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영가 현각 선사의 지관(止觀) 법문(17)

무한진인 2021. 3. 31. 22:14

(6) 주와 보조를 앎

[본문]

여섯번째로 주(正)와 보조(助)라는 것은 성성을 주로 삼고 적적을 보조로 삼는 것이니,

이 두 가지 일은 본체가 서로 떠나지 않는다. 

마치 병자가 지팡이를 짚음으로 인해 걸을 때, 걷는 것이 주이고, 

지팡이를 짚음이 보조인 것고 같다. 

[해설]

적적과 성성 간의 적절한 조화는 어떻게 갖춰져야 하는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적적과 성성 중에서 무엇을 주된 것으로 삼고, 

무엇을 그 목적에 이르기 위한 보조로 삼아야 하는지를 논한다. 

적적성성에서 주된 것은 성성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보조가 적적이다. 

즉 성성이 정(正)이고 적적이 조(助)이다. 

주된 것은 어디까지나 성성한 영지(靈知)이고, 

적적은 다만 그 성성한 영지에 이르기 위한 보조라는 말이다. 

이것은 마치 병자가 지팡이를 짚고 걸을 때는 어디까지나 걷기 위해 지팡이를 짚는 것일 뿐이므로 

걷는 것이 주이고 지팡이를 짚음은 보조가 되는 것고 같다. 

행정은 "정과 조를 함께 행하면, 혼미와 산란을 저절로 벗어난다"고 말한다. 

보조에 해당하는 적적을 이루면 산란함이 사라지고, 주에 해당하는 성성을 이루면 혼미함이 사라진다. 

그러므로 정과 조, 성성과 적적을 함께 닦으면 혼미와 산란을 함께 벗어나게 된다고 말한다. 

 

[본문]

무릇 병자가 걷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지팡이를 취하고 그런 연후에 비로소 걷는다. 

마음을 닦는 자 또한 이와 같이 반드시 먼저 연려를 멈추어 마음을 적적하게 하고, 

그 다음 마땅히 성성함으로 혼침에 이르지 않아 마음을 역력하게 해야 한다. 

[해설]

적적성성에서 성성이 주이고 적적이 보조인 것은 

마치 병자가 제팡이를 짚고 걸을 때 걷는 것이 주 목적이고 지팡이를 짚음은 그 보조 수단에 불과한 것과 같다. 

그렇지만 주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보조 수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즉 병자가 걷고자 한다면 우선 지팡이를 짚어야 한다. 

조를 이루어야 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팡이를 짚는 조를 통해 걸어가는 정을 이룰 수 있다. 

병자가 걸을 때 지팡이를 짚어야 걷게 되듯이,

수행을 할 때에는 우선 적적을 이루어야 성성도 이루어진다. 

주가 성성이지만, 주를 이루기 위해서 우선 조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수단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수행과정에서는 우선 적적을 이룬 연후에 성성을 이루라고 말한다. 

 

[본문]

역력(歷歷)과 적적(寂寂)은 두 이름이지만 하나의 본체이며 또 시간을 달리 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병자가 가고자 해도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갈 수 없고, 

막 갈 때에는 지팡이에 의지하기 때문에 갈 수 있는 것과 같다. 

공부하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 역력과 적적이 시간을 달리 할 수 없다. 

비록 두 이름이 있지만, 그 본체는 구별되지 않는다. 

[해설]

적적과 성성이 조와 정의 관계로서 저적을 이루어야 성성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 둘이 서로 다른 별개의 본체를 이루거나 서로 다른 시간에 격차를 두고 행해진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적적과 성성이 하나의 마음에서 일어나며, 적적한 그 순간에 동시에 성성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본체이며 또 시간을 달리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이는 병자가 지팡이를 짚는 것과 가는 것이 조와 정의 관계이지만, 지팡이를 짚고 있는 자와 가고 있는 자가 둘이 아니고, 또 지팡이를 짚는 일과 걷는 일이 서로 다른 시간의 일이 아닌 것고 같다. 

처음에는 지팡이 짚기만 있고 나중에는 걷기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한마디로 조와 정의 관계는 일이 이루어지는 인연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행정은 '시간을 달리 하지 않는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시간을 달리 하지 않는다는 것은 걷든 앉든 눕든 일어나든 언제나 마땅히 성성과 적적이 함께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 이처럼 주가 되는 성성과 보조가 되는 적적은 항상 동시에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행정은 또 "성성은 걷는 것과 같고 적적은 지팡이를 짚음과 같으니, 이 둘이 함께 하면 사마타가 손 안에 있다."고 말한다. 성성과 적적을 함께 유지하는 것, 영지의 마음 자리에 머무는 것이 바로 사마타 수행이 지향하는 것이다. 

 

[본문]

다시 말하면,

① 산란한 생각(난상)은 병이고 무기 또한 병이다. 

② 적적은 약이고 성성 또한 약이다. 

③ 적적은 난상을 깨고, 성성은 난상을 낳는다. 

적적은 비록 난상을 대치할 수 있지만 도로 다시 무기를 낳고,

성성은 비록 무기를 대치할 수 있지만 도로 다시 난상을 낳는다. 

⑤ 그러므로 성성적적은 옳고 무기적적은 그르며, 

적적성성은 옳고 난상성성은 그르다고 말한다. 

⑥ 적적은 보조이고 성성이 주어니, 이것을 생각해야 한다. 

[해설]

이는 지금까지 위에서 논한 여섯 가지 가려냄(料簡)을 다시 한 번 더 정리한 것이다. 

①은 병, ②는 약, ③은 대치, ④는 과생, ⑤는 시비, ⑥은 정조를 말한다. 

 

                                              -한자경 지음 <선종영가집 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