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금강경

해안선사 금강경 강의(26)

무한진인 2021. 5. 3. 23:43

法身非相分(법신비상분) 第二十六(제이십육)

[본문]

須菩提(수보리)야 於意云何(어의운하)오 可以三十二相(가이삼십이상)으로 觀如來不(관여래부)아 須菩提言(수보리언)하사대 如是如是(여시여시)니이다. 以三十二相(이삼십이상)으로 觀如來(관여래)니이다. 

佛言(불언)하사대 須菩提(수보리)야 若以三十二相(약이삽십이상)으로 觀如來者(관여래자)인댄 轉輪聖王(전륜성왕)도 即時如來(즉시여래)니라. 須菩提(수보리)가 白佛言(백불언)하사대 世尊(세존)이시여 如我解佛所說義(여아해불소설의)컨댄 不應以三十二相(불응이삼십이상)으로 觀如來(관여래)니이다. 

수보리야, 뜻에 어떠하냐, 가히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본다 하겠느냐. 수보리 말하되, 네, 네,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사대, 수보리야, 만약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본다 할진댄, 전륜성왕도 곧 여래이겠구나. 수보리, 부처님께 사루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내가 부처님의 설하신바 뜻을 아는바 같아서는, 응당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본다고 못합니다. 

 

[해설]

전륜성왕은 사주세계(四州世界)를 맡아 다스리는 대왕(大王)이니, 부처님과 같이 삼십이상이 구족된다. 

이 경 첫머리에서 이와 같이 내가 들었사오니 - - - - 로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설법에서 불법이 무엇인가를 대강 짐작하였을 것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무엇인 줄도 알았을지니, 이 대문의 강의에 있어 구구한 설명을 피하거니와, 부처님이 왜 이토록 말이 많은신가를 생각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단하선사(丹霞禪師) 이야기를 참고로 하나 하기로 하자. 

옛날 단하선사라고 하는 조사(祖師)스님이 한분 계시었는데, 어느해 겨울 몹시 추운 날, 어느 절에를 찾아 가시었다. 방에를 들어가 본즉, 삼척냉방이요, 주인도 어데를 가고 없으므로, 불을 좀 때려고, 밖에 나와서 나무를 찾은즉, 나무도 없었다. 마침 법당을 들어간 본즉, 커다란 목조불상(木造佛像, 나무로 만든 부처님상) 삼존(三尊)이 계시므로, 목불 한분을 업어다 부엌에 놓고, 도끼로 쪼개서 불을 넣고, 뜨듯한 방에 누어 잠이 들었다. 

 

그제야 주인이 돌아 와서 방에 들어와 본즉, 의외에도 방은 쩔쩔 끓고, 알지 못하는 객승 한 분이 코를 골고 있었으므로, 객승을 흔들어 깨워가지고, 나무가 없는데 어떻게 방을 더웁게 했느냐고 물은즉, 

단하선사는 법당에서 목불을 한분 가져다가 땠다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깜작 놀래어, 큰소리로, 중놈이 부처님을 패서, 불을 때는 놈이 어데가 있느냐고 꾸짖었다. 

 

이 말을 들은 선사는, 아무 말도 없이 부엌으로 가서, 부지깽이로 다 타버린 재를 허적허적 하므로, 주인이 어이없어, 그 무엇을 하는것이냐고 다시 물은즉, 선사는 사리(사리는 구슬이니 부처님이나 수행이 높은 스님에게서 나오는 정신의 결정인 구슬임)를 찾노라고 대답하였다. 

주인은 또 다시 어이없어, "이 종놈아 목불에서 무슨 사리가 나오겠느냐"고, 말한즉, 선사는 주인을 보고 그러면 나머지 두불상을 마저 패서 불을 때어야겠다고 하였다 한다. 

그 당시 주인은 눈썹이 다 떨어지고 말았으며,

그리하여 단하선사의 목불을 때었다는 말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독자여 ! 여기서 조심하여야 할 것은 부처님의 뜻이 어데 있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고, 부처님의 말만 따라다니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실다히 상을 여읜 사람이라면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본다는 것이 무슨 허물일 것인가.

상이 상이 아닌 줄만 안다면, 상으로써 여래를 볼 것이요, 

상을 여의고서야만, 여래를 본다는 것이 도리허 허물 되는 말이다. 

 

왜냐하면, 상과 상 아님을 둘로 보는 소이이니, 

우리 문중에는 하나도 허물되거니, 둘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불법은 물론 마음 법이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곧 부처인 것이니, 마음 밖에서 부처를 구함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자기의 참부처를 알지 못하고, 삼십이상의 거룩한 상모가 부처인줄로 믿어, 

공양승사를 한다든지, 더구나 나무나,돌이나, 흙이나 쇠나 금으로 조성한 불상을 부처로 믿어, 

공양승사를 하고, 기도를 한다든지, 염불, 참선을 하는 이들 중에도, 부처가 보이기를 기다리고 있다든지 하는 것은 어리석은 중에도 더 어리석은 일이요, 미신 중에도 더 큰 미신이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크게 고치지 못할 어리석은 병이 있으니, 

이것은 다소 불교를 안다는 이들 중에 있는 병이다. 

내 마음이 참 부처요, 불상은 우상(偶像)이라 하여, 공양승사는 말할 것도 없고, 기도나 예배를 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만 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는 것 까지도 비방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 참으로 불법을 아는 사람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금강경을 본 독자 여러분에게 물어보고 싶다. 

 

마음이 부처라 하니, 마음이 무엇인가, 

물론 불교서적을 다소 본 사람이라든지, 문자를 아니 읽었더라도 참선이나, 염불을 좀 한 사람이면 누구나 한결 같은 소리로, 마음이란 이름도 없고, 상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방원장단(方圓長短)도 없고, 청황적백도 없는 것이 마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경을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도, 이 경에서 마음이란 이러한 것임을 짐작하였을 줄 안다. 

그러면 이렇게 안 것이 마음을 안 사람인가. 아니다. 

마음이란, 이름도 있고, 상도 있고, 소리도 있고, 냄새도 있고, 방원장단도 있고, 청황적백도 있는 것이 마음이다. 

 

다시 말하면 다 없고, 다 있는 것이 마음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마음이 부처인 줄을 확실히 알았을진대 목불은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며, 

토불, 철불, 금불은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절하는 것은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며, 기도나 공양승사는 마음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람이, 나무나 흙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우상이라고 하는것은 불교도 모르는 삼척동자도 아는 것을, 

어찌 마음이 부처인 줄을 아는 사람들이 할 말이겠는가. 

 

그러므로 모두가 병이다. 

중생들이 이 병을 떼기 위하여, 부처님께서 간절한 마음으로 증언 부언을 하신 것이니,

부처님의 뜻을 취하고, 부처님의 말만 따라다니지 말기를 부탁한다. 

 

[본문]

爾時(이시)에 世尊(세존)이 而說偈言(이설게언)하사대 若以色見我(약이색견아)나 以音聲求我(이음성구아)하면 是人行邪道(시인행사도)라 不能見如來(불능견여래)니라. 

저 때에 세존께서 계를 설하여 말씀하시되, 만약 모양으로써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함이라.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느니라. 

 

[해설]

중생의 가장 많은 병이, 상에 착하는 병이기 때문에, 상 있는 나를 본 것으로써, 상 없는 참나를 본 것을 삼지 말라. 

상에서 나를 보고,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바른 도를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래를 보지 못한다는 말씀이시다. 

 

                                                            - 해안선사 강의 <금강반야바라밀경>-

 

 

                                      <청계산 청계사, 부처님 열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