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라메쉬 발세카

참의식이 말하다(23)

무한진인 2020. 11. 27. 20:58

-- 목격 -- 

 

질문자: 선생님께서 예전에 생각이 자신에게 들어오고 자신은 꼭두각시 인형 같은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현자를 생각을 목격하는 사람처럼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지요? 

 

라메쉬: 아주 좋은 질문이예요. 현자가 생각을 목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목격되는 것이지요. 

 

질문자: 그럼 목격하는 것은 참의식이군요? 

 

라메쉬: 참의식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생각하기를, 보통 사람이 생각하기를 "내가 목격하고 있다."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단지 자기 기만일뿐이예요마음이 작용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바로 마음 자신이예요. 이것은 목격이 아니예요. 마음을 지켜보는 마음은 현상세계 안에서 시간의 흐름을 따라 수평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며 자신의 반응을 늘 비교하고 판단하지요

 

질문자: "내"가 없을 때 조차도 몸-마음은 계속 살아갑니다. 깨달음 이후의 목격에 관해서 말씀하시는데, 그때는 목격을 하는 자신과 현상세계로 나타나 보이는 것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나요? 

 

라메쉬: 목격은 본체의 작용이예요. 어떤 것이든 목격하는 "목격자"는 없는데, 이것이 정확히 마음이 부재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있으면 일을 목격하는 "내"가 있기 때문에 비교하고 판단해요. 하지만 이 경우에는 판단하는 것이 없어요. 개인이라는 목격자가 있지 않을 때 순수한 목격이 있어요. 이 때문에 '그' 목격이란 오해예요. '그' 목격이나 '어떤' 목격이란 결코 없어요. 본체의 작용으로써 '일어나는' 목격만이 있을 뿐입니다. 마하라지와의 대담 중에서 누가 "제가 목격합니다."라고 말하면 마하라지께서는 바로 "그것은 목격이 아니네."라고 말씀하실 겁니다. 

 

-- 길들여진 조건은 계속 기능한다 -- 

 

질문자: 선생님께서 조건에 길들여진 마음에 관해서 말씀하시고 깨달은 존재는 조건에 길들여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마하라지께서는 라메쉬 선생님께서 15분 일찍 모시러 오는 조건에 길들여져 있으셔서 5분밖에 일찍 오지 않았다고 역정을 내셨어요. 마하라지의 마음이 조건에 길들여져 있는게 아닌가요? 

 

라메쉬: 그래요. 좋은 지적입니다. 누가 마하라지께 "생각이 일어납니까?"라고 물었을 때 마하라지께서는 "생각뿐만이 아니라 욕구와 감정들도 일어나지. 하지만 그것들이 전달되지는 않네. 생각이나 욕구들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냥 목격된다네."라고 말씀하셨어요. 깨달음이 일어난 이후에도 유기체는 계속해서 기능하고 오직 자신이 타고난 성격에 따라서만 기능할 수 있어요. 마하라지의 성격들 가운데 하나가 성급함이고 그 이야기는 성급한 성격이 있다는 표시지요. 

 

질문자: 하여튼 마하라지께서는 선생님이 일정하게 15분씩 일찍 모시러 오는데 길들여지셨군요. 

 

라메쉬: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분의 본성대로 성급함이 나타난 거죠. 즈나니에게도 생각과 걱정들이 일어나지만 단지 목격될 뿐이죠. 어떤 뒤끝도 남지 않아요. 마하리지께서 어떤 사람에게 불 같이 화를 내시다가도 말 그대로 바로 다음 순간 그 사람이 뭐라고 말하고 마하라지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어떤 반응에도 뒤끝이 절대 남지 않아요. 자연 발생적으로 반응하고 받아들여요. 하지만 이해가 완성되지 않았거나 진정한 이해가 아니라면 이 유기체는 "나는 즈나니임에 틀림없다. 나는 화를 내면 안된다. 화를 내지 않도록 명심해야한다."라고 생각할 겁니다. 마하라지께서는 이런 것에 신경을 전혀 안 쓰셨어요. 화가 일어나고 그것으로 끝이예요. 깨달음 이후라도 깨달음이 일어난 몸-마음 유기체들 사이에 차이는 엄청 있어요. 

마하라지는 완전히 불 같은 성격이셨고 이에 반해 라마나 마하리쉬는 화를 거의 내지 않는 조용한 성격이셨어요. 이것은 각 유기체가 타고난 고유한 성격의 차이예요. 깨달음 이후에도 거의 같은 성격에 따라서 계속해서 기능해요. 그래서 깨달음이 일어나면서 깨달은 존재라는 복제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지요. 

 

-- 인과관계 (因果關係) -- 

 

질문자: 즈나니에게는 개인이라는 것이 더는 없다고 하는데, 그럼 원인과 결과에 영향을 받나요? 인과관계의 법칙이 즈나니에게도 영향을 미치나요? 

 

라메쉬: 아 그럼요. 이 드라마 전체가 인과에 기반을 둡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에 따르는 결과가 있지요. 이런 결과는 행동이 되고 또 다른 결과를 만들지요. 원인과 결과는 늘 이어집니다. 이것이 인과이고 진화예요. 

 

질문자: 즈나니에게는... 

 

라메쉬: 즈나니는 이런 인과를 신경쓰지 않아요. 인과는 일어나고 즈나니는 일어나는 인과를 그냥 목격할 뿐이예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포함해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냥 목격할 뿐이예요. 

 

질문자: 즈나니의 몸-마음에도 인과가 여전히 영향을 미치나요? 

 

라메쉬: 물론이죠. 즈나니의 몸-마음도 원인과 작용의 한 부분입니다. 여느 다른 몸-마음 구조체에 일어나는 행동과 그에 따른 결과가 즈나니의 몸-마음에도 똑 같이 일어나지요. 

 

질문자: 그럼 즈나니를 통해서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나는 행동도 그 자신에게 되돌아가는 반향을 일으키나요? 

 

라메쉬: "그 자신에게 되돌아가는"이라고 했는데, 누가 "그"입니까? 비록 깨달음 이후라 할지라도 즈나니의 몸-마음 구조체를 통해서 일어나는 행동도 당연히 그 몸으로 돌아오는 결과를 야기할 겁니다. 즈나니가 말하고 어떤 사람들이 그말을 듣는다면 이런 말하고 듣는 일은 당연히 반향을 일으킬 겁니다. 유익한 반향이길 바래야죠! 즈나니도 한 동안 말하면 몸이 지치기는 마찮가지예요. 다만 즈나니는 이런 일에 신경 쓰지 않아요.

 

-- 생각과 욕구와 감정들 -- 

 

질문자: 선생님께서는 화가 나시면 어떻게 하시나요? 

 

라메쉬: 제 이야기를 하겠지만 먼저 당신 이야기부터 해봅시다. 당신이 화가 날 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죠? 화가 난다고 말하는 것이 정말 무슨 뜻인지 말해보세요. 

 

질문자: 뭔가에 집착 같은 것을 하든지 오해를 하든지 해서... 

 

라메쉬: 아니, 아니, 아니죠. 화가 난 원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예요. 당신이 화나게 된 이유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이 화가난다고 할 때 화는 오직 그 순간에만 있을 수가 있죠? 그 순간 이전에는 화가 없었어요. 화는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났는데, 맞나요? 

 

질문자: 맞습니다. 

 

라메쉬: 그럼, 당신이 화가 난다고 말할 때 정말로 뜻하는 것은 바로 그 순간에 거기에 화가 있다는 말인데, 맞나요? 

 

질문자: 네. 

 

라메쉬: 그럼 원인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일어나는 것은 화의 느낌이지요. 그 순간에 화를 경험하는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런 뒤에 당신이 화를 받아들이면서 "나는 화가 난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당신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평적으로 화에 얽매이게 되는 일이예요. 화가 일어나는 것은 바로 그 순간 일어나는 수직적인 일이예요.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생각이나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당신이 통제할 수 없어요. 외부에서 들어오는 일입니다. 어떤 감정이든지 들어올 수가 있어요. 아무 이유없이 느닷없이 기쁜 마음이 들 수가 있죠! 두려움이 일어나면서 "왜 내가 두려워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화가나는 감정이나 생각이 일어나는 일은 깨달음이 있든지 없든지에 상관없이 누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예요. 그런데 화가나는 감정이 일어날 때 시간의 흐름을 따라 수평적으로 화에 얽매이면서 "나는 화가난다. 내가 화를 왜 내지? 이런 저런 이유로 난 화를 내면 안돼."라고 생각해요. 이런 모든 얽매임은 수평적으로 시간의 흐름 안에 있어요. 원래 일어난 화는 수직적으로 바로 그 순간에만 있어요. 즈나니는 수평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얽매이지 않을 뿐이예요. 당신의 경우에는 화가 나면서 괴롭고 화가 무엇인지 알아내서 없애버리려고 하거나, 어떻게 복수할 수 있을까 궁리하거나, 뭐 이런 식이죠. (웃음) 이것은 수평적인 얽매임이지요. (13mal)

 

                                 - 리쿼만 편집, 김영진 번역<라메쉬 발세카와의 대담, 참의식이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