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있음이란 진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추는 것이다
자신이 브라흐만임을 확신하는 사람은 힘을 얻는다.
무엇보다도 그는 죽음 그 자체를 죽여야 한다.
죽음에 대해 무심해지면, 남아 있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죽음이라는 말에는 '시간'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 죽음과 함께 시간이라는 말도 끝나며, 그 사람은 시간의 길이가 없이 머문다.
마야의 시간에서 한 순간은 여러 유가(Yugas)와 유사하다.
[역주 : 유가 ; 힌두교 우주론에서는 큰 우주적 시간 단위. 크리타 유가,트레타 유가,드와파라 유가, 칼리유가의 네 유가가 있으며, 도합 4,320,000년이라고 한다]
네 유가 전체 기간을 하나의 원(圓)으로 간주한다.
그런 많은 동심원들이 마야의 한 순간에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러나 브라흐만 안에서는 단 한순간의 시간도 없다.
시간은 말한다. "나는 요기들, 염송자들, 수행자들을 잡아 먹지만,
진아지를 가진 진인은 나를 디딤돌 삼아서 이 세계를 넘어 간다."
대상들과 그 대상들이 나타나는 공간은 시간의 자식들로 보아야 한다.
시간은 말한다." 나는 진인들을 복속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에게 조금도 중요성을 두지않고 무시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마에 바르는 백단향액과 같다.
그것을 닦아 버릴 수도 있고, 그냥 둘 수도 있지만, 시간이 가면 저절로 닦여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있든 없든 신경쓰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진인에게는 시간에 대한 집착이 없다.
그것이 있든 없든 진인은 그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한 순간의 시간이 전 우주를 한 번 보는 것과 맞먹는다.
그 순간을 소거하면 이 광대한 우주도 그와 함께 사라진다.
진인은 자신의 존재 안에 안정되게 머무른다.
파괴는 물론이고 모든 창조작업을 하는 것은 시간이다.
태아가 자궁 속에서 발육하는 것도 시간의 작업이다.
때가 되면 모든 것이 얻어진다.
이 모든 것이 시간의 위대함이다.
창조, 유지, 파괴가 있는 것은 시간의 기술(파동성)이다.
그것이 시간의 힘이다
시간은 세계의 범위를 더욱 넓힐 뿐이지만,
참스승의 아들은 그 시간의 머리를 밟고 넘어간다.
한 걸음으로 시간을 정복하고,
또 한 걸음으로 불사의 존재가 되며,
세 번째 걸음으로 힘을 휘두르고,
네 번째 걸음으로 자유로워지고,
다섯 번째 걸음으로 비이원적이 되며,
여섯번째 걸음으로 완전해져서 총체적 전체가 된다.
브라흐만을 깨닫는 자는 여섯자 내외 길이의 몸뚱이가 아니다.
그는 전체 우주 전체이다.
우주의 근본 자아는 '우주의 알'인 씨앗 자아라는 것을 알라.
그 자아는 먼지 알갱이 만큼, 또는 원자 처럼 작다.
그 안에 이 광대한 우주가 전부 들어 있다.
그 안에 '본래의', '본연적인', '속성이 있는', '속성을 넘어서 있는' '무한한 속성을 가진 보편적인' 등으로 표현하는 모든 속성들이 들어 있다.
그러나 진인은 이런 것들을 모두 초월해 있다.
'원자들의 원자'를 아는 사람은 진아 깨달음을 갖추고 있다.
이것을 <에끄나티 바그와뜨>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전체적이고 총체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침묵하는 사람은 모든 힘을 성취한다.
싯디(영적 초능력)에 집중하지 말아라.
그러다가는 브라흐만의 상태를 잃기가 쉽기 때문이다.
싯디를 성취하는 것은 불법적인 욕구총족과 같아서 진아 깨달음의 길에 장애를 유발한다.
싯디를 추구하는 사람은 브르흐만의 상태를 잃는다.
싯디로 명예, 명성, 찬양을 얻기는 하나, 그 의식 위에는 일종의 덮개, 즉 자만심의 베일 또는 지(知)의 속물근성이 아직 남아 있고, 그 구도자는 브라흐만 위의 이 덮개를 찟어버릴 힘을 쓸수가 없다.
진아 깨달음에 못미치는 어떤 높은 체험상태에 이끌리는 구도자는 진아에 대한 깨달음을 놓쳐 버린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브라흐만이 온 것을, 혹은 브라흐만이 간 것을 체험해 본적이 있는가?
아니, 결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실재가 파괴될 때가 있겠는가?
왜 이것을 의심하고 실재에서 벗어난 딴 길로 가는가?
왜 여론을 두려워하고 자기 힘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힘에 대한 믿음을 버리는가?
여러분의 '홀로 있음'을 깨트릴 그 어떤 일도 결코 하지 말라.
여기서 홀로 있음이란 확고한 믿음을 갖추는 것이다.
그것을 깨뜨린 다는 것은 이원성으로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홀로있음'에서 확고함을 유지하는 것은 늘 우리 자신의 존재라는 내밀(內密)함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것을 홀로 있음, 오직 '하나'로 있음을 말한다.
동요됨이 없는 그것을 '홀로됨'이라고 한다.
이제 다른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여기서는 구도자가 스승의 아들이 되었음에도 자기 내면의 힘에 대해 아무런 확고함이나 확신이 없었다.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성모 여신께 공양물을 바치겠다고 약속하며 기도를 했다.
여신은 기분좋아서 그가 원하는 것을 하사했다. 그래서 그는 작아졌고 힘을 잃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어떤 존재에게 정복(빙의)될 수 있는데, 만일 구도자가 그 존재를 섬기거나 존경하면,
설사 그 구도자가 스승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그는 작아지고 하잘 것 없게 되어버린다.
그의 홀로됨이 깨진다. 믿음의 확고함이 느슨해진다.
진아지를 가진 사람은 영매(靈媒)나 채널을 점유하여 어떤 신령도 결코 섬기지 않아야 한다.
진아가 유일하고 진정한 신이며, 모든 일은 그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
진인이란 실로 진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만일 진아를 깨닫고 나서 다른 신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는 가장 불행한 가난뱅이이며, 결코 해탈을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죽음에 직면해도 동요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해야 한다.
"내 스승님이 가장 위대하며, 그 분께서 일체를 하신다."고 말할 정도의 믿음을 가져야 한다.
아니면 자기 자신이 빠라마뜨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형상을 가진' 곧 육신을 지닌 신에 대한 헌신이 스승에 대한 진정한 봉사활동이다.
설사 신이 무형상이고 어떤 측면이나 속성을 넘어서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이 스승에 대한 헌신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
진아 깨달음은 참된 헌신자에게만 가능하다.
스승에 대한 헌신 속에서 믿음이 커지는 사람들은 지(知)의 힘이 깊어진다.
믿음의 상실, 헌신의 상실은 진아지의 열매가 타락하는 표시이다.
믿음의 결여는 헌신의 역병(疫病)에 감염된 것이다.
따라서 여러분은 아주 예리하게 깨어 있어야 한다.
스승에 대한 헌신을 떠난 사람은 미혹된다.
설사 그가 유창한 '언어지(言語知)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는 에고적 자부심 때문에 망할 운명이 된다.
몸을 지닌 신에 대한 헌신을 떠나는 사람은 참으로 불운하게 된다.
결코 그것을 떠나서는 안된다.
헌신은 지혜의 비료이다.
그것은 지혜를 키워내는 음식이다.
헌신에 의해서만 지(知)가 점차 증가한다.
진아지를 얻고 난 뒤에도 스승에 대한 봉사를 계속하는 사람은 복이 있는 것이다.
그가 빠라마뜨만이다.
수행은 그 이면에 힘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헌신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물소가 죽었을 때 이상한 일을 한 대금업자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물 소의 뿔에 금을 좀 넣은 다음 그 뿔을 자기가 사는 동네 바깥으로 던졌다.
1년 후 금이 들어 있던 그 뿔이 어떤 사람에 의해 그에게 돌아 왔다.
이것은 누구나 자신이 받을 몫을 받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믿음은 가장 위대한 것이다.
스승에 대한 헌신과 그의 축복이 지(知)의 영광이다.
그러나 헌신하기를 그만 둔 사람은, 설사 지(知)로 가득 차 있다 해도 불운하다.
우리는 사마르타 바우사헵 마하리지의 축복을 받아 왔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나는 나의 헌신자이고, 헌칠(일주일간 진행되는 헌신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나는 그들의 지지물이다. 나는 그들에게 지원을 베푼다."
지(知)를 성취하고 체험을 얻었음에도 헌신을 하지 않는 사람은 불운하고, 게으르며, 성취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위대해도 자기 스승보다 위대하지는 않으며, 자기 스승보다 영적으로 풍족하지 못한다.
부디 환(幻)의 환경에 의해 잘못 이끌리지 말아라.
여러분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고 해서 자만심을 갖지 말고, 나쁜 상황을 두려워 하지 말아라.
스승에 대한 헌신을 강력히 유지하고, 믿음과 용기가 흔들리지 않게 해야한다.
성자 뚜까람은 매일 자신의 헌신을 스스로 축복하면서 헌가를 불렀다는 것을 기억하라.
거듭 말하지만, 스승에게 그리고 신에게 헌신하는 사람의 성공,명성, 영향력은 계속 확산된다.
어떤 사람은 그를 신이라고 부르고, 어떤 사람은 신의 화신이라고 부르며,
어떤 사람은 '큰 헌신자'라고 부른다. 그가 참으로 신의 화현이다.
- Master of Self- Realiz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