적이오. 그대 자신이 의식이라는 것을 알면서 잠이 들면 그 생각이 다음 날도 이어질 것이오. 몸은 허공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잠을 자시오. 그대가 몸이라는 생각때문에 고통을 받게되는 것이오. 매일, 그대는 몸이 아니라는 것, 그대는 단지 앎(知), 의식이라는 것만 명심하시오. 내가 죽고 난 뒤에 내 몸은 허공일 될 것인데, 왜 지금 그것이 허공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거요?
질문자 : 그것은 개념들을 더 보태는 것입니다.
마하리지 : 그대가 몸이라는 그대의 개념을 없애버리려고 하는 말인데. 어째서 개념을 더 보탠다고 말하는 것이오?
질문자 : 내 몸이 허공이라는 것은 또 다른 하나의 개념일 뿐입니다.
마하리지 : 모든 개념들의 영혼이 '내가 있다'인 것이오.
질문자 : 잠이 들기 전에 '나는 허공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명상기법입니다.
마하리지 : 그대는 밖에 나가서 누구한테든지 '나는 바보한 사람을 만나고 왔다. 그가 나를 목매달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러저러해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고 말하는게 더 낫겠소. 나는 그대에게 그대가 의식의 성품임을 말해 준 것이오.(왜냐하면) 그대를 모든 개념에서 점차로 벗어나게 하고 싶어서요. 일체가 개념이라고 해서 거기서 당장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오. 한 거친 개념에서 벗어나 다른 좀더 미세한 개념으로 들어갈 뿐이오. 그대가 '나는 몸이다'라는 식의 거친 개념들 속에 빠지면, 그 상태에서 더 복잡한 개념들로 커져만 가는 것이오. '내 몸이 아프다''약을 먹어야 겠다''병원에 가봐야겠다' 등등으로 망상들이 확산되는 것이오, 그대가 '나는 허공이다'라고 생각한다고 가정해 보자면, 더 이상 무슨 개념이 생길 것이 있겠소? 나는 그대를 환(幻)의 마지막 발생점인 '내가 있다"까지 데려가서, 그것을 없애고 싶소. 이러한 개념들을 잘 이해해야 하오.
질문자 :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조금 전에 마하리지께서 늘 주의력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주의력을 하나의 느낌으로 경험할 수가 있습니까? 느낌이 앎보다 앞서야 할 것 같은데요? 제가 있다는 것을 늘 알고 있다는 저변의 느낌이 있습니다.그것은 지각하기, 주시하기와 같은 것입니까?
마하리지 : 그 느낌은 주시와 같은 것이오. '나는 보는 자다, 나는 아는 자다'라고 알 때, 그것은 단순히 있습니다. 그것은 형상이 없습니다. 그 앎은 무형(無形)인데, 그대가 형상을 끌어안을 때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대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