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 법륭선사의 심명(心銘) 공부(12)
[본문]
四德不生, 三身本有
六根對境, 分別非識,
一心無妄, 萬緣調直,
心性本齊,同居不携
사덕(四德)이 생한 바 없고
삼신(三身)은 본래 있는것,
육근(六根)이 경계에 대하여
분별하나 (一心인 자리에서는) 식(識)이 아니다.
일심(一心)은 무망(無妄)이니
모든 경계에 연(緣)하여 조복(調伏)하고 직심(直心)하는지라
심성이 본래 평등함에
(모든 경계와) 함께 하더라도 소유(所有)함이 없네.
[해설]
사덕(四德)이란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열반(涅槃)사덕을 말한다.
만약 사덕이 생한 것이라면 언젠가는 멸하게 될 것이나 생함없이 있는 것이어서 멸함도 없다.
즉 사덕은 본유(本有)의 뜻이 있다.
마찬가지로 삼신(三身 : 법신,보신,화신)도 언제 새로 생기게 된 것이 아닌 까닭에 본유의 뜻이 있다.
본유인 까닭에 있다는 상(相)을 얻을 수 없다.
분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육근(六根 : 여섯가지 감각기관)이 경계를 대하여 분별함을 식(識)이라 한다.
눈(眼根)으로 색(色)을 대하여 분별함은 안식(眼識)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식이 아니라고 하였다.
무슨 뜻인가. 식이란 능(能:인식주관,見分)과 소(所: 인식대상,相分)가 나누어진 상태를 말한다.
분별은 바로 능소(能所)가 따로 있음을 전제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일심(一心)인 자리, 또는 본유(本有)의 자리에서는 능소가 따로 없다.
그래서 분별을 떠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일심 또는 본유의 자리에서는 분별을 떠난지라
육근(六根)이 경계에 대하여 분별하여도 이미 식(識)이 아니다.
그래서 분별을 떠난 분별이라고 한다.
이를 테면 거울이 사물을 낱낱이 구별하여 비추더라도 거울은 무심(無心)하여 아무런 분별이 없다.
거울 속의 사물을 구하고자 하여도 그 속은 공적(空寂)할 뿐 아무 것도 얻을 바 없다.
그래서 거울이 사물을 비추더라도 본래 분별을 떠나 있다.
육근이 경계에 대해 분별한다 함은 곧 거울이 사물을 비추는 것과 같다.
여기서의 분별은 능소를 떠나 공적한 자리에서 발현되는 영지(靈知)인지라 식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일심(一心)은 분별을 떠난 자리라 망(妄)이 없다.
일심을 요지(了知)한지라 수많은 경계에 연(緣)하여 끌리고 염착되는 습기(習氣)를 조복(調伏)하게 되고,
직심(直心)하게 된다.
직심이란 마음이 경계에 연하여 끌리거나 염착됨이 없고, 흔들림 없는 것이다.
직심으로 습기가 조복된다.
심성(心性)은 공적(空寂)하고 무상(無相)이며 분별을 떠난 까닭에 본래 평등일여(一如)하다.
그래서 모든 경계와 함께 함에도 무엇을 지니는 바가 없다(無所有).
지금 어떠한 괴로운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실은 심성은 괴로움을 지니는 바가 없다.
심성은 본래 무엇을 소유함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일체법불가득(一切法不可得)이다.
-박건주 역주 <心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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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덕은 생겨 난 적이 없고
세 가지 몸은 본래부터 (바탕에) 있는 것이니라.
四德不生 三身本有
육근이 경계를 대해서
분별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네.
六根對境 分別非識
한 마음에는 거짓됨이 없으니
온갖 것과의 관계가 바르게 조화를 이루네.
一心無妄 萬緣調直
마음의 바탕은 본래 가지런하여
함께 있지만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心性本齊 同居不携
- 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