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변화무쌍한 것들 가운데서 변치 않는 것을 관찰하시오

무한진인 2021. 5. 4. 23:20

마하리지 : 마음을 아는 자는 마음에 의해 영향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음과 관찰되는 것은 우리의 몸 정체성, 곧 몸과의 동일성 때문입니다.

 

방문객 : 보통은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통제합니다.

 

마하리지 : 타고 있는 향대를 예로 들어 봅시다. 내가 그 냄새를 맡습니다. 나는 그 향대도 아니고 그 냄새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내 존재를 냄새 맡는 것은 음식 몸 때문입니다. 나는 몸도 아니고, 존재한다는 느낌(의식)도 아닙니다. 

 

방문자 : 아디 상까라는 왜 이른 나이에 대삼매에 들었습니까? 

 

마하리지 : 나는 이 존재한다는 느낌의 지속이나 퇴거와 무관합니다. 숨쉬기는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호흡은 여러분과 무관하게 몸속을 들고 납니다. 여러분이 그 호흡이나 생명기운이 아니라면, 마찬가지로 어떻게 여러분이 마음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자기 마음을 볼 수 있으니 그것과 여러분은 별개인 것입니다. 

몸은 5대 원소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이 그 원소들이 아닌데 어떻게 그 몸일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무지로 인해 몸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몸과 구분되고 몸을 떠나는 그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죽음은 없습니다. 저는 이 몸과 그것의 존재에게서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여러분에게서도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찾아오든 않든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존재는 (5대 원소에서) 빌려온 것이고 시간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가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방문자 : 아디 쌍까라는 왜 젊은 나이에 타계했습니까?

 

마하리지 : 그대가 그와 같아질 때, 그것을 알게 되겠지요.

 

방문자 : 일전에 저에게 분노가 다가왔습니다. 제가 화를 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와같이 분노와 별개인 태도를 지니고 있을 때, 무책임한 행동이 있을 수 있습니까? 

 

마하리지 : 그 분노는 마음과 관계됩니다. 그대가 마음입니까? 그대는 무엇입니까? 그 생각들의 흐름을 지켜보는 것은 누구입니까? 자신을 마음과 동일시할 일은 없습니다. 설사 그대가 의식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해도 그 또한 사라질 것입니다. 

 

방문자 : 그러나 우리는 이 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마하리지 : 의식이 전혀 필요없는데도, 그대는 그대의 의식때문에 고통받아야 합니다. 

 

방문자 : 우리의 모든 필요(욕구)는 의식 때문입니다. 의식이 없으면 욕구도 없습니다. 

 

마하리지 : 그대는 들은 말을 옮기고 있습니다. 말은 해탈한 자를 묘사하지 못합니다. 

 

방문자 : 그러면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마하리지 : 그대가 하고 싶은 것은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그대가 하고 싶은 일은) 어떤 것도 멈춰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말입니다. 아침에 그대가 깨어나는 것, 그것은 어디서 일어났습니까? 

 

(대답이 없음)

 

방문자 : 어떤 사람이 자신은 진아지를 가졌다고 확신한다면, 그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마하리지 : 그것은 무지 속에 있다는 하나의 확실한 표지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들의 진아 깨달음에 대해 저의 확인을 받으려고 찾아오지만, 그것을 얻지 못합니다. 

진아지를 나누어 주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는 방식은 여러분이 다른 데서는 만나지 못할지 모릅니다. 변화무쌍한 것들 가운데서 변치 않는 것을 관찰해야 합니다. 낯과 밤의 경험은 변화무쌍하며, 불변이 아닙니다. 의존적인 만족은 참되지 않습니다. 참된 만족은 맛이 없습니다. 즉, 참된 만족 안에는 존재의 느낌이 없습니다. 

주시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뭐든 여러분의 참된 진아일 수 없습니다. 

 

방문자 : 만일 제가 이해한 것에 제가 완전히 만족하고 있다면요?

 

마하리지 : 그러면 거기에만 있으십시오. 그걸로 충분합니다. 저는 누구도 언짢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언짢음의 원인 자체를 뿌리 뽑기 위해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여기와서 행복해진다면, 제가 그의 축복을 필요로 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언짢은 마음으로 떠난다면, 제가 그에게 사과를 해야 합니까?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지는 것은 진아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일 뿐인데, 마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방문자 : 경험들은 변해도 주시자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마하리지 : 그것은 변하고, 그로 인해 그 주시하기가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망원경을 이용해서 멀리 있는 별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의식은 그것으로 여러분이 대상들을 볼 수 있는 하나의 망원경입니다. 그것이 그대의 작업입니까? 

 

방문자 : 그것은 의식의 작업입니다. 

 

마하리지 : 주시하기는 일어납니다. 그것을 작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주시자는 하나의 행위자가 아닙니다. 

 

방문자 : 우리의 몸도 하나의 망원경과 같습니다. 

 

마하리지 : 몸은 진흙과 같습니다. 

 

방문자 : 그것은 음식 물질 뿐입니다. 

 

마하리지 : 누기 저를 찾아와도 좋습니다. 제 이야기는 누구를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그의 기대에 반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볼지도 모릅니다. 듣는 사람은 그의 몸 정체성을 가지고, 남자로서 혹은 여자로서 듣습니다. 그래서 오해가 생겨납니다. 제가 어떻게 그 사람의 무지를 지지하여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야러분의 의견에 부합하든 않든, 저는 진리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꿈 속에서는 우리가 자신을 다섯 살 난 아이로도 봅니다. 그 아이가 자라서 백 살이 됩니다. 그는 좋고 나쁜 것들을 경험하다가 마침내 죽습니다. 그 꿈이 거기서 끝나는 것은 생시 때문입니다. 그 꿈 속에서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이었습니까? 그 꿈 속에서 우리는 심지어 브라마 신을 보기도 합니다. 그 꿈을 지켜보는 동안 그 꿈의 주시자는 잊어졌고, 우리는 그 꿈 세계의 한 참여자가 되었습니다. 꿈 속의 몸을 포함한 그 꿈 세계가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주시자는 그 꿈 세계의 일부입니까? 그 꿈 세계를 본 것은 자고 있던 몸입니까, 아니면 꿈 속의 몸입니까? 

그 꿈이 끝났을 때, 꿈 속에서 본 브라마 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가 화신으로 다시 올까요? 

 

방문자 : 그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마하리지 : 그 꿈 속의 경험에서 무엇이 거짓이었습니까? 깊은 잠 속에서는 저 생사의 느낌이 거짓이었고 어리석은 것이었습니다. 

 

방문자 : 만약 이 생이 똑같이 거짓이라면, 제가 왜 이렇게 태어났습니까? 

 

마하리지 : 그대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알고서는 그대가 결코 태어나지 않았겠지요. 그것은 그대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안 것은 3년 내지 5년 뒤였습니다. 알면서 누가 자궁 속에 들어가 아홉 달 동안 썪으려고 하겠습니까? 

 

                                                      -대성 옮김 <無가 일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