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십니까? (2)
[슈리 푼자 면담록 : 면담- 제프 그린월드, 1993년 럭나우]
제프 : 당신께는 어떤 것이 명상입니까? 여러가지 다른 명상법들이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호흡을 관(觀)하든가, 생각들이 일어나고 가라앉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현상을 바라보는 데 의존하는 것이 많습니다.
슈리 푼자 : 그대는 명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집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명상은 그대가 어떤 대상에도 집중하지 않고 있을 때 일어납니다. 만약 그대가 과거의 어떤 대상도 마음 속으로 끌고 오지 않을 수 있을 때, 그것이 명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 그것이 명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대가 명상하기 위해 마음을 쓴다면, 그것은 명상이 아니라 집중입니다. 마음은 과거에 속하는 어떤 대상에 매달릴 수 있을 뿐입니다. 그대는 마음의 도움없이 명상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제프 : 그것은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해온 대부분의 명상은, 일어나는 생각을 처리하는 기술에 속합니다. 그러나 명상의 목적은, 아무런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무념(無念)의 상태가 되는 것인 듯합니다.
슈리 푼자 : 그것을 명상이라고 합니다. 아무 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때, 그것이 명상이라는 것입니다.
제프 : 그러나 생각들은 불가피하게 일어납니다. 일어나는 생각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슈리 푼자 : 그것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일러드리겠습니다. 저는 그대가 손가락 한 번 꺾는 데 걸리는 정도의 시간은 활애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그대 생각을 멈추게 하는데 제가 필요로 하는 시간의 전부입니다.
무엇이 생각입니까? 무엇이 마음입니끼? 생각과 마음 사이에는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생각은 마음에서 일어나며, 마음은 단지 생각들의 다발에 불과합니다. 생각이 없으면 마음도 없습니다.
무엇이 마음입니까? '나'가 마음입니다. 마음은 과거입니다. 마음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매달립니다.
그것은 시간에 매달리고, 대상에 매달립니다. 이것이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자 , 이제 그 마음이 어디서 일어납니까? '나'가 일어나면 마음이 일어나고, 감각작용이 일어나고, 세계가 일어납니다. 자, 이제 '나'가 어디서 일어나는지를 발견하십시오. 그런 다음 그대가 고요하지 않은지 저에게 말해 주십시오. 해 보세요. 그렇게 하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말해 보십시오.
제프 : 저는 당신이 말씀하시는 것을 경청하고 있습니다.
슈리 푼자 : 그 다음 말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나'라는 사실과, 마음은 '나'로부터 일어난다는 사실에 도달했습니다. '나'가 일어날 때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잠에서 생시로 넘어 올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자 이제 '나'가 일어나는 장소인 그 저수지를 발견하십시오. '나'가 어디서 일어납니까?
제프 : 그것은 이름입니다.
슈리 푼자 : 잠깐, 잠깐, 그대는 따라 오지를 못합니다. 다시 되풀이 하겠습니다. 만약 어느 저수지로부터 나오는 수로(水路)가 있다고 하면, 그대는 그 수로를 따라 올라가 그것이 저수지에서 시작되는 지점까지 갈 수 있습니다.
제 말은, 이와 똑같이 '나'라는 생각을 따라 가십시오. 그것이 어디에서 일어납니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답을 어떻게 발견하는지를 그대에게 일러 드리겠습니다. 그대는 이것을 모하메드 알리가 권투하듯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대 자신을 아는 것은 장미꽃잎을 만지는 것만큼이나 간단합니다. 그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어려움은 그대가 노력을 할 때만 생겨납니다. 그러니 그대는 '나'의 근원인 그 저수지로 가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 노력도 하지 말고,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노력을 배제하고 생각을 배제하십시오. 생각을 떨쳐 버리라고 할 때 제 말은, '나'라는 생각과 어떤 종류의 노력도 다 떨쳐 버리라는 뜻입니다.
제프 : 그것은 유성이 대기권을 스쳐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것은 잠시 빛을 발하다가 다시 허공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것은 마치 잠시 불꽃을 작렬하다 다시 '나'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슈리 푼자 : 다시는 아닙니다. '다시'가 되려면 그대는 과거로 가야 합니다. '다시'는 과거입니다. 제 말은 이 '나'를 없애라는 것입니다. 단 1초간 아무 노력도 하지 말고,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2분의 1초, 혹은 4분의 1초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친애하는 젊은 제프씨. 그대는 지난 3,500만년 동안 그대 자신에게 이렇게 많은 시간을 쓴 적이 없습니다 ! 지금 여기가 바로 그렇게 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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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 빠빠지, 자유를 깨닫는 과정에 마음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슈리 푼자 : 예, 도을 수 있습니다. 마음은 그대의 적이면서 동시에 그대의 친구입니다. 감각 대상에 집착해 있으면 그것이 그대의 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삿상에 오기를 열망하면, 그 마음은 친구같은 마음입니다. 그것이 그대에게 자유를 안겨 주겠지요.
제프 : 그것은 왜 그런지 크나큰 마음의 위안이 됩니다. 우리가 자유를 깨닫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누가 자유를 깨닫는 것입니까?
슈리 푼자 : 그 '누구'(who) 자체가 자유를 깨닫습니다. 그 질문을 하는 '누구'가, 이 '누구'가 지금 속박되어 있다고 느끼는 바로 그 '누구'입니다. 이것을 알고 나면, 그 '누구'가 그것이 하나임을 보여 주겠지요. '여보게 제프, 내가 그대를 여기로 데려온 바로 그 "누구"라네' 하고 그것이 말하겠지요.
제프 : 성 프란씨쓰코(탁발 승단을 창립한 이탈리아 성자, 1182~1226)는 '그대가 찾는 것은 찾는 그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슈리 푼자 : 그렇지요, 그렇지요. 그대가 '누구인가?'(Who), 누-구-인-가? (W -h-o) 라고만 할 때, 그대는 어디서 그것을 발견합니까? 말해 보세요. 어딥니까? 그대는 뭔가를 덧붙여야 합니다. 그래야 대답이 나옵니다.
그대는 누구입니까? 만약 그대가 단순히 '누구인가?'라고만 하면, 누가 그대에게 나타날까요? 단순히 '누구인가? 누구인가? 누구인가?(Who? Who? Who?),라고만 해 보십시오.
제프 : 그러면 1분도 안되어 부엉이 우는 것같이 될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우리를 여기로 데리고 온 그 힘, 우리를 삿상에 데리고 온 그 힘이 우리를 돌볼거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어떤 힘입니까?
수리 푼자 : 그대를 여기로 데리고 온 힘, 그대의 그 말을 하는 힘, 그 질문을 하는 힘, 그 힘은 동일합니다. 그 힘이 지금 질문자가 되었습니다. 그 같은 힘이 지금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힘이 또한 그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침묵을 지키라'(Keep quiet) !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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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 빠빠지, 당신께서는 저희들에게 깨달음에 관한 책들을 읽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깨달음이란 어떻게 느껴지고, 어떤 맛일거라는, 혹은 그것이 어떤 것일 거라는 그런 선입견과 기대를 유발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당신께서는 이런 면담에서 그에 관해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십니까?
슈히 푼자 : 저는 그대가 성스러운 책이나 성인에 관한 책을 읽으라고 권하지 않습니다. 그대가 영적인 책을 읽으면, 그대는 아마 그 중의 어떤 부분을 좋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대가 그것을 읽고 그것을 좋아하면, 그대는 그것을 기억 속에 저장합니다. 나중에 그대는 자유를 얻으려고, 앉아서 명상을 합니다. 그대는 자유롭기를 원하는데, 그대의 책에서 얻은 자유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명상을 할 때, 이 선입관이 나타나서 그대는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대는 자기가 체험한 것이 그대의 기억 속에 저장된 어떤 것이라는 것을 망각합니다.
그대가 얻은 것은 과거의 체험이지 깨달음이 아닙니다. 진정한 깨달음은 과거 기억의 체험이 아닙니다.
그대가 명상을 할 때 마음이 그대를 속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그대를 속이고 기만합니다. 그러니 마음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만약 마음이 무엇을 바라거나 좋아하면, 거기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마음이 좋아하는 것은 뭐든지 싫어하십시오. 기억은 과거를 의미합니다. 명상을 할 때, 그대는 마음 속에 있는 어떤 계획을 실행하려고 합니다.
'나는 내가 읽은 바 있는 그 지점에 도달해야겠다'라고. 따라서 그대가 나중에 하는 체험은 미리 예정된 것이며, 그대는 그것을 얻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무엇을 생각하든, 그것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윤회계에 대한 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현상계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그대의 생각이며, 그대의 소망입니다. 세계가 이렇게 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실제적으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그대가 그것의 실재성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대가 저 실재는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일단 체험하면, 윤회계를 단번에 내버리겠지요. 그대는 아주 새롭고, 아주 신선한 체험을 갖게 될 것입니다. 매 순간이 새로울 것입니다.
그대는 그것을 마음으로써 체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때는 전혀 마음이 존재하지 않고, 오직 그대 혼자일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고 이것만이 '체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다시 체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체험은 과거로부터 계획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말 하나의 체험이 되지는 않을 것이고, 하나의 아주 직접적인 만남이 될 것입니다. 그대는 처음으로 그것을 만날 것입니다. 그대는 자기 마음을 벌거벗긴 후, 즉 마음의 모든 개념들을 벗어버린 후 그것을 만나러 갈 것입니다. 거기는 옷을 벗고 가야 합니다. 일체를 벗어버리십시오. 벌거숭이가 되십시오. 심지어 벌거벗음 마저 벗어버리십시오. 그대는 이해합니까? 이 님의 방은 너무나 신성하므로, 이것이 그대가 거기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만약 그대가 그대의 님을 만나고 싶으면 그곳으로 가십시오. 누가 못가게 합니까? 바로 지금 그렇게 하십시오.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옷을 입는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옷을 벗는 것은 더 쉽습니다.
- 데이비드 가드만 엮음, 대성 번역 <빠빠지 면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