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라메쉬 발세카

참의식이 말하다(52)

무한진인 2021. 6. 18. 21:48

9장. 해야할 것들 

-- 서론 -- 

질문자: 생각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앞날을 상상하는데 정신이 팔려있는 나를 알아차리는 순간, 딱히 해야할 것이 있나요? 

 

라메쉬: 아무것도 없어요. 전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질문자: 다음 순간이 알아서 할거니까요? 잊어버리고 또 앞날에 대해 생각할지도 모르는데요? 

 

라메쉬: 맞아요. 제 말은, 당신은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지고 경청을 해왔단 말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질문 조차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이렇게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경청한 것이 이해가 될 것이고 이 이해는 목격이 될 겁니다. 이런 변화는 얽매임을 피하는데 필요하지요. 이해가 되는 대도 불구하고 "이제 그럼 난 뭘 해야하지?"라고 묻는 것은 "나", 즉 그 생각하는 마음이지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아무것도 하지 마시오."입니다. 이 말은 효과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무시하라는 뜻입니다. 오직 무시할 때만이 이런 생각하는 마음은 줄어들게 됩니다. 생각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길은 그 길 밖에 없습니다. 

 

질문자: 위파사나 명상에서 현재로 돌아오는 한 방법이 몸의 어떤 감각에 집중하는 것인데요. 이 방법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비슷해 보이네요. 

 

라메쉬: 아니죠. 그런 종류의 "행위"도 여전히 마음이 마음을 지켜보는 하나의 심리 작용입니다. 자아탐구는 매번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이 생각이 누구에게 일어났는가? 나는 몸이 아니다" 따위의 생각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다 시간과 시간의 흐름 속에 있지요. 안 그래요? 시간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얽매임입니다. 그래서 심리 작용에 얽매이게 되는 대신에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에 서 있는 편이 더 간단하고 더 효율적이죠. 생각이 들어오고, 목격되고, 잘려나갑니다. 목격에는 어떤 심리 작용도 필요가 없습니다. 

 

질문자: 자신이 행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가요? 

 

라메쉬: 당신이 행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속이 꽉 찬 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치는 겁니다. 당신은 에너지가 한 특정한 개별 패턴에 따라서 진동하는 그 텅 빔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개별 행위자는 커녕 개별 존재도 아니죠. 당신은 개별 개체 조차도 아니라고요! 당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단지 진동하는 에너지의 한 패턴일 뿐입니다. 진정으로 이것을 이해하고 확신한다면 굉장한 도움이 될 겁니다. 

 

질문자: 한 순간 그것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 후에 다시 하루 종일 주체 행동 의식이 있다고 가정하는 자신을 보게될 겁니다. 

 

라메쉬: 아, 그럼요! 그것은 반드시 다시 돌아옵니다. 돌아오게 놔둬요! 

 

질문자: 하지만 이해가 조각 조각 나눠져 버리는데... 

 

라메쉬: 그와 반대로, 이해는 나눠진 조각으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존재의 뿌리로, 존재의 기초 토대로 곧바로 내려갑니다. "나는(내가 있다), 나는 살아있다."는 말은 반복해서 되뇔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사람이다."라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알고 있어요. 그런 생각이 일어나면 인식이 일시적으로 흐려진 겁니다. 어느 정도까지 흐려질지는 당신 손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내"가 이런 생각을 쫓아 버리는데 쓸 수 있는 기술이란 없어요. 

 

질문자: 그럼, 자신이 행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 순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여러 번 조금씩 이해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하군요. 

 

라메쉬: 전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질문자: 책 '아이 앰 댓'를 보면, 여러 번 마하라지께서 '나는'이라는 의식을 꼭 붙들고 있으라고 사람들에게 훈계하시더군요. 

 

라메쉬: 그 답은 뭔가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 답이죠. 이렇게 행동을 해야하는 천성을 타고난 사람인 카르마 요기에게 그냥 이해하라고만 하면 몹시 어려워할 겁니다. 마하라지께서 "'나는(내가 있다)'에 머물러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마하라지께서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지요. 분명히 그분이 누군가에게 하신 말씀이었죠. 전 이 문제로 6개월 동안이나 심하게 골치가 아팠죠. 이 문제가 당신 문제이기도 합니다. 

 

질문자: 그렇군요. 다만 6개월은 안 걸렸으면 좋겠네요. 

 

라메쉬: 6년이 안 걸리면 감사해야죠! 하지만 이건 기본적인 문제입니다. 그 의문이 매일 아침부터 하루 종일 저를 성가시게 했죠. 마침내, "그냥 있어라" 또는 "'나는'(내가 있다)에 머물러라"라고 권고하신 것이 "나"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이해가 불현듯 일어났지요. "내"가 그저 참의식 속에서 나타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기본 진실을 받아들인다면, 더 해야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받아들임이 모든 사람에게 빨리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이런 받아들임이 확고해져 가는 과정 동안, 마하라지께서 어느 정도 안내가 필요한 그 "나"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런 것이 필요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언급하지 않으시죠. 마하라지께서 이미 명백하게 밝히신 기본 진실은 의지력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분리된 개체로서 독립된 인간이라는 그런 객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라 어떤 의지력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마하라지 자신의 경우에는 직관적 헌신, 즉 박티의 성향을 타고 나셨습니다. 마하라지께서는 매일 저녁 사원에 가서 바잔(신을 찬양하는 노래 - 옮긴이)을 노래하곤 하셨죠. "나는 목소리가 아주 좋아서, 이렇게 노래하는 것이 즐거웠고 아주 행복했지. 난 어떤 지식에도 관심 없었고 신의 이름을 되뇌는 것에도 관심 없었어. 노래하는 게 좋았고 그렇게 했지."라고 말씀하셨죠. 마하라지의 한 친구분이 한 구루를 찾아 뵙곤 했는데, 하루는 마하라지에게 같이 가자고 졸랐답니다. 그래서 마하라지도 따라 갔죠. 전통적으로 구루에게 화관을 가져 갑니다. "이 화관 선물조차도 내 친구가 샀지."라고 마하라지가 말씀하셨죠. 이 구루의 기본 핵심이 되는 가르침은 개별 개체 같은 것은 없는데, 개별 개체라는 것은 단순히 참의식 안에 있는 껍데기일 뿐이라는 것이었죠. 마하라지가 말씀하시길, "난 그 가르침을 받아들였는데, 아마도 내가 못 배운 사람이었기 때문일거야. 내 지능은 모든 것에 왜 그런지 이유를 알고 싶어할 만큼 예리하게 발달하지 않았지. 어떤 이유에서건 난 받아들일 수가 있었고 더는 문제 없었지." 마하라지는 계속해서 바잔을 부르러 갔고, 그와 동시에 이런 이해가 그분 심장에 뿌리내렸습니다. 서서히 사원에 가는 것을 멈추었지만, 어떤 노력도 들이지 않으며 멈추었죠. 

 

질문자: '나는(내가 있다)'에 머무르는 것에 관해서 누가 마하라지께 "선생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마하라지께서 말씀하시길, "내 구루를 찾아 갔고 그분께서 '나는(내가 있다)'에 머물라고 말씀하셨지. 나는 그렇게 했고, 삼 년 만에 깨달음이 일어났네."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좀 더 부연 설명하셨는데, 그 삼 년 동안 그분은 점점 더 '나는(내가 있다)'에 머물렀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목격은 늘 일어나고 있었지만 단지 그분이 점점 더 자주 그것을 인식했다는 말인가요? 그분이 더는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게될 때까지 그러셨다는 말입니까? 

 

라메쉬: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동태 형식으로 말을 계속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마하라지께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어디에도 남아있는 "이"가 없다고 되뇌는 것뿐이었죠. '나는'(내가 있다)에 머무는 것은 일어날 뿐입니다. 그래서 마하라지 말씀은 수동태로 이해해야 합니다. 

 

질문자: 저 자신을 아주 무능하고 죄스럽고 무지하게 느끼는 이유가 제가 '나는'이라는 자각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바보 같은지 압니다. 그럼 이렇게 느끼는 것 조차도 놓아버려야 합니까? 이 모두가 같은 망상의 일부입니까? 

 

라메쉬: 예, 그리고 그 망상은 계속되기로 되어있는 때까지 계속될 겁니다. 

 

질문자: 제가 여기에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왔습니다만, 없군요. 

 

라메쉬: 없죠. 제가 한 가지 해줄 수 있는 말은, 여기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까닭은 "당신"이 사라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당신"을 사라지게 하지 않을 겁니다. 

 

질문자: 못하죠. 그런데, 정말 열심히 노력했군요. (웃음) 

 

라메쉬: 못하죠! 에고는 자살하지 않겠죠. 그리고 깨달음을 원하는 것이 바로 그 "나", 즉 에고인데, 깨달음은 "내"가 제거되지 않는 한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농담처럼 들리죠. 역설이죠. 

 

-- 바꾸려고 노력하기 -- 

 

질문자: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사랑을 타고 났지. 어떻게 하면 이 자신에 대한 사랑을 그 참위대함으로 가는 문으로 쓸 수가 있지? 

 

라메쉬: 친구, 그것을 누가 사용하려 하고 왜 사용해야 하나? 이것이 내가 말하는 핵심이네. 왜 자신에 대한 이 사랑을 써서 뭔가를 변화시켜야 하나? 뭔가가 변해야 한다면 변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자네 노력 때문이 아니며 자네와 상관없이 변하는 걸세. 

 

질문자: 그럼 사다나가 쓸모 없다는 말인가? 

 

라메쉬: 일어날 사다나가 있다면 일어날 거네. 일어날 사다나가 없다면 사다나는 일어나지 않겠지. 

 

질문자: 그럼, 명상하기를 좋아하면... 

 

라메쉬: 그럼 하겠지! 

 

질문자: 좋네, 그게 내 질문이었네. 나는 뭔가 하는 것을 좋아하니, 추천해줄 만한 방법이 있는지 묻고 싶네. 

 

라메쉬: 없네. 내 방법은 지극히 간단하다네. 자기 일을 하고 싶으면, 하게. 앉아서 명상하고 싶으면, 하게. 뭔가를 성취하고 싶으면, 하게. 내가 "하라"고 말하는 까닭은 오직 한가지 뿐인데, 자네 질문에 능동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지. 사실, 내 말 뜻은 자네가 그 일을 안 하려고 피할 방법이 없다는 말이네. 일어나는 일을 일어나지 않게 막거나, 일어나지 않을 일을 일어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네. 이것이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지.(29 jung)

 

                                - 리만 편집,김영진(관음) 번역<라메쉬 발세카와의 대담, 참의식이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