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진인 2022. 1. 28. 22:10

[본문] 

또 묻는다. 

"왜 일체법이 모두 다 불법이라 합니까?"

답한다. 

"비법(非法)이 일체법에 통하기 때문이다." 

[해설]

[비법(非法)에 대해서는 <대승입능가경> 권제1 <라바나왕권청품>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여기에 그 단락을 인용한다. 

능가왕이여! 무엇이 비법(非法)인가. 

제법(諸法)이 무성(無性), 무상(無想) 하여 분별을 영원히 떠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여실(如實)히 보는 자는 유(有)나 무(無)와 같은 경계가 모두 나오지 않나니, 

이를 이름하여 비법(非法)을 버린다고 한다. 

다시 또 다른 비법이 있으니 소위 토끼 뿔과 석녀(石女)의 아기 등이다. 

모두 아무 성상(性相)이 없어 분별할 수 없는데 단지 세속에 따라 명자(名字)로 말한 것이다. 

물병 등과 마찬가지로 취할 수 없으니 그것은 식(識)이 취할 바가 아닌 것이다. 

이와 같은 분별도 역시 마땅히 버리고 떠나야 하느니 이를 이름하여 '사법(捨法: 법을 버림)', 

또는 '사비법(捨非法: 비법을 버림)'이라고 하느니라. ]

 

즉 비법(非法)이란 두 가지이니, 하나는 법(色受想行識의 모든 존재)이 무성, 무상이어서 무슨 법이라고 (어떠한 것이라고) 할 수 없어 분별을 영원히 떠나 있는 것을 말함이고, 

다른 하나는 토끼 뿔, 석녀의 아기와 같이 실제는 없고 말만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자의 비법 또한 유(有), 무(無)의 분별이므로 이 또한 버려야 한다. 

요컨대 법(法:존재)의 실체가 없는데 있다고 보는 분별은 무성(無性), 무상관(無相觀)으로 그 분별을 넘어서고, 이 법의 분별을 넘어서게 하는 비법의 분별(無性無相觀)도 버려야 하며, 성상(性相)이 없이 말만 있는 토끼 뿔, 석녀의 아기등의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법과 비법의 분별을 모두 버리면 일체의 분별을 버리는 것이 된다. 

비법이 일체법에 통한다는 것은 일체법이 본래 비법(非법: 非相)인 성(性)을 갖추고 있음을 말하고, 

<금강경>에 "만약 모든 상(相)이 비상(非相)임을 보면 여래를 봄이다."고 한바와 같이 비법(非相)이니 일체의 분별을 떠나 (非法이므로 非法이라는 법도 취함이 없음) 여래를 보게 되어 일체법에서 불법(佛性)을 통달한다는 것이다. 

 

[본문]

또 묻는다. 

"누가 설하고 누가 증득합니까?"

답한다. 

"왜 누가 증득한다고 말하는 것인가."

[해설]

당처에 즉한 자리에서는 누가 증득한다는 것이 없다. 

 

[본문]

또 묻는다.

"(설하는) 누가 없다 함은 어떠한 설입니까? "

답한다.

"(설하는) 누가 없는 것이 곧 설함없이 설함이요, 이렇게 하여야 올바른 설이라 칭한다."

 

[본문]

또 묻는다. 

"무엇을 삿된 설(邪說)이라 합니까?"

답한다.

"마음에 분별함이 있는 것을 이름하여 삿된 설이라 한다."

 

[본문] 

또 묻는다. 

"이것은 누가 분별함이며, 무엇이 분별함 없는 것입니까?"

답한다.

"분별하는 자는 모두 공(空)이며, 실은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다(無物)

말하는 가운데 말이 없고, 분별하는 자 또한 없다."

[해설]

신증(身證)한 자리에서는 설함과 들음이 따로 있지 아니하니 설청동시(說聽同時)이다. 

소리와 소리를 들음이 두 자리가 아니다. 

 

[본문]

또 묻는다. 

"이와 같이 설하시면 일체 중생이 응당 본래 해탈하였겠습니다." 

답한다.

" 본래 묶임(얽매임)이 없어거늘 어떻게 해탈이 있겠는가"

[해설]

묶이었다는 것은 꿈 속의 일과 같다. 

 

[본문]

또 묻는다.

"묶임과 해탈이 없다면 왜 이름이 있는 것입니까?"

답한다.
"항차 법이 없거늘 어떻게 이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본문]

또 묻는다.

"이와 같이 말한다면 저는 묶여 있어 해탈되어 있지 못합니다."

답한다. 

"실은 해탈하는 법이 없는 것이니 너는 해탈의 법을 구하지 말라. 

네가 만약 해탈의 법을 구한다면 이 법이 너를 다시 기나긴 수면에 빠지게 할 것이다. "

[해설]

당처(當處)를 떠나 그 어떠한 것도 없는데 무슨 법에 의지하여 해탈을 구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당처의 즉함을 방해할 뿐이다. 그래서 해탈의 법을 따로 구하지 말라고 하였다. 

 

[본문]

또 묻는다.

"어떠한 법을 이름하여 구경이라 합니까?"

답한다.

"법이란 끝과 시작이 없는 것인데 누가 구경이 있다 하였는가?"

 

[본문]

또 묻는다.

"법에 구경이 없다면 인과는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답한다.

"법이 본래 이미 없는데 무엇을 인과라 할 것인가."

 

[본문]

또 묻는다.

"어떻게 설하고 증득하는 것입니까?"

답한다.

"실은 증득함과 살함이 없다"

 

[본문]

또 묻는다.

"부처님은 어떻게 지견(知見)하십니까?"

답한다.

"부처님은 일체법을 여여(如如)하게 지(知)하시고, 

일체법이 평등임을 견(見)하신다."

 

[본문]

또 묻는다.

"어떠한 마음으로 지(知)하고, 어떠한 눈으로 견(見)합니까?"

답한다. 

"무심(無心)의 심(心)으로 지(知)하고, 무목(無目)의 목(目)으로 견(見)한다. 

 

[본문]

또 묻는다.

"누가 이렇게 설하였습니까?"

답한다.
"내가 질문받은 바와 같다. (누가 이렿게 설하였는가?)"

[해설]

'누가 설하였다는 것인가?'하고 반문하였다. 

 

[본문]

또 묻는다. 

"왜 '내가 질문받은 바와 같다'고 하십니까?'

답한다.

"알고자 하면 너 자신이 질문하는 자를 관(觀)하여 보라."

이에 연문(緣門: 본 문답에서 질문자임)이 재삼 깊이 심찰(審察)하여 고요히 말이 없었다. 

입리(入理) 선생이 물었다. 

"왜 말하지 않는가?"

연문(緣門)이 대답하였다. 

"제가 일체법(一切法) 티끌과 같은 것이라도 봄이 없어 대답하지 않은 것입니다."

 

[본문]

이때에 입리(入理) 선생이 연문(緣門)에게 말하였다. 

"네가 지금 진실한 리(理)인 듯 잘못 본 것이니라"

연문은 물었다. 

"왜 사견(似見)이고 정견(正見)이 아닙니까?"

입리 선생이 답하였다. 

"네가 지금 일체법이 없디고 본 것은 저 외도가 비록 형상은 은복(隱覆)하였으나 

아직 영(影: 그림자)과 적(迹:자취)은 멸하지 못한 것 같다."

[해설]

유무(有無)를 분별함이 있다면 아직 당처에 즉하지 못한 것이다. 

 

[본문]

연문이 또 물었다.

"어떻게 형상과 그림자를 모두 함께 멸할 수 있습니까?"

입리 선생이 말하였다. 

"본래 심(心)과 경계가 없나니 너는 생멸의 견(見)을 일으키지 말라"

[해설]

심(心)도 경계도 따로 없는 자리가 곧 당처에 즉한 자리이다. 

여기서는 이미 형상과 그림자를 멸한다는 것이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박건주 역주 <절관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