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우두 법륭선사의 심명(心銘) 공부(5)

무한진인 2021. 3. 22. 22:48

[본문] 

目前無物, 無物宛聯

不勞智鑑, 體自虛元

念起念滅, 前後無別

後念不生, 前念自滅

눈앞에 아무 것도 없고 

아무 것도 없음이 완연한지라,

애써 지(智)를 비추고자 하지 마라.

(智의) 체(體)도 텅 빈 것이라네

상념이 일어나고 상념이 소멸함에

전후(前後)의 구별이 없나니

뒤의 상념 생기지 않으면 

앞 상념 스스로 멸한다. 

 

[해설]

일체 법이 공(空)이고 무상(無相)이며 무생(無生)인지라 눈앞에 한 물건도 없음이 완연하다. 

마음이 청정하고 밝아져 색(色)의 그림자 상(相)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리에서 애써 지(智)를 챙기려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면 지해(知解)의 병에 떨어진다. 

지(智)의 체(體)가 텅 비어 불가득(不可得)이니 챙기거나 비추어 볼 대상이 아니다. 

지(智)란 대상을 떠나 구현되는 것이다. 

마음으로 지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은 본래 아무 것도 지닐 수 없다.

그래서 무소유(無所有)라고 한다. 

상념이 생하고 멸함이 전후가 따로 없다. 

생하면서 동시에 멸하는 까닭이며, 

전(前)과 후(後)가 따로 있는 것이라면 전과 후가 될 수 없는 까닭이다. 

또한 심성(心性)이 공적(空寂, 텅 비어 고요함)하고 무상(無相)이어서 전후를 떠난 까닭이다. 

전과 후, 생과 멸은 서로 의지하여 있게 되는 까닭에 

후념(後念)이 생기지 않으면 전념(前念)도 스스로 사라진다. 

그래서 단지 바로 당처(當處), 당념(當念)에서 염(念)이 일어나지 않으면 일체의 상념이 소멸된다. 

중생과 불(佛)이 바로 이 당념에 있다. 

당념에 무심(無心)하면 불(佛)이고, 당념에 염착되면 중생이다. 

당념을 없애고자 하면 이미 없애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 되고, 

그 자리에 이미 전념(前念)이 있다. 

그러나 당념에서 무심하다면 후념이 생하지 않게 되어 

그 자리에는 이미 전념도 소멸되어 있다. 

수행은 오직 바로 이 당념에서 온전히 이루어진다. 

 

                                 박건주 역주 <우두법륭선사의 心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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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내앞에 아무것도 없으니

아무것도 없는 것이 있는 그대로 완연한 것이네.

目前無物  無物宛然

 

 

지혜로 비추어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본체 그 자체는  텅 빔이며, 깊고 깊은 어둠이라네.

不勞智鑒  體自虛玄 

 

생각들이 일어 났다 생각들이 사라지지만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과 사라진 이후는 다르지 않나니,

念起念滅  前後無別 

 

뒤의 주시하는 앎이 생기지만 않는다면

앞의 대상으로 나타나는 생각들도 저절로 끊어질 것이네.

後念不生  前念自絶 

 

                                        - 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