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자아 탐구 실제 수행방법 및 이론 정리 (27)

무한진인 2021. 1. 28. 21:54

무한함과 하나되기 

내가 그저 내 생각의 총합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존재인 것처럼 삶을 살아 갑니다. 

우리는 의식이며, 생각들이 나타나고 인지되는 공간 그 자체입니다. 

이 순수한 광대함이 우리 자신입니다. 그것은 배워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예요. 

오히려 우리는 의식 안에서, 의식으로서 깨닫고, 또 의식과 하나가 됩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심오한 깨달음과 확신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자아탐구입니다. 

참자아는 본질적으로 어떤 특성도 지니지 않기 때문에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말이지요.

 

마음은 무한한 자아와 하나가 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마음은 현재 몸 안에서 생각과 느낌으로 지탱되는 복합적이고 개인적인 자아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됨'은 우리의 정체성과 형체가 사라짐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일어나지요. 

그러나 바로 이런 두려움이야 말로 허상이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의 무한한 자아를 깨닫기 시작했다는 표시입니다.

 

마음은 무지와 오만의 안개를 드리워 우리가 불변하는 의식을 직관적으로 깨닫지 못하도록 가로 막습니다. 

마음은 물 흐르듯이 삶을 살기 보다는 늘 계산적이고 방향을 조정하려 합니다. 

계속 이렇게 거의 눈먼 상태로 길을 찾아 헤맨다면, 우리에게서는 숨길 수 없는 불안의 냄새가 짙게 풍겨 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존재의 완전함을 눈앞에서 놓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무 판단없이 사물을 볼 수 있나요?

중립적인 시각에서 인지할 수 있나요?

중립적인 시각으로 볼 때, 우리는 사뭃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됩니다. 

참자아로써 볼 때, 거기에는 더 이상 판단이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삶을 바라보며 반응을 하는데 익숙합니다. 

곧잘 자기 이야기를 지어내고 이에 살을 덧붙여 나가곤 하지요. 

절말고 편견과 판단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상황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며 남을 비판하는 태도로 이 세상을 인지하는 것은 무척 고단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삶 그 자체'임을 깨닫는 대신, 

'나는 삶이란 걸 살고 있다'고 여기다가 제풀에 기진맥진이 되어 버리지요. 

비개인적이고 광대한 지각의 공간에서는 판단이나 개인적 반응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에고가 없기 때문에 그저 '바라봄'만 있습니다. 

이 상태는 훨씬 덜 피곤하고, 우리는 전보다 잘을 훨씬 적게 자도 괜칞게 되지요. 

그럼에도 마음은 저항합니다. 

"아니야 ! 아니야! 잠을 덜 잔다고?! 당신이야말로 나를 졸리게 하고 있어! 나는 이 고요한 상태가 지겹단 말야. 

삶은 열정적이야 돼!" 

 

삿상의 에너지장 안에서 우리는, 마음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을 때 

이 몸 안에 머무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맛보게 됩니다. 

삶은 매우 쉽고도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우리가 더 이상 위축되거나 근심하지 않을 때, 우리의 지평은 매우 넓어집니다. 

개인으로서는 내가 사라지면, 우리는 무척 밝고 드넓고 관대한 존재가 됩니다 !

이것은 정말 간단한 일이랍니다. 

우리는 더 이상 쉽게 동요하지 않으며 습관적이거나 오랫동안 남아 있던 두려움, 근심, 또는 판단도 없어집니다. 

우리는 은총 가운데 움직입니다. 

삶은 잔잔해지고, 빛나는 현존의 상태 속에서 흘러갑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상태는 참자아의 고요함으로부터 나옵니다. 

 

진리는 창조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거짓을 제거한다고 해서 진리가 새로이 창조되지는 않아요. 

거짓을 제거한다는 말은, 단지 우리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을 없앤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의식으로서, 최상의 실재를 바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최상의 실재를 보게 되면, 우리는 자신의 행동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주의 것임을 알게 됩니다. 

자신을 개인으로 여길 때에도, 우리의 행동은 곧 우주의 행동입니다. 

각각의 파도 아래에 바다 전체가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모든 파도는 바다에서 태어났고, 바다가 움직인 결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단지 파도가 아니고 바로 바다입니다!

 

모든 충동과 행동은 바다와 같은 우리의 참된 존재로부터 일어나는 파도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바로 우리가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는 존재이지, 그것들이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예요. 

그것들은 마음의 파도를 지각하는 자, 즉 우리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앎과 하나가 되어, 바다와 같은 우리의 참자아로부터 일어나는 깨달음의 파도들을 지켜보세요. 

 

마음은 참자아를 깨닫는 것이 온갖 고생  끝에 '어딘가에 도착하는 일'인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깨달음은 어딘가에 도착한다거나 무엇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형언할 수 없이 위대한 참자아입니다. 

단지 우리는 나의 진정한 자리가 '지켜봄의 근원'이자 모든 현상이 비롯되는 공(空), 

즉 '비어 있음'이란 것을 깨닫고 확인하기만 하면 됩니다. 

 

공(空)은 우리를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일 뿐이예요. 

여러분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멋진 '누군가'가 되기 위해 평생 노력하면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자신이 사실 그 어떤 누구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지요. 

이것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심오한 발견이고,

이로 인해 우리는 참자유와 참기쁨, 그리고 참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의식이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의식은 단순하고 고유하며 독특한 것이지만, 

동시에 독특함과 고유함의 개념을 초월한 것이지요. 

이것은 가장 진정한 의미의 자기 의식입니다. 

마음보다 먼저 존재해온 지켜봄의 근원은 우리 안에 있는 진저한 현자입니다. 

그 내면에 있는 현자의 인도를 받아 그와 함께 다시 되돌아 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여러분은 그 여행을 마치는 것에 대해 어떤 기분이 드시겠습니까? 

 

끝없이 계속해서 더 깊은 통찰과 지혜를 얻을 수 있고,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없어지고, 

더 없이 행복한 '텅 빔' 속으로 자유 낙하 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요? 

여기에 어떤 위협이 있을 수 있겠나요? 무엇을 잃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지만, 우리 존재 자체인 의식은 결코 잃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참된 존재의 의식이자 자기 인식입니다. 

이 의식은 지고합니다. 지각될 수 있는 그 어떤 대상에도 의지하지 않게 때문입니다. 

 

 

                     - 무지 지음 <드높은 하늘처럼, 무한한 공간처럼> 정신세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