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하게 '나는 브라만이다'를 생각하면 실제로 브라만이 된다.
우리는 먼저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쉽습니다.
만일 전적인 내면 포기가 있으면 그 '나'는 브라만이고, 그럴 때는 브라만만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대상들에 대한 포기가 있어야 합니다.
진아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개아로써 살 뿐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아주 멋지게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잠에서 깨어날 때 여러분 자신에게 :나는 브라만이다"라고 말하면,
여러분은 브라만이 됩니다.
우리는 왕으로서 깨어나고 왕같이 살아야 합니다.
거지라는 느낌으로 깨어나면 계속 구걸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그가 취하는 태도와 느낌에 따라서 행동합니다.
우리는 '아는 성품' 그 자체이고, 따라서 즉시 왕이나 군인이 됩니다.
우리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우리 자신이 결정합니다.
일은 수백만년 동안 늘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완성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그것이 충분하다고 말하지 않겠지요.
'내 아내'와 '내 자식들'이라는 느낌이 그 개인의 부(富)입니다.
신의 부(富)는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는다는 그런 것입니다.
'아무도 내 것이 아니고, 나는 진아일 뿐이다.'라는 태도를 취하십시오.
개아의 여신은 실은 '불운에 가려지는 것'(진아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바의 힘이 해탈의 여신입니다.
자, 누구와 결혼 할지는 여러분 손에 달렸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누구를 원하는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배고픔, 목마름, 욕망과 분노는 여러분이 수십만 번 태어나도록 여러분과 함게 할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개아 혹은 해탈)을 갖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브라만의 상태를 열망하기가 쉽지 않지만,
나중에는 한결 쉬울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교육하여 그것이 자신의 구루, 곧 자신의 스승이 되게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밤낮으로 브라만을 생각하고, 그에 대해 명상해야 합니다.
마음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마음이 어떤 습을 가지고 있을 때는 같은 일을 되풀이 해서 합니다.
자신이 곧 만물에 편재하는 브라만이라는 태도가 있으면, 마음은 순수해져서 진아 안에 안식합니다.
그것은 스승이 되고, 그러면 여러분에게 아무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헌신자와 신을 생각할 때 그 헌신자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하면,
그 개인이 곧 브라만이며 달리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대상들에 대한 집착이 있으면 즉시 여러분은 개아가 됩니다.
대상들에 대한 그 집착이 끝이 나면 여러분은 브라만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요구하기 시작하면 여러분은 점점 더 작아집니다.
욕망이 없는 사람이 위대합니다.
박수를 치는 일은 두손에 의존합니다.
두 손이 만나지 않으면 박수는 없습니다.
무엇이 우선입니까, 대상들에 대한 집착입니까, 실재에 대한 자각입니까?
이 점에 대해 명상해 봐야 합니다.
대상들은 실재하지 않으며, 대상에 대한 무집착 그 자체가
실재로의 깨어남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합니다.
제자가 묻습니다. "얼마나 여러날 그렇게 해야 합니까? "
그 대담은 "실재가 잊어버려지지 않을 정도까지 그냥 하라"입니다.
그것을 결코 잊으면 안되고, 그게 전부입니다.
별개의 '나'란 없습니다.
경전에 따르면 "자유만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자유로운 까닭은, 여러분이 이미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자유롭다고 느껴야 합니다.
여러분은 속박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과 헌신자의 뿌리로 나아가면 이원성이 사라집니다.
일체가 하나입니다.
만일 본질적으로 세상의 모든 것이 흙으로 만들어 졌다면,
어떤 분리가 있습니까?
그럴 때 이 '나'는 누구입니까?
5대 원소와 하나의 진아가 존재할 뿐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실존적 실재'입니다.
5대 원소와 그대라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 전 우주라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의 빠라아뜨만이 보이는 모든 것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것과 결합하는 사람은 분리된 상태로 남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순복이 일어나는 즉시 확립되는 원리는 그 자체 니뉘지 않는 헌신,
곧 합일 해탈입니다.
환(幻) 속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옥수수를 조금 수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적은 수확물은 적은 양의 옥수수입니다.
'나는 브라만이다'라는 느낌이 브라만이라는 옥수수를 수확하는 원인이 됩니다.
이제 그 옥수수는 해탈의 자유인 옥수수입니다.
점토로 만든 사자는 자신이 점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도처에 오직 브라만이 있습니다.
개아가 없으면 환도 없습니다.
강이 바다에 합일되면 그 정체성을 유지하지 않듯이,
헌신자가 신과 합일되면 별개의 상태로 남지 않습니다.
헌신자가 신이 되고 나면 더 이상 별개의 한신자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헌신자와 신의 단일성을 아는 자는 브라만을 깨닫습니다.
여러분이 브라만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그러면 전능한 지고아 빠라마뜨만으로서 영광에 충만하여 살게 될 것입니다.
만약 환의 영역에 떨어지면 분노, 집착, 고통, 슬픔과 어울리게 될 뿐이고,
그것은 여러분이 평안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브라만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대성 옮김 <그대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