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한 의심(2)
제8장. 마야(환상)의 기원
8-3. 미세한 의심(2)
강의하는 스승이 말합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왜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하여 묻고 그럽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대들에게 몇 가지 더 설명을 해서 의심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뱀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밧줄 때문이요,
물결이 나타나는 것은 물 때문이며,
신기루가 나타나는 것은 태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꿈이 나타나는 것은 상상력 때문이며,
은(銀)처럼 보이는 것은 조개껍질 때문이고,
잠깐 동안에 얼음이 형성되는 것은 물 때문입니다.
벽이 세워진 것은 흙 때문이고,
파도가 치는 것은 바다 때문이며,
이미지가 나타나는 것은 눈의 렌즈 때문입니다.
금으로 인해서 장신구가 있는 것이고,
천이 보이는 것은 실 때문이며,
거북이가 있으므로 해서, 거북이 발톱과 팔다리가 늘어났다 움추러들었다 합니다.
액체 버터나 고체 버터가 되는 것은 버터 자체가 있기 때문이며,
소금이 만들어 지는 것은 연못에 고인 물이 건조되기 때문이고,
거울에 상(像)이 반사되는 것은 물체 때문입니다.
나무가 존재하는 것은 땅 때문이며,
거대한 그림자가 있는 것은 느티나무 때문이며,
색깔과 품질이 고급스럽다든지 또는 저질급이라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금속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제 이원적인 예를 충분히 들어 본 것 같습니다.
그것들은 실제로 비이원성에 적용되지 않지만,
이원성과의 연관성을 만들지 않고는 비이원성에 대하여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나타나는 것은 겉모습 때문이고,
어떤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가시성(可視性) 때문이며,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직유(直喩)가 없기 때문에 비유를 초월해 있다고 말합니다.
개념화 없이는 어떤 의도(意圖)도 있을 수 없고,
눈에 보이는 대상물체가 없이는 어떤 직유(直喩)도 주어질 수 없으며,
이원성의 실예를 제시하지 않고서는 비이원성에 대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창조는 너무나 경이로워서,
모든 창조물들을 지탱하는 천 개의 머리를 가진 뱀인 세샤조차도
그의 천 개의 입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개수의 우주를 묘사할 수 없었습니다.
진아, 파라마트마는 모든 것을 행하는 최고의 신입니다.
그 때문에 우주의 광대한 공간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무한한 수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무한한 에너지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현명한 사람들은 그가 원초적 존재(푸루샤)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이 원초적 존재의 인식 그 자체가 "원초적 환상(물라마야)" 입니다.
무엇이든 행하는 행위와 모든 것이 그곳에서만 나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무엇이 진리인지 찾아 보려고 노력하지 않고,
정신수행 행위를 미적 미적거리며 미루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혀져서는 안됩니다.
모든 것이 신에게로부터 왔으며,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신(神) 자체가 깨달아져야 합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성취를 이룬 자(Siddhas)에 의해서 알려졌지만,
마음이 성숙하지 않으면 열망자(영적인 지망생)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개인은 무지의 속성 때문에 존재하고,
환상은 의식(시바) 때문에 존재하며,
원초적 환상(물라마야)은 신(파라브라흐만) 때문에 존재합니다.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에너지와 활동력을 가진 원초적 환상이 창조의 원인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직접 체험을 해야 합니다.
원초적 환상은 그 자체가 원초적 존재입니다.
그 자체가 "만물의 신"입니다.
헤아릴 수 조차 없는 많은 개수의 이름이 붙여진 것은 바로 이 "우주의 신"입니다.
환상의 전체는 광대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진술의 심오함은 이해하기가 지극히 희귀하고, 어렵습니다.
가리키고 있는 것은 말을 넘어서 있으며,
진아 깨달음의 체험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이해는 깨달은 성인의 친견모임에 직접 참여해서 함께 공부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환상 그 자체가 원초적 존재라는 말은 영적 지망생들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대로 두고, "우주의 제왕"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것은 누구입니까?
환상적 대상물들의 성질이 이름과 형상을 갖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은 말입니다.
이 강연을 듣는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어떤 의심도 가져서는 안됩니다.
이제 이것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해 봅시다.
이전에 제기된 의심은 여전히 아직 남아 있습니다.
원초적 환상은 모양(속성)이 없는 것으로부터 어떻게 나왔을까요?
이 허황한 체면술에 어떻게 해서 사람들이 넋을 잃게 된 것이죠?
이제부터 이것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지 완전히 밝혀질 것입니다.
고요하게 텅 빈 허공(空)에서 바람(風)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원초적 환상의 의식이 일어났습니다.
바람의 처음 일어남으로 인해서 공간이 무너졌다는 것은
결코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속성이 없는 것은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채로 원초적 환상이 발생했습니다.
이 예에 의해서 이전에 말한 의심이 해결되었습니다.
바람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원초적 환상은 이와 같이 이해되어야 합니다.
만약 그대가 그것(바람)이 실재(實在)한다고 말해도 그것은 곧 사라질 것입니다.
바람의 형태는 무엇입니까?
원초적 현상은 이와 비슷한 것으로 보입니다.
인식되기는 하지만, 그 형태는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람은 실재한다고 말하지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보려고 한다면, 먼지만 보입니다.
원초적 환상은 이와 비슷해서, 인식되지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후부터 "무지로서의 환상"으로 널리 확산되어 퍼집니다.
바람 때문에 하늘에서 (구름의) 모양이 사라지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원초적 환상 때문에 세상의 모습이 사라집니다.
하늘에는 구름이 없다가 갑자기 나타납니다.
이와 비슷하게, 세상은 환상 때문에 이처럼 나타나서 보여지는 것입니다.
하늘에는 아무 것도 없었는데 갑자기 구름이 나타납니다.
이와 비슷하게, 눈에 보이는 세상도 이처럼 나타납니다.
구름 때문에 하늘의 고요함이 사라진 것 같지만,
그 하늘의 바탕 자체는 항상 있는 그대로 입니다.
이처럼, 환상 때문에 "속성 없는 것(니루구나)"이 "속성 있는 것(사구나)"으로 되었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것을 찬찬하게 깊히 들여다 보게 되면,
그것은 항상 있는 그대로 있습니다.
구름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해도 하늘은 있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와 똑 같은 방식으로, 속성없는 브라흐만은 속성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늘이 우리들의 머리에 닿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대로 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속성없는 브라흐만은 있는 그대로 라는 것을 자신있게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위를 올려다 보면 하늘은 모든 곳에서 파랗게 보입니다.
이것은 실재하는 것처럼 인식되지만,거짓으로 나타난 것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만약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 보면, 그것이 마치 구부러진 것처럼 보이고,
모든 방향으로 지구를 덮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개방되어 탁 트이고, 자유롭습니다.
멀리서 보면 산은 파란색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런 색깔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외양(外樣)에 영향받지 않는 속성없는 브라흐만을 이해하십시오.
움직이는 전차를 타고 있으면 땅은 움직이지 않아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마찬가지로, 절대 실재(實在)는 속성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지나가는 구름 때문에 달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단지 환상일 뿐입니다. 구름만 움직입니다.
폭염으로 인해 하늘이 진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언제나 움직임이 없습니다.
비슷하게, 실재(實在) 또는 "진아 형태(Swaroopa,法身)는 속성을 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닌 상상일 뿐입니다.
환상은 끊임없이 변화하여 넋을 빼앗아 버리는 체면술의 속임수와 같으며,
실재(實在)는 영원히 고요하며, 있는 그대로입니다.
실재(實在)는 어떤 부분도 없지만, 환상은 많은 부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환상의 본질이 이렇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환상을 들여다 보면, 그것은 실제로 전혀 존재하지 않지만, 실제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구름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환상은 이와 같이 일어납니다.
속성 없는 실재(實在)의 광대함 속에서 "내가 있다(Aham)"는 한 생각(一念)이 문득 일어납니다.
이 한 생각(一念)은 그 자체가 환상입니다.
모든 움직임은 "속성이 있는 환상(구나마야)"으로 나타납니다.
속성이 없는 곳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생성(生)과 소멸(死)은 교번적인 파동 에너지 형태로
오직 하나의 진리형상 안에서 존재로서 나타나 보여지는 것입니다.
시야가 흐려지며, 하늘에 군대가 있는 것처럼 나타나는 것을 볼 때가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오대 원소의 다양한 특성에 대한 긴 설명을 뒤로 제쳐둔 채,
환상의 허황한 연극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설명했습니다.
오대 원소는 옴(OM)의 형상 속에서 바람의 움직임으로부터 그 기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의 의미는 '지혜로운 이들(Jnani)'의 깨달은 지혜에 의해서 이해되고 알려져 왔습니다.
원초적 환상의 불안정한 파동적 성질은 그 자체가 바람의 특성입니다.
미묘한 원소들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 이 바람의 파동적 활동 속에 있습니다.
창조의 과정 동안에 이전에 비현시되었던 오대 원소가
비로소 현시되어 나타나는 그런 방식입니다.
원초적 환상의 속성은 그 자체가 오대 원소라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이것은 가장 미묘한 관점을 가져야 만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주에서 바람의 움직임 없이 어떻게 '말'로써 욕망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이 욕망의 에너지 그 자체가 빛(火)의 형태라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부드러움은 그 자체가 물(水)이고, 딱딱함은 흙의 원소(地)라는 것을 아십시오.
원초적 환상이 오대 원소의 상태 속에 이와 같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각 개별 원소에는 오대 원소들이 모두 혼합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리한 관찰력으로써 세심하게 조사해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후에도 원소들은 더 거친 형태로 확산되어 나타나지만,
그럴지라도 여전히 서로 간에 뒤섞여 있습니다.
이처럼 환상은 오대 원소 형태로 퍼져 나갑니다.
원초적 환상을 그 근원에서 보든,
세상이나 하늘, 죽음 또는 지하 세계에서 무지로 보든,
그것은 모두 오대 원소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진리 상태는 시작과 끝에 존재하며, 오대 원소가 그 사이의 공간을 점유합니다.
강연을 듣는 사람들은 원초 환상 그 자체가 오대 원소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주의를 기울여서 들으십시오.
오대 원소는 무지 또는 타마스 구나라는 하나의 특성에서 존재 속으로 들어 왔다고 말합니다.
원초적 환상은 어떤 속성보다도 먼저 존재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오대 원소가 거기에 존재 할 수 있게 된 것일까요?
이것은 청자(聽者)들이 제기한 의문입니다.
청자(聽者)들이 의문을 제기했고
답변은 다음 절(節)에서 설명되겠습니다.
<스승과 제자와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