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가 현각 선사의 지관(止觀) 법문(28)
[본문]
① <생기되 능히 생기게 하는 자가 없으므로> 안의 지혜가 적적하고
② <요달하되 요달하는 것이 없으므로> 바깥의 경계가 여여하다.
[해설]
비파사나송 서두에서는 "① 생기되 능히 생기게 하는 것이 없으면, 비록 지혜이어도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였다.
무능생의 생이므로 지혜가 비유이고,
무소료의 료이므로 경계가 비무라는 것이다.
앞에서 '지혜가 비유'라는 것을 여기서는 '내지가 적적'하다고 하고,
앞에서 '경계가 비무'라는 것을 여기서는 '외경이 여여'하다고 하였다.
일상의 유무를 넘어선 비유비무(非有非無)의 지혜이기에 고요하고 고요한 '적적'이라고 하고,
실유 아닌 가유로서 존재하는 경계이기에 언재나 그러한 '여여'라고 한 것이다.
둘 다 주객분별을 넘어선 지경명합의 차원을 표현한 것이다.
행정은 "위에서는 능소상망(能所相忘)이었고,
능소의 분별을 넘어서니 안과 밖이 본별되지 않은 일상(一相)이 된다.
[본문]
여여하고 적적함에 차이가 없고 경계와 지혜가 하나가 된다.
만 가지 허물이 모두 사라지면 거기에 묘한 뜻이 존재한다.
[해설]
비파사나송 서두에서는 "무가 곧 무가 아니고 유가 곧 유가 아니다.
유와 무를 함께 비추니 묘한 깨우침이 고요하다." 라고 하였다.
앞에서의 '유즉비유(有即非有)를 여기서는 '여여(如如)'라고 한 것이다.
앞에서 '유무쌍조(有無雙照), 묘오숙연(妙悟肅然)'을
여기서는 '여적무차(如寂無差), 경지명일(境智冥一)'이라고 한 것이다.
행정은 "향상된 경계는 무상(無相)이고 항상된 지혜는 무연(無緣)이다.
무연의 연이니 3관(觀)이 아닌 것이 없고,
무상의 상이니 3제(三諦)가 완연하다, 고 설명하며,
이어 능소의 분별을 넘어선 경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2취(能取,所取)의 근심이 멸하면, 큰 이익이 여기에 있다.
지혜에서의 3관과 경계에서의 3제에 대해서는 다음의 우필차송에서 더 상세하게 논한다.
[본문]
그러므로 경에서
"반야는 무지이되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와 같으므로 미묘한 뜻은 지(知)가 아니고 무지의 지(知)이다.
[해설]
비파사나로써 도달해야 할 지혜 반야는 무지의 지이다.
무지의 지는 주객분별을 넘어선 지이므로 우리의 일상적인 주객분별의 의식방식과는 구분된다.
지는 지이되 일상의 주객분별을 넘어선 주객무분별지에 대해 논한 것이다.
행정은 "그런즉 지(知)는 그 자체가 무지이다. 어찌 돌이켜 비춘 이후에야 무지이겠는가?" 라고 말한다.
일상의 주객분별적 지가 아닌 지이기에 '무지의 지'라고 말한다.
- 한자경 지음 <선종영가집 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