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슈리 푼자

숨마 이루(Summa Iru,침묵을 지키라)- 1

무한진인 2021. 9. 10. 23:00

슈리 푼자와의 대담 : 대담자 , 데이비드 가드먼, 1993년 럭나우

 

가드먼 : 빠빠지, 저희들은 당신의 가르침에 관한 필름을 하나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아무런 가르침도 없다고 말씀하시면 저희들이 필름을 어떻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슈리 푼자 : 어떤 가르침을 준다는 것은 설교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스승은 가르침도 없고, 방법도 없고, 길도 없습니다. 그대 자신의 진아를 알기 위하여 그대는 아무런 가르침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그대인 것, 항상 그대인 것은 그것 자체입니다. 누구도 그대를 가르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는 지금 여기에서, 바로 이 순간에 그대가 누구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가드먼 : 사람들에게 어느 방향으로 보라고 말하는 것을 가르침이라고 보십니까? 

 

슈리 푼자 : 사람들은 어느 방향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웃음) 특정한 방향을 본다는 것은 어떤 대상, 즉 그대가 주의를 그쪽으로 기울이는 대상 안에 머물러 있음을 뜻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헤메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모든 방향을 없애 버리고, 마음 속에 어떤 방향에 대한 아무런 개념을 지니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그것 자체임을 알게 됩니다. 그들이 항상 그것이며, 그들이 항상 그것 자체 말입니다.

 

가드먼 : 당신께서는 자신이 한 사람의 스승(Guru) 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빠빠지?

 

슈리 푼자 : 아니오, 전혀! (웃음) 저는 결코 '나는 스승이다'라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가드먼 : 자신들이 당신의 헌신자이며 제자라고 생각하는 이 모든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당신의 헌신자들입니까? 

 

슈리 푼자 : 스승이 없다면 헌신자냐 아니냐 하는 문제도 없습니다. 그들이 저를 찾아 오면 저는 그들은 반깁니다. 어떤 누가 와도 저는 그들을 반깁니다. 그들이 오지 않는다 해도, 저는 그들에게 행운을 빌어 줍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날 때에는 이렇게 말해 줍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어디 계시든지 행복하십시오.'

 

가드먼 : 당신께서는 당신께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진아를 찾으라고 권하십니다. 왜 당신께서는 그렇게 하십니까?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합니까? 

 

슈리 푼자 : 재 자신의 행복입니다. 이 사람들은 잠자고 있습니다. 그들은 보배가 그들의 내면에 있는데도 모두 고통받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대상들 속에서 평안과 행복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그들은 대상들을 하나하나 검토하고 경험해 보지만, 그것은 아픔과 고통을 가져올 뿐입니다. 마음 속의 어떤 대상, 즉 어떤 사람, 어떤 사물, 어떤 개념도 그대를 행복과 마음의 평안으로 돌아가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그저 이렇게 말하며, 이러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여기도 저기도 어디도 보지 마십시오. 평안은 그대의 내면에, 모든 존재들의 심장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침묵을 지키고 어디도 보지 말며, 그대의 마음이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대는 그것이 평안이며 행복 자체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진리입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행복 그 자체입니다. 

 

가드먼 : 저는 당신께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께서 단순한 정보이상의 어떤 것을 제공하신다고 생각한다고 봅니다. 제가 볼 때 그들은 당신의 친존에 있으면 어떤 힘, 혹은 어떤 은총이 있어서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발견하도록 해 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슈리 푼자 : 물론 그렇지요. 저는 은총과 아름다움의 원천인 그들 자신의 진아를 가리켜 보입니다. 그곳에서 사랑과 평안도 일어납니다. 저는 이것을 지적할 때 단지 이렇게 말합니다. 

'1초 동안만 그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십시오. 그대는 탐색할 필요도 필요없고, 발견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그대 지신의 내면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자신이 평안 자체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단지 이렇게 지적합니다. 사람들은 잠자고 있습니다. 그들을 깨워주는 것이 낫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꿈을 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꿈들은 단지 마음의 투사물일 뿐이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실재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것이 많은 고통을 야기하는 것입니다. 

꿈 속에서 호랑이를 만나면 그대는 겁을 먹습니다. 꿈 속에서 강도를 만나도 그대는 겁을 먹습니다. 

온갖 마음의 투사를 멈추십시오. 꿈은 하나의 꿈일 뿐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그것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십시오. 그대가 무엇을 보든 그것은 하나의 꿈입니다. 어디든지 대상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이 있는 곳에는, 하나의 꿈이 있습니다. 만약 대상들이 있고, 그것을 보는 주체가 있다면, 하나의 꿈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대가 어떻게 하든 주체와 대상, 그리고 그것들 간의 관계를 없애버린다면 , 무엇이 남겠습니까? 

 

가드먼 : 당신께 찾아와서 '빠빠지, 저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실 때, 당신께서는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십니까? 그리고 그들이 깨어나는 것을 보실 때 즐거워하십니까? 

 

슈리 푼자 : 저는 연민을 느낍니다. 제가 달리 무엇을 하겠습니까? 저는 고통을 받으면서 꿈을 꾸고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연민을 느낍니다. 저는 그들에게 그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벗들이여, 깨어나십시오.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깨어나십시오. 어떤 고통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그대 마음의 투사일 뿐입니다. 그것을 실재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 꿈에서 깨어나십시오. 그러면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입니다.'라고. 

 

가드먼 : 저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던, 폐(肺)가 하나 뿐인 일본 교수님의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가르침에 관한 좋은 사례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를 전부 해 주실수 있습니까? 

 

슈리 푼자 : (빠빠지는 웃으신다) 그가 도착했을 때 저는 우리 집의 이층에서 사람들에게 삿상을 해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래층 사람들에게 자기는 의사가 계단을 올라서는 안 된다고 했기 때문에 제가 내려와서 그를 만나 줄 수 있겠는지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빠빠지는 지금 아주 바쁘십니다. 그는 이층에서 삿상을 베풀고 계십니다. 만약 기다릴 수 없다면, 당신이 올라가서 그를 만나야 합니다.'

이 사람은 저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기 때문에, 제가 끝나기를 기다리느니 자기가 계단을 올라오기로 작정했습니다. 아래층 사람들이 그를 도와주기는 했어도, 그는 아주 천천히, 몸시 힘들게 올라 왔습니다. 

그가 올라 왔을 때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저를 포함해서 모두 웃고 있었습니다. 그가 올라와 있는 동안 말로 하는 가르침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냥 계속 웃음이 끊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왜 웃는지 전혀 모르면서도 자기도 따라서 웃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우리는 모두아래 층으로 식사하러 내려 왔습니다. 

식사 도중에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폐가 하나 밖에 없습니다. 폐 하나는 수술로 잘라냈습니다. 의사 말로는, 저는 계단을 오르면 안되고 웃어서도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폐에 너무 긴장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웃거나 계단을 오르면, 저는 폐의 긴장을 회복시켜 주기 위해 약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약을 먹을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사실 저는 잘라낸 폐가 다른 것으로 교체된 것 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다시 웃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같이 있는 동안 내내 그는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웃고, 웃고, 또 웃었습니다. 그 웃음이 그를 전혀 긴장시키지 않았고, 약을 먹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그는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 자기 제자 한 사람을 저에게 보냈습니다. 그 학셍 말로는, 그의 교수님이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 '당신께서는 럭나우에서 무엇을 가져오셨습니까? 뿐자지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의 반응은 단지 웃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웃고, 웃고, 또 웃었습니다. 

마침내 웃음이 잦아들자 또 묻기를, '뿐자지의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웃는 것이지, 웃고 춤추는 거' 사람이 웃을 때에는 아무 마음이 없습니다. 아무 생각도, 아무 문제도, 아무 고통도 없습니다. 

 

가드먼 : 웃음이 계속되는 한 아무 마음이 없습니다. 

 

슈리 푼자 : 아무 마음이 없지요. 한 번 해보세요 ! 웃지 않는 사람들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주 심각해 보이고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떤 문제, 어떤 고통도 마음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받는 것은 마음이지요. 아시다시피, 그러니 그대의 문제들을 웃어넘겨 버리십시오. 어떤 문제가 찾아오면 그것을 웃어넘겨 버리십시오 ! 그대가 웃으면 그것은 사라질 것이고, 도망칠 것이고, 날아가 버릴 것입니다. 

 

가드먼 : 결국 웃음은 아픔과 고통이 없음에 대한 반응이군요, 그런 뜻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슈리 푼자 : 뭐라고 말했습니까? 

 

가드먼 : 모든 마음의 문제들이 사라지고 나면 자동적으로 웃음이 일어납니까? 

 

슈리 푼자 : 물론 그렇지요. 그렇고 말고요, 자기의 모든 문제가 사라져 버린 사람만이 웃고, 그런 사람만이 춤을 춥니다. 자기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그는 춤을 추기만 하면 됩니다. 

옛날 어느 산꼭대기에 한 성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보름달이 뜬 한 밤중에 그는 웃기 시작하더니 계속 웃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서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이 승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그들은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물었습니다. '스승님, 무슨 일입니까?'

성자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저기 봐요, 봐요, 봐요! 저기 구름이 ! 저기 구름이 !' 

많은 사람들이 구름을 보지만 웃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오직 무심(無心)인 사람만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는 어떤 것을 보아도 웃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을 볼 때 그것 자체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구름이 나오자 달이 그 뒤에 숨었습니다. 

그대가 무심하면 이것만 보아도 웃음이 터져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가드먼 : 그래서 당신께서는 세상을 보실 때 대개 웃어 버리시는군요. 당신께서는 세상이 하나의 큰 농담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슈리 푼자 : [웃음] 저는 농담을 할 뿐입니다. 그 외에 무엇을 하겠습니까? 저는 어떤 경전도 연구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떤 경전도 연구한 적이 없고, 어떤 경전도 찾아보지 않습니다. 저는 농담을 할 뿐입니다. (더 웃으심) 

 

                                      -데이비드 가드먼 엮음, 대성 옮김 <빠빠지 면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