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화엄경

화엄경 십지품 공부(41)

무한진인 2022. 6. 21. 23:10

9) 정법 한 구절의 가치를 밝히다. 

 

[본문]

"만약 일찍이 듣지 못했던 법을 한 구절만 들어도 크게 환희하여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보배를 얻은 것보다 더 수승하게 여기느니라" 

[해설]

진정으로 불법을 좋아하고 불법의 수승함을 믿는 보살이 그동안 한 번도 듣지 못하던 법문을 들었다면 참으로 뛸듯이 기뻐한다. 그 어떤 보물을 태산과 같이 많이 얻은 것보다 더 수승하게 여긴다. 

열반경에서 설산동자는 '제행무상 시생멸법(諸行無常是生滅法)'이라는 한 구절을 듣고도 환희에 넘쳐서 몸을 바쳐 공양하지 않았던가. 

또 금강경에서는 사구게(四句偈)만 듣고 수지하고 독송하더라도 그 공덕이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를 가득 채워 보시한 공덕보다 훨씬 수승하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온전히 대승의 정법인 금강경과 법화경과 화엄경의 가르침 속에 묻혀 살면서도 그 존귀함을 모르고 기뻐할 줄 모른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그리고 엉뚱하게도 세속적인 모든 것을 더 좋아하고 더 가치있는 것으로 여긴다면 참으로 불쌍하고 가련한 일이 아닌가. 

 

[본문]

"만약 듣지 못했던 바른 법을 한 게송만 들어도 크게 환희하여 전륜성왕의 지위를 얻은 것보다 더 수숭하게 여기느니라." 

[해설]

만약 진정한 불교인이라면 정법의 한 구절이 어떤 사찰의 주지라는 지위보다 더 수승하고 시장이나 장관이나 국회의원의 자리보다 천 배 만 배 더 값어치가 있다는 것을 알리라. 

정법의 한 구절이 종회의원이나 원장이나 조실이나 방장이나 종정이라는 명예보다 훨씬 더, 무수 억만 배나 수승하다는 것을 알리라. 그런데 하물며 이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화엄경을 들었다면 무엇으로 어떻게 비교해야 할 것인가. 설사 70억 사람들의 마음을 다 헤아려 알고, 태평양 바닷물을 다 마시고, 저 드넓은 허공을 다 측량하고, 바람을 손으로 붙잡을 수 있다 하더라도 결코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본문]

"만약 듣지 못했던 법을 한 게송만 얻어서 보살의 행을 깨끗히 하여도 제석천왕이나 범천왕의 지위를 얻어서 한량없는 백천겁을 지내는 것보다 수승하게 여기느니라."

[해설]

불교의 경전에서 가장 호화롭고 부귀공명이 최상인 지위가 제석천왕이나 범천왕의 지위라고 하였다. 

그런데 만약 아직 듣지 못하던 정법의 한 구절을 들어 보살행을 청정하게 한다면 제석천왕이나 범천왕의 지위를 얻어 한량없는 백천겁을 누리며 지내는 것보다 훨씬 더 수승하다고 하였다. 

세상에서 무슨 지위를 얻어야 이 화엄엄경을 공부하는 것보다 수숭하겠는가, 

어떤 것과 비교하려 한다는 것이 민망할 뿐이다.

 

 

10) 정법 한 구절로 어떤 고통도 극복한다. 

 

[본문]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에게 부처님이 말씀하신 한 구절의 법이 있어 보살의 행을 청정하게 할 것이니 그대가 지금 능히 큰 불구덩이에 들어가서 엄청난 고통을 참을 수 있다면 마땅히 일러주리라.'고 한다면 보살이 그때에 생각하기를 '내가 부처님이 말씀하신 한 구절의 법을 듣고 보살의 행을 청정하게 할 수 있다면 가령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큰 불구덩이 속에라도 오히려 범천의 위에서 몸을 던져 떨어지는 일을 몸소 받을 터인데 하물며 이 조그만 불 속에 들어가지 못하겠는가. 그런데 내가 지금 불법을 구하기 위해서는 일체 지옥의 고통도 응당히 받거니와 하물며 인간에게 있는 조그만 고통이겠는가'라고 하느니라.보살이 이와 같이 부지런히 정진하여 불법을 구하고 들은대로 관찰하고 수행하느니라. "   

[해설]

부처님의 설법 한 구절로 어떤 극한의 고통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예를 들어 밝혔다. 

훌륭한 법문 한 구절도 그와 같은데 하물며 화엄경이겠는가. 위법망구(爲法忘軀)라고 하였다. 

부처님의 정법을 위해서는 그 어떤 불구덩이나 극심한 고통도 흡족하게 받아들인다. 

만약 진정으로 화엄경의 위대함을 안다면 그까짓 하반신 마비로 생활이 다소 불편한 것이겠는가. 

그 어떤 고통과 어려움도 흡족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이것이 정법을 대하는 보살의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다. 

 

[본문]

"이 보살이 법을 듣고는 마음을 거두어서 안주하여 텅 비고 한가한 곳에 있으면서 생각하기를 '말한 대로 행을 닦고야 이에 불법을 얻은 것이니, 다만 말만 하여서는 청정할 수 없으리라.'라고 하느니라" 

[해설]

보살은 법을 들으면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들으면 반드시 사유하고, 천 번 만 번 또 사유하여 장식(藏識) 속에 잘 갈무리하고, 그것을 자신의 생활에서 그대로 실천 궁행하는 것이다. 

법문을 듣고 문사수(聞思修)의 세 가지 지혜를 밟아가는 것을 잘 드러내었다. 

위의 법문이 정법 한 구절의 가치와 또 정법 한 구절이 어떤 고통도 극복하게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 귀한 구절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여천무비 지음 <대방광불화엄경 강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