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우두 법륭선사의 심명(心銘) 공부(14)

무한진인 2021. 12. 23. 20:30

[본문]

知心不心, 無病無藥,

迷時捨事, 悟罷非異

本無可取, 今何用棄

謂有魔興, 言空衆備

심(心)이 본래 무심(無心)임을 아는지라

병도 없고 약도 없다.

미혹한 때에는 버리는 일이

깨닫고 나면 (버릴 것,버리지 않을 것의) 다름이 없다. 

본래 취할 수 없는 것인데

지금 어찌 버리는 행을 쓸 것인가.

(취하고 버리는 것을) 마(魔)의 흥성이라 하고 

공상(空相)의 무리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해설]

심(心)이 본래 무심(無心)이기에, 산을 보고 산임을 알고 물을 보고 물임을 안다. 

무심하기에 흔들림 없고, 흔들림 없기에 일체 사물을 안다. 

그리고 흔들림 없고, 염착됨이 없이 아는 것이기에 지(知)함을 떠나 지(知)함이라고 한다. 

심(心)이 무심함을 아는 까닭에 병이 있을 곳이 없다. 

무심한지라 마음에 지닐 바가 없다. 

병도 없으니 당연히 취할 약도 없다. 

아직 미혹할 때에는 (번뇌 등을) 버리는 행을 하나 깨닫고 나면 

버릴 것(또는 버림)과 버리지 않을 것(또는 버리지 않음), 

취할 것(또는 취함)과 취하지 않을 것(또는 취함이 없음)이 따로 없다. 

일체법이 본래 무생(無生)인지라 취할 것도 버릴 것도 없다. 

버리려고 함이 있다면 이미 무생의 의(義)에 어긋나고, 

능소(能所)가 따로 없다는 의(義)에 어긋나며, 

심성(心性)이 본래 분별을 떠나 있다는 의(義)에 어긋나고, 

공(空), 무상(無相),무원(無願)의 삼해탈(三解脫)에 어긋난다. 

또한 일체가 모두 공적(空寂)한 마음일 뿐이라 출입(出入)하거나 분별함이 없다. 

그래서 취함과 버림이 따로 없다. 

취함과 버림이 있다면 위와 같은 대승(大乘)의 의(義)에 어긋나는 것이기에 

이를 마(魔)가 흥성한 것이라고 하고, 

공(空)이라는 법상(法相)을 취하여 버리는 행을 하고 있는 까닭에 

공상(空相)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라 한다. 

여기에는 공상(空相)을 취함이 있고, 

그 공상(空相)에 의지하여 다른 법을 버린다는 것이 있다. 

취사(取捨)의 행은 아직 대승의 심의(深義)와 선지(禪旨)를 모르는 데서 나온다. 

 

                                                  -박건주 역주 <心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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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아는 것은 마음일 수가 없으니

병이 없으면 약도 없느니라.

知心不心 無病無藥

 

미혹할 때는 다른 대상들을 버리려 하지만

깨달으면 깨달음마저 놓아 버리나니

迷時捨事 悟罷非異

 

본래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지금 버린다고 함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本無可取 今何用棄

 

소위 마군(망상)이 일어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공허한 형상(몸)을 (자기자신으로서) 갖추고 있다는 말이네,

謂有魔興 言空像備

 

                                                 - 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