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는 자가 바로 찾고자 하는 그 자이다.
-연극은 계속되고 -
놀라울지 모르지만 마하리지는 배우로 쳐도 아주 훌륭한 배우다.
그의 용모는 아주 생기발랄하며, 표정이 풍부한 카다란 눈을 가졌다.
어떤 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나 어떠한 주제를 놓고 토론할 때나 그의 얼굴은 상황 상황에 꼭 맞게 변한다.
아주 자연스러운 말과 행동에 따라주는 것이다.
띠리서 녹음테이프로 그의 말을 듣는 것과 실제 제슈쳐를 쓰면서 생생하게 직접 듣는 것과는 아주 천양지차다.
그는 배우 중에서도 톱스타인 것이다.
어느 날 아침 강연에 유명한 유럽 배우 한 사람이 함께 자리했다.
마하리지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 설명하던 중이었다. 사실 자기라는 이미지는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마하리지는 사람이 살아가는 전반적인 생애에 대해 언급했다.
젖만 빨며 다른 것은 일체 바라지 않는 유아기, 건강과 미에 넘쳐 세계를 정복하고자 하는 야망의 십대, 사랑에 고민하는 외로운 청춘,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에 지쳐 빵을 구하다가 늙고 병들어 입도 움직이지 못하고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노년, 마하리지는 긴 인생여정을 묘사하고 나서는 이렇게 물었다.
"어느 것이 진정한 그대입니까?"
우리들은 한편으론 그 진지한 문제에 사뭇 심각해지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마하리지의 놀라운 연기에 넋을 잃고 말았다. 마하리지의 말은 시절 시절의 적절한 몸짓과 함께 살아 있었고 목소리마저 시절에 따라 꼭 들어 맞았다.
정말이지 한 편의 살아있는 드라마였다.
마하리지의 강연을 듣던 그 유럽 배우는 그만 넋이 빠져 버렸다.
"이렇게 멋진 연기는 내 생애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
마하리지가 구사하는 마라티어를 한 마디도 알아 듣지 못했지만, 그는 그렇게 탄복했다.
그는 마치 마법에 홀린 사람 같았다.
마하리지가 장난기 어린 눈으로 그를 보면서 말했다.
"어때, 이만하면 나도 훌륭한 배우가 아니오? 내가 무엇을 얘기하려고 했는지 정말 이해했어요?
그러나 당신이 본 것은 내 연극의 극히 작은 부분만을 감상한 겁니다.
사실 내 연극무대는 이 우주 전체라오. 나는 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를 꾸리고 장비를 설치하고 대본도 쓰고 배우들도 감독합니다. 그래요. 나는 수백만의 역활을 하는 단 하나의 배우입니다. 더구나 이 쇼는 끝나지 않습니다. 대본은 계속 쓰여지고 새로운 역들이 주어집니다. 수많은 상황마다 새로운 무대가 가설되고 언제나 연극은 판을 벌립니다. 어때요? 이런 나야말로 가장 멋진 배우이자, 감독, 제작자가 아닙니까? "
마하리지는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모두가 자신에 대해 이와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칼 하게도 여러분들이 그렇게 확신하면 쇼는 여러분 각자에게 모두 넘겨집니다. 이 세상에서 그토록 수많은 역을 행하는 것이 오직 당신이라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주어진 조그만 배역에 자신을 한정시켜 그저 사소한 역이나 하다가 살다가 죽으렵니까?"
-한바탕 꿈-
마하리지의 작은 거처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그저 한 번 들려서 보러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군가가 마하리지에 대해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찾아 온 것이거나, 특별히 더 좋은 방법이 없어서 어떤 곳인지 보려고 온 듯하다.
그러나 마하리지의 가르침에 깊은 관심을 갖고 방문하는 진지한 이들도 꽤 되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몇 번씩이나 계속 찾아와 그의 말을 듣고 그의 말을 확실히 이해하여 믿게 되곤 했다.
질문에 대한 마하리지의 가르침을 이해한 사람들은 대개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그런데 마지막 질문이 - --"라는 말을 종종하곤 했다.
그 마지막 질문이란 통상, 궁극적 실체에서 어떻게 이러한 세상이 나타나게 되었느냐는 것이 주류를 이루었다.
질문자는 이렇게 묻는다.
"예, 선생님, 아주 확실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마지막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절대적 본체는 의식이 작용해서 "내가 존재한다(I am)"라는 첫생각이 떠오르기 전까지는 그 알아차림을 모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일체가 이원성으로 나뉘어져서 우주의 현시가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 제 의문은 이겁니다. 왜 첫생각이 일어났고 왜 현시가 일어났는가 하는 겁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요? "
그러면 마하리지는 반응을 나타내는 몇 가지 복합적인 표정을 지으며, 질문한 사람을 바라본다.
일종의 연민, 질문자의 성실성에 대한 칭찬, 그가 요점을 알아차렸다는데 대한 기쁨 등이 뒤섞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데 대한 실망감까지 뒤섞인 표정을 지으며 부드럽게 말을 꺼낸다.
마하리지 : 역시 이해를 못했군요. 당신은 그저 귀로 들은 거지 가슴으로 듣지 못했어요. 통채로 삼킨 게 아니라 부분 부분의 집합으로 이해한 거예요.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들은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분리된 마음으로 들었다는 말이예요. 자신을 "구루(스승)"와 합일시켜 들은 게 아니고 저 혼자 뚝 떨어져 있는 개별적인 듣는 자로서 들은 겁니다. 혹시 해서 덧붙인 말인데, "구루"라는 말을 육체적인 개별적 스승으로 생각하지는 말아요.
내가 말하는 "구루"란 당신 자신 속에 깃든 "사드구루(sadguru)", 즉 당신 주인공을 말하는 겁니다.
만약 그 근본과 합일된 상태에서 들었다면 그러한 질문은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나는 그런 질문을 좋아해요. 왜냐하면 그런 질문은 일반적인 생각 방식을 드러내기 때문이지요. 아니 생각 자체가 드러난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지요. 자 그 질문이 어디서 나욌지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라고 여기는 당신에게서 나왔나요?
의식 안에서 나온 건가요? 의식 안에서 나왔다면, 의식이 없을 때는 당신이 실체라고 여기는 것도 없어요. 그리고 의식이란 물질적 특성이 없는 관념에 불과해요. 이렇게 볼 때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은 이렇습니다.
의식이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현시는 없다. 따라서 어떠한 질문을 하게 되는 개별적인 가아(假我)는 없다.
그리고 의식은 단지 관념에 불과하다. 이렇듯 모든 나타남이라는 것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는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이런데 어떻게 한정되지 않고 규정지을 수 없는 본성이 개념에 불과하고 거짓된 실체에 물든 허황된 마음에 의해 이해될 수 있겠어요? 사실 의문은 이러한 헛된 '나'가 사라져야만 풀려집니다.
왜냐하면 찾고 있는 자가 바로 찾고자 하는 그 자이기 때문이지요.
더우기 당신의 질문은 기본적으로 나타남과 나타나지 않음을 서로 다른 것으로 보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그 둘은 본질적으로 같은 상태예요.
마치 넓은 수면 위의 물결처럼 "존재함"이라는 색깔이 덧칠해지면 제한된 현시가 나타나는 의식이 되고,
덧칠해진 것이 없어 제한되지 않으면 알아차림을 모르는 근본 그 자체로 남는 것입니다.
현상이란 근본의 거울 작용일 뿐입니다.
근본이란 마치 선풍기나 모터 등의 전기기구를 흐르는 전기와 같아요. 또 달리 표현하자면 수많은 거울에 비치는 불빛 영상이 아니라 실제 불빛 하나와 같아요. 의식은 수백만의 감각과 지각이 있는 형태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예요. 이제 어때요? 이제 좀 자신의 질문을 바른 각도에서 볼 수 있겠어요? 아니면 아직도 그림자를 가지고 "왜"라며 알고 싶어요?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역활을 하는 1인극 배우가 각본 중의 어떤 배역 인물을 놓고 "왜"하며 그 정체를 알고 싶어 할까요?
대답은 아마 <'왜'는 치워버려> 일 겁니다. 사실 거기에 무슨 질문이 필요하겠어요? 그런 질문은 전혀 존재하지 않아요. 개념만 둥둥 떠다니고 따라서 나타남이란 꿈과 같은 겁니다. 이러한 꿈은 왜 나타납니까? 답은 지금까지 줄곳 말했으니 잘 알거예요."
-라메쉬 발세카 지음, 이명규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