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의 세면비누가 무(無)가 될 때에~
목욕탕의 세면비누는 계속 쓰다가
손아귀에 붙잡기 불편할 만큼, 크기가 어느정도 작아지면,
전에는 그냥 쓰레기통, 하수구에 버리거나 수세미 곽에 보관해 두곤 했다.
그런데 언젠가 부터인지 몰라도
요즘엔 세면비누의 형태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끈질기게 활용해서
비누 모양과 색갈이 거의 안보이게 될 때까지
완벽하게 소모시켜 버린다.
전에는 그렇게 까지 관심을 써가며
비누를 완전히 써버린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비누가 왠만큼 달고 달아서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데,
기여코 완전히 모양이 사라지는 꼴을 보기 위해서
마지막까지 비비고 비벼서 완벽하게 무(無)가 될 때까지 알뜰하게 활용한다.
뭐, 그 흔해빠진 싸구려 세면비누를 일부러 아껴쓰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누 향기가 특별히 귀하고 좋아서 오래 두고 쓰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원래는 이 세상에 없었던 것이 생겨나왔지만,
어쩌다 이 몸과 만나 인연이 닿아서
매일 아침 흰거품과 향기를 풍성하게 만들어 내며
이놈의 온 몸을 깨끗이 씻어내 주었지,
자기 몸을 혼신을 바쳐서 남에게 보시하다가 보니
어느 새 그 비누자신의 몸도 달고 달아서 거의 없어져 버렸네,
바야흐로 무주상(無住相) 보시로 무(無)가 되는 순간이 다가왔구먼.
이제 마지막으로 세면비누 자네가,
무(無)로 사라져 가는 이 순간,
자네의 시간과 공간이 얇아져 가는 이 순간을
나는 지금 여기서 함께 지켜보고 있겠노라.
아 ! 아직은 앞으로 일주일 정도는
너끈히 더 쓰겠구나 !
- 2022. 5. 13. 무한진인(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