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이 나타나는 바탕에 주의를 기울이시오.
듣는 자나 읽는 자는 내버려두고 아무 것도 하지 마십시오.
"나는 내 몸이다"는 무지의 한 징표입니다
값비싼 아동복이 어른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듯이,
몸의 괴로움은 몸 없는 자와 무관합니다.
여러분은 의식이고, 그것을 여러분의 스승으로 숭배해야 합니다.
세탁하고 난 더러운 물에서 여러분은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듯이,
자신의 행위의 결과에서 아무 것도 기대하지 마십시오.
의식으로서의 여러분 자신과 하나가 되십시오.
여러분은 신처럼 스스로 빛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의식을 바그완(신)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모든 활동과 가정생활은 시간 보내기나 오락을 위해 기여할 뿐입니다.
여러분이 꿈을 꿀 때는 그 세계로 나타나는 자신의 마음을 지켜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 모두가 거짓이기는 하나, 지켜보는 동안은 그것이 여러분에게 대단히 '현실적'입니다.
그것이 나타나는 시간 동안은 일체가 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 도와줄 친구를 찾고 있다면, 자신의 의식과 친해지십시오,
그것은 결코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은 밤 동안의 낮이지 낮 동안의 밤이 아닙니다.
무지 속에 지(知)가 있습니까, 아니면 그것은 지(知) 속의 무지입니까?
꿈 세계는 지(知) 속에서 보입니까, 무지 속에서 보입니까?
여러분은 이 오늘도 무지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온 곳으로 계속 돌아 가십시오.
실은 의식은 무지일 뿐입니다.
나타나거나 보이는 모든 것은 의식 속에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모든 세계가 무지입니다.
이것이 원초적 혹은 본래적 무지입니다.
이 의식이 나타나는 바탕인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어느 종교든 그것은 우리의 실생활에서의 적절한 행동을 의미합니다.
그 종교는, 행동에 대해 잘 알고 그것을 보살피는 현실을 따릅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아가 되고 진아로서 살기 위한 것입니다.
만일 지나치게 많은 부(富)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좋은 일에 써야 하고,
늘 진아를 향한 도정(道程)에 있어야 합니다.
극소수만이 자신의 진정한 자리 혹은 거주처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우리는 적절한 행동과 함께 진아로써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러지 않고 하나의 몸으로 일체를 즐기고, 진아를 잊어버립니다.
부(富)가 들어오면 생각이 그것을 쓰는데만 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진아를 기억합니까?
돈이 있으면 여러분이 관능적 즐김과 영적인 공부 둘 다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에게 영적인 공부는 맨 나중에 옵니다.
부를 제대로 쓰면 영적인 공부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찰나적 쾌락만 원하고 지속적인 행복은 원하지 않습니다.
만일 진아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뿌리에서부터 나오는 온전히 지(知)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몸이 지속되는 한, 매 순간이 영적인 사람을 살기에 좋고 상서롭습니다.
몸이 넘어지면 그 기회가 끝납니다.
최고의 참된 종교는 - 그것을 다르마라고 하는데 - 진아를 알려고 애쓰고, 진아로써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몸과 동일시하면서 무엇을 하든, 그것은 늘 불완전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점점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분투하게 되고, 그것을 이루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소유물을 향유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한 사람의 향유자로서 나의 진정한 형상은 무엇입니까?
향유하는 어떤 영구적 형상을 내가 가지고 있습니까?
영구적으로 존재하기 위한 어떤 제어력을 내가 가지고 있습니까?
나의 형상은 가장 작은 것일지 몰라도, 그것이 내 제어 하에 있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탐구하는 것이 존재의 최고 의미를 살아내고 알아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그토록 많이 분투하지만
죽고나면 그 부가 완전히 버려집니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수고를 합니까?
몸이 너머질 때 나의 '나'가 남아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마야로 인해,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고를 분별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스승의 은총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불멸의 진아를 성취합니다.
'밤'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한 무지를 의미합니다.
시바의 상태에서 우리가 그것을 알게 됩니다.
시바의 떠오름은 무지에서 뜨는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생시상태는 시바의 밤에 해가 뜨는 것입니다.
잠이 서서히 생시로, 곧 무지가 지(知)로 변하고 있습니다.
알려지는 모든 것은 부단히 변하지만
그것을 아는 자는 변치 않습니다.
그 아는 자 안에는 빛도 없고 어둠도 없습니다.
이미 여러분에게 있는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식에 순복하고 그것을 기쁘게 하십시오.
그러면 인간 삶의 네 가지 주된 목적 (다르마,재산,정욕,해탈) 모두를 성취할 것입니다.
그것 자체가 하나의 기도입니다.
의식의 잠재력을 믿고, 그에 온전한 믿음을 갖는 것이 명상입니다.
도처에서 뭔가를 찾으며 들떠 하지 마십시오.
이 의식의 성질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빛나고, 형상이 없고, 사랑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듣고 있는 것이 몸이나 귀입니까?
그것은 순수한 의식의 작용입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그 자각을 가지고 머무르는 사람은 신들의 신을 기쁘게 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면 신이 친절해져서 그 자신과 그 헌신자 사이의 모든 차이점을 제거해 줍니다.
그럴 때 그 헌신자는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얻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무 것도 욕망하지 말고, 충만함의 느낌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 그로 인해 욕망들이 있게 되는 그것을 숭배하십시오.
그러면 무엇을 욕망할 필요가 없게 될 것입니다.
비이원적 숭배로써 신과 하나됨을 이루는 사람은 모든 면에서 완전해집니다.
의식이 신인데, 그것이 우리의 모든 자기사랑과 우리의 존재 욕구의 원인입니다.
지(知)와 무지가 결합하면 둘 다 사라지고 ,
남믄 것은 그것들의 주시자입니다.
그것을 초월자(Vijnana)라고 하는데,
그것은 '지(知)를 넘어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물과 음식이 있는 곳에는 개인적 영혼들이 존재하게 되어 있습니다.
점화되는 능력을 가진 여러분의 의식이 전세계의 생명입니다.
의식이 있는 한 괴로움이 있고, 의식이 없으면 모든 것이 좋습니다.
이 모든 사랑은 삶에 대한 사랑입니다.
충만한 진아는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진아는 도처에 있고, 그래서 어떤 움직임도 있을 여지가 없습니다.
모든 앎은 진아 때문에 있지만 이 진아는 그 자신을 알 필요가 없습니다.
극소수만이 모든 봄(Seeing)의 원인인 '그것'을 봅니다.
-대성 번역 <자기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