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진인 2020. 11. 30. 23:18

ㅇ. 

오늘날 공부하는 이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이름과 문자에 사로잡혀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다.

두꺼운 공책에다가 죽은 노인들의 말들을 베껴써서

세 겹 다섯 겹 보자기에 싸서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고 

그것을 현묘한 이치라 하며 보호하고 중히 여기니

이는 큰 착각이다. 

눈멀고 어리석은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깡마른 뼈다귀에서 어찌 국물을 찾고 있는가?

 

ㅇ.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 어떤 무리들은 

경전의 가르침에서 자기 나름대로 의미를 찾아내 이리저리 헤아리니

이것은 마치 똥 덩어리를 입속에 넣었다가

다시 뱉어서 다른 사람에게 먹여주는 것과 같고,

또 세속인들이 술자리에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놀이 같으니

일생 헛살았도다. 

그러면서 '나는 출가한 사람이다'라고 말하지만

불법에 대해서 질문 받으면 입을 꾹 다물고 한마디도 못한다. 

멍하니 쳐다보는 눈은 캄캄한 검은 굴뚝같고

입에다 나무 막대기를 걸친 것 같구나.

이 같은 무리들은 미륵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더라도

다른 세계로 쫓겨가거나 지옥에 떨어져 온갖 괴로움을 받으리라.

 

ㅇ. 

큰스님들이여!

그대들은 바쁘게 제방을 쏘다니며 무엇을 구하느라고

발바닥이 판때기처럼 넓적해지도록 걸어 다녔는가?

부처는 구하는 게 아니고, 

도는 이루는 게 아니며,

법은 얻는 게 아니다. 

밖으로 형상이 있는 부처를 구하면 그대들과는 닮지 않은 것이다. 

그대들의 본심을 알고자 하는가?

합해져 있지도 않고 떨어져 있지도 않다.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참부처는 형상이 없고

참 도는 실체가 없으며

참법은 규정됨이 없다. 

이 세 가지 법이 서로 혼합되고 융화하여 하나로 화합한 것이니

이러한 이치를 알지 못한다면

허둥지둥 바쁜 업식의 바다에서 헤메는 중생이라 부른다. 

 

                                          -임제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