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브라흐만은 모든 것 너머의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1)

무한진인 2021. 10. 28. 20:20

[싯따르메쉬와르 마하리지의 다스보드 제 8강(講) - ①]

 

강의 주제 : "브라만은 질과 형태가 없다.브라만은 집착이 없고, 브라만은 변함이 없다. 한계가 없다, 그것이 성인이 말하는 바이다" [스승과 제자 간의 대화, 제 7장 2절 11절]

 

브라만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모양이 없습니다. 

그것은 네 가지 몸(물질적인 거친 육체, 미묘체, 원인체인 완전무지상태, 

그리고 대원인체인 '내가 있다'앎) 을 모두 옆으로 치웠을 때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자연적인 상태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아는 자를 '이스와라' 신이라고 부릅니다. 

'존재'나 '앎' 이전에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실재(實在)입니다. 

이 네 가지 몸을 초월한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이든지간에, 형체도 없고 불변하며, 

그 자체가 자연 상태이며 안정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데도 가지 않으며, 어디에서도 오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파라브라만입니다. 

 

내면의 자아(Antaratman, 가장 깊은 내면의 자아,大我)은 '나' 또는 에고입니다. 

보는 자, 주시자, 목격자, 그리고 잠자는 자를 보는 자는 신 이스와라(Ishwara)입니다. 

그는 지성을 통해 잉태된 개념입니다. 

그는 잠을 잘 때는 조용합니다. 

깨어있는 상태를 경험한 자는 무의식 상태나 수면 상태를 경험할 때도 역시 사라지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잠을 자는 기쁨을 표현할 수 없습니까? 

마음과 지성(知性)의 작용이 정지되어 있기 때문에 깨어나서야 경험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한 여자의 코걸이 장식품이 물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한 남자에게 그것을 찾아서 발견하지마자 곧바로 그녀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남자는 물 속 깊은 곳에서 코걸이 장식품을 찾았지만, 

완전히 물속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코걸이를 발견한 순간 즉시 그녀에게 알릴 수 없었습니다. 

물(水)과 불(火)은 상극(相剋) 관계로 물에 잠겼을 때 불의 신(神)(말을 가능하게 하는 원소)의 힘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물에서 나왔을 때만 비로소 코걸이를 발견했다고 

그 숙녀에게 알릴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표현에 필요한 도구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잠자는 동안 아무 것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은 잠자는 동안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한 남자가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그의 마음이 그가 올라갔던 계단의 수에 집중하지 않았다면, 

그는 정확한 숫자를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면 자아(大我)는 그가 계단을 올라갔음을 전체적으로 압니다.

 

그(大我)는 잠자는 동안, 깨어 있는 동안, 그리고 삼매 중에도 존재합니다. 

누가 잠과 삼매를 경험합니까? 

그가 홀로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그곳에 없었다면, 누가 잠을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자아(大我)는 '의식', 자각의 본질이고, 그 이전에는 파라브라만(無我)입니다. 

대아(Antaratman,가장 깊은 내면의 자아)은 '나'입니다. 

그는 신이고 의식은 그의 영원한 본성이다.

 

그(大我)는 짐승, 새, 신, 악마, 람, 크리슈나 등 모든 것의 심장에 거주합니다. 

만약 그(大我)가 거기에 없으면 생명체는 통나무 장작처럼 죽습니다. 

그(大我)가 사라지면 귀, 눈, 코 등은 모두 쓸모가 없습니다. 

그가 사라지면 모든 만물이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그로 인해서 모든 우주의 장엄함이 있습니다. 

만약 그가 사라지면 모든 것이 멸망합니다. 

영적인 이해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활동이 있는 것도 그분 덕분입니다. 

이 모든 것은 그분의 존재 때문입니다.

 

그가 존재할 때까지 신, 마귀, 관습 등도 또한 같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가 떠나면 사람들은 몸을 만지지 않습니다. 

몸에 신성(神性)을 불어넣는 것은 내면의 자아(대아)입니다. 

이 몸을 신(神)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자아(대아)입니다. 

베다를 쓰는 사람도 또한 내면의 자아입니다. 

이 내면의 자아(大我)가 세속적인 생각에 관심을 주는 한 그는 개아(Jeeva)가 됩니다. 

그가 깨달음의 지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그는 시바(神)입니다. 

지바(개아)와 시바(대아)가 둘 다 사라지면 파라브라만만이 남습니다.

 

육체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은 막일꾼입니다. 

그가 장교로 일하면 장교이고, 재판관으로 일하면 재판관이지만, 

모든 일에서 물러나면 그는 파라브라만입니다. 

空(허공 또는 무지)이 존재하고, 그 너머에 신(神)의 성품인 마지막 몸이 있습니다. 

사람이 여러 신과 여신을 숭배할 때. 케사바(Keshava, Ke는 지식을 의미하고 shava는 시체를 의미함)는 신체(앎이 없는 시체)에 있는 지혜의 형태이기 때문에, 

그 예배는 내면의 자아(대아)에게만 곧바로 직진합니다.

 

예배 후에 그 신께 드리는 제물은 우리 자신에 의해서만 소비됩니다. 

이 내면의 주님(大我)이 그 세속적 우상 신을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든다면, 

그(우상신)는 평생 동안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각 존재는 알든 모르든 내면의 자아(대아)만을 숭배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해 없이 그렇게 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개아(지바) 또는 무지한 존재인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신(神)이라는 완전한 이해로 예배한다면, 

그는 시바(神) 또는 깨달음의 지혜를 가진 자가 됩니다.

 

                                    -Amrut Laya(The Stateless St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