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식이 말하다(48)
-- 깨달음에 무지가 더해진 아이들 --
질문자: 제게 어린 딸아이가 하나 있는데요. 그 아이가 찾는 이가 되도록 성장시키거나 아이의 이해가 높아지게 하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라메쉬: 그 반대로, 당신이 너무 애쓰면 아이는 거부할 겁니다.
질문자: 아이는 그냥 알아서 자기가 할 일을 하게되나요?
라메쉬: 그렇지요.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이가 호기심을 보이거나 알고 싶은 것이 있어 물어 볼 때를 대비해서 곁에 있어주는 것 뿐이지요. 딸이 몇 살이죠?
질문자: 한 살이요.
라메쉬: 그 때는 아이에게 아무것도 말해줄 필요가 없어요. 아이는 압니다. 아이는 알고 있지만 그 원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자기가 안다는 사실을 모르죠. 이런 까닭에 아이들이 이상한 것을 말하기도 하지요. 아이들은 자신의 비개인성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데 이런 이해는 아이가 말을 시작하면서 나타나지요. 자신을 가리키면서 제3자 이야기 하듯이 말하는데, "제인이 사탕 먹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죠. 아이들은 "나 사탕 먹고 싶어요."라고 말하지 않지요. 아이는 자신을 참전체성의 일부로 봅니다. 나중에 길들여지기 시작하고 이 정도가 강해지면서 아이는 "내가 무엇을 원해요."라고 말하고 이렇게 정체성이 완성되지요. 그때 까지는 비개인성을 직관적으로 느끼지요.
질문자: 그 말씀은 아이가 깨달았다는 뜻인가요?
라메쉬: 아이는 깨달았지만 그 사실을 모르죠. 아이의 경우는, 깨달음에 무지가 더해진 거죠. 그리고 이런 무지는 마음이 내면으로 향하기 전까지 계속되지요. 마음이 내면으로 향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말이죠. 그 후에 과정이 완성되면 깨달음에 지식이 더해지지요. 그래서 과정은 거쳐야하고 그래야 그 원이 완성되지요. 처음에는 깨달음에 무지가 더해진 것이죠. 나중에 깨달음에 직관적 지식이 더해지지요.
-- 아이처럼 이해하기 --
질문자: 선생님께서는 저희에게 말씀하실 때 개념을 사용하시는데, 저희가 그 개념을 이해할 수 가 있어야하죠. 그러면 네, 다섯 살 되는 저희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신의 본성에 관해서 말해줄 수 있을까요? 좀더 쉬운 개념이 필요...
라메쉬: 아니요. 설명해줄 필요가 없죠. 차라리 아이가 당신에게 신이 어떤 존재인지 말해줄 수가 있지요. 아이들은 신에 관해서 아무 말도 들을 필요가 없어요. 한 독일 여자 분이 인도에서 있은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그 여자 분과 남편 둘 다 일을 했죠. 그들에게 아이를 돌봐주는 캐런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엄마가 일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 거의 4살이 다 된 아들 필립이 그날 오후에 무슨 말을 했는지를 캐런이 엄마에게 말해주었지요. 필립이 말했습니다. "우린 다 꿈꾸고 있는데 우리가 죽을 때 깨어날 거예요." 그날 저녁, 엄마가 확인해 봤어요. "오늘 캐런에게 무슨 말했니? 꿈에 관해서 뭔가 말했잖아." 필립이 대답했어요. "아 그래요. 제가 캐런에게 우린 다 꿈꾸고 있는데 우리가 죽을 때 깨어날 거라고 했어요." 엄마가 필립에게 물었죠. "그걸 누가 얘기해 주던?" 필립이 엄마를 마치 엄마가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 것 같다고 하더군요. 아이는 그 질문을 이해 못했죠! 엄마가 당연한듯 답을 기대하면서 아이를 계속 쳐다봤더니 아이가 이렇게 말하면서 엄마를 위로 했답니다. "누가 말했겠어요? 신이 말해줬죠."
질문자: 모든 아이가 그 같이 이해하나요?
라메쉬: 아, 아니죠.
질문자: 그러면, 아이는 저처럼 이해를 못하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하죠? 선생님께서 저희에게 말하는 식으로는 아이에게 말해줄 수 없거든요. 아이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나요?
라메쉬: 왜 아이에게 신에 관해서 설명해 주어야한다고 생각합니까?
질문자: 왜냐하면 아이들이 늘 "왜? 왜? 왜?"라고 묻기 때문이죠. 제가 그냥 "왜 아니야? 왜 아니야? 왜 아니야?"라고 말해줄 수 없잖아요.
라메쉬: 아이가 얼마나 쉽게 "왜 아니야?"라는 답을 받아들이는지 보면 정말 놀라겠군요. 한 번 해보세요! 아이가 이해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완전히 오해죠. 아이가 "누가 절 만들었어요?"라고 묻지요. "신이 널 만들었지."라고 말해주면, 바로 아이가 "누가 신을 만들었어요?"라고 물을 겁니다.
질문자: 그거예요! 제가 늘 그 질문을 가지고 살았어요. 때어나서부터 전 늘 제 자신에게 "신은 어떻게 태어났지?"라고 물었어요.
라메쉬: 그러니, 남은 유일한 답은 아이에게 우리를 만든 것은 신이고, 신이 이 세상을 만들었고 우리는 신을 누가 만들었는지 모른다고 설명해주는 것뿐이죠.
질문자: 미스테리군요.
라메쉬: 우리가 신만큼 똑똑하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수수께끼죠!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얼마나 빨리 아이가 이것을 받아들이는지 보면 놀랄 겁니다.
질문자: 그 말씀은 사람들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아이는 여러 개념들을 가진 어른들 보다 쉽게 실재를, 즉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인가요?
라메쉬: 그 말이 맞습니다.
질문자: 아이들이 길들여지지 않도록 어떻게 하면 우리 교육체계를 완벽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라메쉬: 못하죠! 만일 그러면, 세상이 종말을 고할 겁니다. 모든 아이가 완벽해지고 완벽한 인간 표본이 되겠죠. 완벽하다는 것이 성스럽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 어떤 아이들은 잔인한 짓을 하기도 하지요. 제 친구 하나가 네, 다섯 살 먹은 남자 아이들 둘에 관해서 해준 말이 있어요. 그 아이들이 뭘 하는지 아세요? 아이들이 개미들을 모두 모아 쌓아놓습니다. 한 아이가 쌓아놓고, 다른 아이가 성냥에 불을 붙혀서 개미들을 불질러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이들이 천진난만하다고들 이야기하는데, 맞는 말입니다. 아이들이 천진난만한 것은 자신에게 어떤 죄도 묻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는 죄라는 개념이 없고 이때문에 천진난만한 겁니다.
질문자: 아이가 어떤 단계에 가면 자기가 한 일이 잘못 됐다고 느끼지 않을까요?
라메쉬: 아 그럼요. 나중에 아이는 길들여지면서 그렇게 느끼겠죠. 옳고 그르다는 원칙으로 아이가 길들여지면서 그렇게 느낄 겁니다. 하지만 한 도가(道家) 스승은 이렇게 말합니다. "옳고 그름은 마음의 병이다."
질문자: 제 아이가 개미들을 불지르고 있는 것을 본다면 전 어떻게 해야 하죠?
라메쉬: 그때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말하세요. 하지만 당신이 아이에게 무엇을 말하든지, 길들임은 시작됩니다. 이렇게 죄의식이 스며들기 시작하지요. 옳고 그름을 선택하는 "마음의 병"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하지요. 이것도 삶의 일부입니다. (27cho)
- 리쿼만 편집,김영진(관음) 번역<라메쉬 발세카와의 대담, 참의식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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