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흐만은 모든 것 너머의 자연스러운 상태이다(총합)
- 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의
다스보드 제8 강의내용 종합 -
*강의 주제 :
"브라만은 질과 형태가 없다.
브라만은 집착이 없고, 브라만은 변함이 없다.
한계도 없다, 이것이 성인이 말하는 바이다"
- [스승과 제자 간의 대화, 제 7장 2절 11문단]
브라만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모양이 없습니다.
그것은 네 가지 몸(물질적인 거친 육체, 미묘체, 원인체인 완전무지상태,
그리고 대원인체인 '내가 있다'앎) 을 모두 옆으로 치웠을 때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자연적인 상태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아는 자를 '이스와라' 신이라고 부릅니다.
'존재'나 '앎' 이전에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실재(實在)입니다.
이 네 가지 몸을 초월한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형체도 없고 불변하며,
그 자체가 자연 상태이며 안정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데도 가지 않으며, 어디에서도 오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파라브라만입니다.
내면의 자아(Antaratman, 가장 깊은 내면의 자아,大我)은 '나' 또는 에고입니다.
보는 자, 주시자, 목격자, 그리고 잠자는 자를 보는 자는 신 이스와라(Ishwara)입니다.
그는 지성을 통해 잉태된 개념입니다.
그는 잠을 잘 때는 조용합니다.
깨어있는 상태를 경험한 자는 무의식 상태나 수면 상태를 경험할 때도 역시 사라지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잠을 자는 기쁨을 표현할 수 없습니까?
마음과 지성(知性)의 작용이 정지되어 있기 때문에 깨어나서야 경험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한 여자의 코걸이 장식품이 물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한 남자에게 그것을 찾아서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그녀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남자는 물 속 깊은 곳에서 코걸이 장식품을 찾았지만,
완전히 물속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코걸이를 발견한 순간 즉시 그녀에게 알릴 수 없었습니다.
물(水)과 불(火)은 상극(相剋) 관계로 물에 잠겼을 때 불의 신(神)(말을 가능하게 하는 원소)의 힘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물에서 나왔을 때만 비로소 코걸이를 발견했다고
그 숙녀에게 알릴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표현에 필요한 도구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잠자는 동안 아무 것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은 잠자는 동안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한 남자가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그의 마음이 그가 올라갔던 계단의 수에 집중하지 않았다면,
그는 정확한 숫자를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면 자아(大我)는 그가 계단을 올라갔음을 전체적으로 압니다.
그가 존재할 때까지 신, 마귀, 관습 등도 또한 같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가 떠나면 사람들은 몸을 만지지 않습니다.
몸에 신성(神性)을 불어넣는 것은 내면의 자아(대아)입니다.
이 몸을 신(神)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자아(대아)입니다.
베다를 쓰는 사람도 또한 내면의 자아입니다.
이 내면의 자아(大我)가 세속적인 생각에 관심을 주는 한 그는 개아(Jeeva)가 됩니다.
그가 깨달음의 지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그는 시바(神)입니다.
지바(개아)와 시바(대아)가 둘 다 사라지면 파라브라만만이 남습니다.
육체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은 막일꾼입니다.
그가 장교로 일하면 장교이고, 재판관으로 일하면 재판관이지만,
모든 일에서 물러나면 그는 파라브라만입니다.
空(허공 또는 무지)이 존재하고, 그 너머에 신(神)의 성품인 마지막 몸이 있습니다.
사람이 여러 신과 여신을 숭배할 때. 케사바(Keshava, Ke는 지식을 의미하고 shava는 시체를 의미함)는 신체(앎이 없는 시체)에 있는 지혜의 형태이기 때문에,
그 예배는 내면의 자아(대아)에게만 곧바로 직진합니다.
예배 후에 그 신께 드리는 제물은 우리 자신에 의해서만 소비됩니다.
이 내면의 주님(大我)이 그 세속적 우상 신을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든다면,
그(우상신)는 평생 동안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각 존재는 알든 모르든 내면의 자아(대아)만을 숭배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해 없이 그렇게 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개아(지바) 또는 무지한 존재인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신(神)이라는 완전한 이해로 예배한다면,
그는 시바(神) 또는 깨달음의 지혜를 가진 자가 됩니다.
이 모든 육신은 실제로 살아있는 사원입니다.
무지로 인해 아이들은 돌로 신앙의 집을 짓는 것을 즐깁니다.
그들은 작은 납작한 돌로 마시는 물을 담는 그릇으로 삼고,
또 다른 돌을 대접 그릇으로 삼고,
또 다른 돌을 신으로 세워놓습니다.
이와 같이 무지한 사람들은 우상을 만들어 신에게 경배합니다.
진정한 신은 의식, 자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상은 의식이 없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 뿐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무지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참나를 모르는 사람은 우상을 숭배할 뿐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누구의 우상인지 알게 된다면 얼마나 경이롭게 여기겠습니까?
이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드냐니)입니다.
무지한 사람은 신을 믿게 하여 그에게 예배하고,
지혜로운 이는 신 중의 신(즉, 자기의 참나)을 알아차리고 예배를 합니다.
샹카라차리아는 그것을 네 번째 몸인 내적 자아, 즉 '원초적 환상'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신(내면 자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절대자, 파라메쉬와르의 자연상태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이 신이 안정되면 파라브라만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 신(의식)은 앎의 힘, 의지의 힘, 물질의 힘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베다의 핵심은 '그대가 바로 그 원리이다.'라는 것입니다.
참나는 네 개의 몸을 넘어서 있습니다.
베다에서 설명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브라만과 파라브라만은 10억 번 토론하고 싸워서 증명되었습니다.
요가는 결합을 의미합니다.
파라마트마는 다섯 겹의 껍질(Koshas)에 싸여 있습니다.
1. 음식의 껍질 : 겉 껍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외부 덮개.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외부에서 덮어쒸운 물질적 육체로 된 덮개입니다.
이것은 음식에서 나온 피, 살, 뼈, 머리카락 등으로 구성된 육체.
2. 생기의 껍질 : 5개의 생명기운(Pranas)으로 이루어진 덮개.
3. 마음의 껍질 : 생각과 개념으로 이루어진 덮개.
4. 지성의 껍질: 죄나 덕과 같은 개념을 기준으로, 저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등(브라마나, 크샤트라아 등)으로 구별하는 지성과 구분의 덮개.
5. 지복의 껍질 : 휴식,잠 - 자신을 잊었을 때. 불행을 초래하는 모든 것을 잊어 버리기 때문에 행복의 덮개
모든 것을 잊어버리면 모든 것이 행복해 집니다.
모든 슬픔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사람은 행복합니다.
에고(지바)는 어디에서 행복을 찾습니까?
답은 잊어버림(망각)에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는 행복을 즐깁니다.
나라다(인도 신화에 나오는 성자의 이름)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는 세 가지 세계, 즉 거친 물질적 세계, 미묘체의 세계, 원인체의 세계를 두루 돌아 다닙니다.
이 마음은 신을 찬양하며 또한 논쟁과 다툼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는 항상 동냥 깡통을 겨드랑이에 끼고 다닙니다
동냥 깡통은 그의 위장(밥통)입니다.
사무실에 출근하거나 신에 대한 찬양가를 부르는데 가더라도 미스터 마음은 반드시
'동냥 깡통'을 들고 다닐 것입니다.
진아는 모든 상태를 초월합니다.
위에서 설명한 다섯 가지 껍질을 인식하십시오.
몸에는 3억 3000만 신이 거주합니다. 모두 몸을 위한 것입니다.
스물다섯 가지 원리, 에고의 다섯 껍질과 세 가지 속성(사트바,라자스,타마스)은 몸(카시)의 도시에 사는 이 3억 3천만 신을 구성합니다.
다섯 가지 껍질을 초월한 후에야 이 도시의 지배 신인 비슈와나트에 도달합니다.
그러면 몸 자체가 당신을 위한 신전(카시)이 됩니다.
소우주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거시 대우주세계에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본성이 파라브라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무수한 책략을 활용해야 합니다.
개아는 말의 영역 안에 있으므로, 말로 표현된 것은 무엇이든지 실재를 가리키는 손가락 역할만을 할 뿐입니다
(즉, 말을 통해서는 실재를 절대로 진실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신의 진실한 본성은 무엇입니까?
오대 원소로 구성된 거친 미묘체의 총체입니다.
이 미묘체는 브라마-비슈누 그리고 마헤쉬와 삼억삼천만 신입니다.
이 미묘체를 히란야 가르바(Hiranya Garbha.즉 황금의 자궁)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의 원인체는 미현현(未顯現, Avyakrut)입니다.
이것이 신을 표시해주는 사트치트아난다(Satchidananda, 존재,의식,지복)입니다.
에고(개아)는 육체,미묘체, 원인체, 초원인체 등 네 가지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의 세 가지는 설명할 수 있습니다.
초원인체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땅(地)에서 육체가 나옵니다.
몸은 거친 것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몸 안의 공기와 몸 밖의 공기는 똑같은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이 공기가 어떻게 당신이나 나에게 속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속한 것입니다.
욕망과 감각은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음은 달(月)입니다.
마음(달)은 구루(태양)를 배반합니다.
그것은 신(神)에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달(마음)은 구루(태양,신)에 대한 배신으로 비난을 받습니다.
즉 달은 태양으로부터 자기 대한 지혜를 얻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감각은 인드라 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雨)는 마시고 싶다는 욕구를 의미합니다.
제물을 바친다는 것은 좋은 음식을 준비하고 그것을 먹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다음에 비가 옵니다.
즉 마시고 싶은 욕구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사람이 영양을 공급받고 감각이 편안해집니다.
마치 비가 오면 땅에서 싹이 올라오는 것처럼,
성자 가우탐(Saint Gautam, Gau-감각들, Uttam-가장 좋은 것)은 감각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의미합니다.
아힐야(Ahilya-그의 아내)는 감각을 기르는 몸입니다.
둘 다 같은 표현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아(지바)와 신(시바)은 하나이며,
개아가 다름 아닌 브라만입니다.
개아(지바)는 4개의 몸체로 구성되어 있고,
시바(신)도 4개의 몸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덟 번째 몸 또는 원초적 마야(부라만)는 안정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신의 원초적 성품입니다.
파라브라만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덧없는 신은 이스와라이고, 그 신을 믿는 신봉자도 덧없습니다.
둘 다 썪어서 없어지기 쉬우니 모두 거짓입니다.
그러므로 개아(지바)와 신(시바)는 모두 무지입니다.
그것들에게 유혹 당하지 마십시오.
이 모든 것은 썪어서 없어지기 쉽고 거짓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둘 다 버리는 사람이 아는 자(Dnyani)입니다.
-싯따르메쉬와르 마하리지 강의집 <Amrut Laya (The Stateless State) >-




2021년도에도
끊임없이 저의 브로그를 찾아 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2년도에도 건강하고 평안하시기 바라며
행운이 깃드는 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 2021. 12.31. 무한진인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