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자아 탐구 실제 수행방법 및 이론 정리 (42)

무한진인 2021. 7. 15. 23:12

방문자: 완벽하고 방해받지 않는 평화와 행복을 얻는 법에 대해 선명히 말해 주시겠습니까? 

 

푼자 : 이 질문은 바로 두어 단어로 말할 수 있다. 

침묵을 지켜라. 침묵은 그대를 어지럽히지 않을 것이다. 

마음을 혼란시키지 말라 그대가 왔던 곳의 거기에 그냥 조용히 앉아라. 

이것은 그대를 더 이상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온갖 갈망들을 따라 끊임없이 계속 움직인다면,

그대는 이번 생애에서는 평화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 그곳에 머물러라. 그렇게 헤보라 

성공하지 못했다면 내일 내게로 오라.

 

방문자: 고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오늘 저는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가야트리 만트라를 반복했습니다. 그 다음에 아트마 비차라를 시작했습니다. 마음을 고요히 하려고 심호흡을 했습니다. 그때 - - - .

 

푼자 : 깊은 호흡으로 마음을 고요히 하라고 누가 말했는가? 

나는 그대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마음을 말하고 있다면 그대는 마음을 고요하게 할 수 없다.

'마음'이라는 단어를 내뱉는다면 그대는 마음을 고요하게 할 수 없다. 

마음은 말 그 자체 속에 산다. 마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마음을 보지 못한다.

그대가 '마음'이라는 단어를 입밖에 낸다면 마음과 이미 관련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대가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원숭이를 조용히 앉히려고 꼬리를 당기는 격이다!

원숭이 꼬리를 잡아 당겨보라. 이 원숭이는 어떤 반응으로 나오겠는가? 

원숭이는 뒤돌아서 그대의 손가락을 물어 버릴 것이다. 

원숭이와 마음은 같다 !

 

방문자: 그리고 나서 저는 마음으로 고요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고는 몸, 마음을 내가 아닌 것으로 버렸습니다. 이것을 100% 확신합니다. 

 

푼자 : 몸과 마음을 버렸을 때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할 무엇인가가 남아 있는가? 

"나는 몸,마음,감각, 자아, 지성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면 무엇이 남는가?

 

방문자: 아무 것도 없습니다. 

 

푼자 : 이 무의 상태에서 그대는 깊은 호흡을 해야만 하는가? 

 

방문자: 아닙니다. 노력없이 조용히 머물겠습니다. 관찰자를 관찰하며, 보는 자를 보겠습니다. 

 

푼자 : 노력하지 않을 때 그대는 고요하다. 그대가 고요할 때 거기에는 아무런 관찰자도, 관찰해야 할 것도, 관찰도 없다. 이 고요 속에는 아무런 관찰자도, 관찰대상도 없다. 그대가 지금 말하는 것은 아무런 실제적 경험이 없는 지적 체조일 뿐이다. 어떻게 그대가 보는 자를 볼 수 있는가? 보는 자를 본다면, 보는 자는 보여지는 대상이 된다. 누구도 보는 자를 볼 수 없다. 그것은 주체와 대상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대상들만을 볼 수 있다. 보는 자는 오직 대상만을 볼 뿐이며, 그때 그는 오직 보는 자가 된다. 그러나 보는 자 그 자체는 관찰되거나 보여질 수 없다. 보는 자가 보여진다면 보는 자는 대상일 뿐이다. 

 

방문자 :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정신을 차려 주의하다가 생각들이 일어나면, 생각들을 봉오리 때에 딴다는 것입니다. 

 

푼자 : 정신을 차려 살피고 있는 때에는 생각은 일어날 수 없다. 정신을 차려 살펴라. 

그런 후애도 생각이 보인다면 내게 말하라.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생각이 무엇인지 말하라. 단지 방심하지 말고 주위를 살펴라. 그러면 아무런 생각이 오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면, 깨어서 주의를 살피는 것도 필요치 않을 것이다. 참나는 늘 홀로 존재하는 까닭이다. 참나는 보아야 할 어떤 대상도 필요하지 않다. 

 

방문자 : 생각들이 강하게 일어나면 저는 그 생각들에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존재하려고 노력합니다. 

 

푼자 : 훌륭한 경험이다. 생각이 거기에 있고 그 생각에 무관심하다면 생각은 그대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삿상 바완(Satsang Bhavan) 밖에 서 있으면 많은 차, 사람, 동물이 그대 앞을 지나쳐 갈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그것들에 무관심하여 그것들이 그대 앞을 그냥 지나가도록 내버려 둔다. 이처럼 그대는 보면서 무관심해야 한다.

생각이 좋다고 해서 그것을 쫏아가지 말라. 일어난 생각이 나쁘다고 해서 그것을 가라고 하지 말라!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생각을 뒤따라가 넋을 잃고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이 어리석은 자가 스스로의 삶을 낭비하는 모습니다. 수 백만년의 세월이 흐른 뒤 인간의 형상을 입고서도 이처럼 자신의 무지로 인해 스스로의 삶을 낭비하고 있다. 

이 인간의 모습을 가진 삶을 감각의 즐거움 속에 낭비해서는 안된다. 그대는 어떤 다른 것을 위해 왔다.

진정으로 그대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왔다! 이 질문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고통의 지옥에서 룰렛의 바퀴처럼 반복하여 돌 것이다. 이 몸은 지옥이다. 몸을 입고 있는 사람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왕이나 수상조차 항상 암살당할까봐 두려워한다. 그들은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두려워하며 보호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매우 다른 목적을 위해 왔다. 60억 사람들이 세상에 있다. 그런데 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삿상에 있는가? 

다른 이들은 그럴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 삿상에 참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 그대가 넉나우에 오도록 선택되었는가? 삿상이 여기에서 시작되기 전 넉나우는 지도에 조차 없었다. 

이제 넉나우는 외로운 행성에 조차 존재한다. 이제는 여행객들조차도 이곳에 와서는 다른 곳으로 가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기에 영원히 정책해 버렸다. 

 

방문자 : 직접적인 경험이 일어나기를 기다려야 합니까? 

 

푼자 : 아니다 ! 기다림이란 기다리는 대상이 이미 여기에 존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것을 기다리는 것은 그것을 미래에 놓아두고 바로 이 순간에 그것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여기, 지금에 없는 것은 그대 자신의 기본을 이루는 본질이 아닐 것이다 ! 

나는 그대에게 미래를 기다리라고 하지 않는다. 바로 지금 그대가 누구인지 그냥 말하라. 만약 그대가 이미 원래의 그대가 아니면, 그대는 어떤 다른 것이 된다. 그대는 길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이미 없는 것을 쫓지 말라. 여기 지금에 있는 자를 찾아 내라 ! 과거나 미래에 있는 자를 찾아내지 말라! 여기 지금에 무엇이 존재하는가? 

 

방문자 : 의식입니다. 무입니다.

 

푼자 : 지금 존재하는 것이 무라면 그대는 왜 내일을 계속 보고 있는가? 그것은 그대의 마음이 미래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마음은 과거를 의미한다. 마음이 움직일 때 마음은 현재에 머물지 않고, 과거의 무덤을 뒤진다. 

과거, 마음, 생각, 시간 사이에 차이는 없다. 그것들은 모두 같다. 시간을 말하는 것은 그대가 지금이 아니라, 지나간 순간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금은 여기에 앉는 바로 첫 순간 삿상에서 일어나야만 한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아트만이 그대에게 은총을 준 것이다. 지금이 이 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트만이 그대를 거절한 것이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 자유롭지 않은 사람, 깨달음을 얻지 못한 모든 사람들은 빛에 의해 거절되었다. 누가 그들을 구할 수 있는가?  그대는 바로 지금 그대의 참나를 보아야 한다 뒤로 미루지 마라. 이 세상은 미룸의 결과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주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대는 영원하지 않은 것들과 그냥 놀고 있다. 

 

방문자 : 근원으로 가는 올바른 길 위에 제가 있습니까?

 

푼자 : 여전히 그대는 의심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로 오기 위한 길이 필요했듯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움직이려면 길이 필요하다. 그러나 참나를 깨닫는 데에는, 그대는 얼마나 여행해야 하는가? 그대의 참나에 이르기 위해 어떤 길로 그대가 갈 것인가? 비행기,기차, 자동차가 필요한가? 교통수단은 필요치 않다. 

찾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이 점을 바로 지금 이해해야 한다: 그냥 그것을 이해해야지 그것을 위한 노력은 하지 말라. 참나는 영원하며 항상 여기에 있음을 이해하라! 

그대가 여기에서 다른 곳으로 움직일 때라도 참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참나는 항상 그대 안에 있다. 그대가 여기 저기로 웁직인다. 참나는 가슴 속의 거주자이다. 참나는 가슴이라는 동굴에 산다. 참나는 운직이지 않으며, 모든 것이 참나 속에 있다. 이것을 그대는 바로 지금 이해해야 한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고 이해할 때 참나는 그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방문자 : 어떻게요?

 

푼자 : 노력하지 않는 것이 방법이다. 나의 말을 이해하는가? 어떤 노력도 하지 말라. 이 '방법'이란 그대가 어떤 다른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을 원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는 지도가 필요하므로 그래서 방법을 묻고 있다. 

이 '방법들'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사용된다. 그대는 삼천 오백만년 동안 지도를 사용해 왔다. 

그러나 지금 그대는 삿상에 있다. 그대는 산 정상에  있다. 지도를 기다리지 말라. 그대는 지도가 필요 없다. 

그대는 내가 하는 말을 다른 아쉬람에서는 듣지 못할 것이다. 모든 아쉬람들이 상업화 되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만날 때는 이해관계, 비지니스, 상업적인 것이 두 사람 사이에 있다. 삿상을 위해 만나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단지 장사를 위해, 돈을 위해 만날 뿐이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이해관계가 있다. 세상에서 이익 없이 말할 사람은 없다. 삿상에서 우리는 한 가족이며 서로를 이용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이곳에서 우리는 동포, 이웃, 부모에 대한 사랑보다 더 많은 사랑을 서로에게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 정착했다.

 

                                                -슈리 푼자 지음, 김병채 옮김 <그대는 신이다>-

 

 

 

 

 

  2021년 7눨15일 1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