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의식의 소용돌이 중심부(내면)로 들어 가시오.

무한진인 2020. 10. 27. 22:56

질문자 : 선생님의 가르침은 과학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합니다. 저 자신도 의학과 기타 학문에서 많이 공부했습니다만, 선생님의 책을 읽고 나서는 선생님의 발밑에 귀의해 왔습니다. 선생님께서 아트만이라고 부르는 것은 누구인가요? 그 아는 자는 누구이며, 그는 몸 안의 어디에 주재해 있습니까? 만일 발가락에 어떤 부상이나 상처가 나면, 우리가 그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앎은 어디서 옵니까? 목에서부터 머리 사이에 어떤 아는 자가 있습니까? 그 앎은  어디에  위치해 있습니까?

 

마하리지 : 그것은 부라마-란드라(머리 정수리의 구멍)에 있소. 어떤 요기들은 자신의 모든 생명기운을 그곳에 모아서 자신들의 마음을 안정시키지만, 근본적인 원리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소.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대단한 고행을 했는데, 결국에는 어떤 환영이 그 앞에 나타났는데, 이 사람이 몸이 아주 더러웠기 때문에 그 환영에게 말했소. "저는 잠깐 몸을 씻고 나서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 사람이 몸을 완전히 깨끗히 하고 나타나자 환영이 그를 잡아먹어 버렸소. 그들은 하나가 되었소. 하나됨의 아름다움,지복, 기쁨 자체가 되었소. 그대가 지금 체험하고 있는 모든 것은 더러운 것으로서 내버려야 할 것듫인데, 그 내버려야 할 것들 안에 저 하나의 앎, 존재성이 있는 것이오. 

 

질문자 : 그 말씀이 무슨 뜻인가요?

 

마하리지 : 목 아래의 신체부분은 시큼한 피냄새로 가득하지만, 이 몸뚱이 안에 그 비밀스러운 영혼이 살고 있소. 

그것은 더러워지지 않으며, 그 몸 속에 살고 있으면서, 그의 생명, 그의 감수성은 몸 전체에 퍼져 있소. 그것이 그대에게 아름답고 향기로운 모든 것은  제공해 주는 것이오. 그대의 존재는 일체에 두루 펼쳐져 있소. 4가지 베다가 모두 그대를 어떻게 찬양해야 할지 모른다오, 

'내가 있음'이란 한 방울 핵점 안에 모든 우주가 들어있소. 그대는 그 방울을 이해한다고 하니, 그 방울이 될 수 있겠소? '내가 있음'은 빠라브라만을 가리켜 보이지만, 빠라브라만 자체는 아니오. 

 

질문자 : 의식은 실재합니까, 실재하지 않습니까? 

 

마하리지 : 그것은 하나의 꿈꾸는 의식이오. 그대는 실재하지 않고, 따라서 세계도 실재하지 않소. 그것들은 하나의 환(幻), 즉 마야인 것이오. 

 

질문자 : 왜 그 환(幻), 마야가 이 모든 몸 가진 생명들을 창조하고 있습니까? 

 

마하리지 : 농부가 곡식을 짓는 것은 그것을 먹기 위해서이고, 마야가 생명을 산출하는 것은 그것을 먹기 위한 것이오. 마야는 생명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의 죽음을 먹고 사는 것이오. 왜냐하면 이러한 형상들이 없으면 그것이 작동할 수가 없기 때문이오. 

 

질문자 : 과학자들에 의하면 물질은 파괴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늘 변할 뿐입니다. 

 

마하리지 : 아무 변화도 없는 저 상태, 저 불변의 조건은 무엇이겠소? '나'도 없고 '너'도 없는 그 동질적인 상태,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오직 그것만이 영원한 진리인 것이오. 그대의 진정한 성품은 무엇이오? 그대는 자신을 무엇과 동일시하고 있소? 만약  그 몸과 동일시하면 그 몸을 따라서 그대로 죽어버릴 것이오. 

 

질문자 : 저는 에고와의 이 동일성을 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하리지 : 자신을 하나의 개인으로 느끼는 것 자체가 일종의 조건화가 된 것이오. 그 조건화를 끊고 싶어 하는 사람 역시 상상 속의 존재인 것이오. 존재하지 않는 에고를 어떻게 말살할 수 있겠소? '내가 있다'는 앎이 최초의 무지이고, 그것을 가지고 그대가 습득하는 어떤 지식도 무지일 뿐이오. 그 무지의 근원으로 돌아가시오. 

어설픈 지식을 가지고 우리는 자신이 심오한 지혜로 가득 찼다고 착각하는 것이오, 그것은 우리의 추측일 뿐이오. 우리에게 아무 생각이 없을 때, 그럴 때만 우리가 심오한 상태에 있는 것이오. 그 무념의 상태를 깨달으시오.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들에 대하여는 걱정하지 마시오. 그대 자신을 탐구하고, 그대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내야 하오. 그 이해하는 원리(근원의식) -그것의 언어(변상)가 마음이오. 결국 이해된 것과 이해하는 자 둘다 사라지고 말 것이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나서  정적(靜寂) 속으로 들어갔소. 의식이란 잠재적이든 어떻든 간에 전체에 두려 펼쳐져 있소. 먼저 의식이 있고, 그 다음에 일체 만물이 나오는 것이오. 하늘, 땅, 그리고 그외 모든 것이 말이오. 

 

질문자 : 이 의식은 '내가 있다', 즉 자기 의식과 같습니까, 혹은 같지 않습니까? 

 

마하리지 : 우리는 의식을 생각할  때마다 몸을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오. 원래의 상태는 생시와 잠 상태 이전에 있는 것이오. 

 

질문자 : 그 '내가 있다'는 죽음이 있고 나서 사라집니다. 따라서 그것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마하리지 : 그대는 지금 개인적 인격을 이야기하는 것이오, 아니면 보편적 의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오?

 

질문자 : 보편적 진아입니다. 

 

마하리지 : 지배적인 의식은 보편적 의식이오. 세계는 거기서 태어나지, 개인적 인격의 관점에서 나오는 게 아니오.

 

질문자 : 보편적 의식과 '내가 있음'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마하리지 : 향대의 불꽃과 향대 전체- 그것이 그  관계인 것이오. 그대가 생시와 잠의 두 가지 상태를 알기 이전에 지배하던 그 의식이 보편적 의식이오. 생각을 통해서는 이것을 알 수 없지만, 명상을 하면 그 개인적 의식이 보편적인 의식 속으로 합일 될 것이오. 그런 후에야 그것을 이해할 수 있소. 보편적 의식은 항상 존재해 왔고, 그 힘도 항상 있어왔소. 그것의 창조력이 이 세계를 낳았고, 그것이 이 쁘라끄리띠와 뿌루샤를 산출했소. 그리고 그 보편적 영혼이 개인적 의식을 낳은 것이오, 그것은 자발적이고 현현된 역동적인 영(靈)인데, 그것에는 어떤 성질도 없소. 그것은 일체에 두루 퍼져 있소. 나는 지금 그 베다의 원리, 곧 흐름이 시작된 원천적인 그 베다의 원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오. 저 보편적 생명력은 일체에 두루하지만, 그것은 어떤 인격이나 개인성도 가지고 있지 않소. 

 

질문자 : 우리는 생각, 개념들을 어떻게 주시해야 합니까?

 

마하리지 : 그것은 자동적으로 진행되고 있소. 그대는 그 개념과 생각들을 항상 자각하고 있소. 

 

질문자 : 저는 그것을 나중에야 알지 그 진행과정 중에는 잘 모릅니다. 

 

마하리지 : 만일 그대가 갑자기 어떤 장소로 가고 싶으면 일어나서 나가는데, 분명 그것을 알고 있는데,

별도로 다른 주시자라는 문제가 어디에 있겠소? 그대가 오늘 아침에 좌선 명상을 했고, 아침 헌가의식이 시작될 때에 일어나서 나갔소. 그 걸어서 나간 일은 (자발적으로) 일어났소, 그렇지 않소? 그것을 주시하는 다른 어떤 차원을  알고 싶은 것이오? 

 

질문자 : 다시 똑같은 질문을 하겠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 주시자가 될 수 있습니까?

 

마하리지 : 아침에 그대의 마음이 그대로 하여금 나가라고 지시했소. 그것이 주시하기가 아니고 무엇이오? 

 

질문자 : 예, 저는 한 동작을 주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고과정 중에 제 생각을 주시하지는 못합니다. 

 

마하리지 : 의식은 하나의 전체로서 자발적으로 작용하며, 거기엔 어떤 행위자도 없소. 우리는 자신을 행위자로 보고, 그래서 그것을 주시하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될 수는 없소. 따라서 스승의 말씀 안에 안주하고 있으시오. 그 말씀이란, '그대는 일체에 두루한, 허공보다도 더 미세한 원리이다. 그것과 그대 자신을 동일시하라'는 것이오. 

 

질문자 : 어떤 사람이 명상, 삼매등을 통해서 평안을 성취하고 싶어 하지만, 그런 것은 일시적인 평안입니다. 왜냐하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그것은 몸의 한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영원한 평안을 얻겠습니까? 

 

마하리지 : 그대가 그 평안을 주시하고 있소. 그래서 평안과 주시자가 있는데, 거기에  그대로 있으시오. 때가 되면 이 평안과 주시자가 둘 다 사라질 것이오. 남는 것이 절대자인데, 이것은 아주 미세한 마지막 단계이며, 거기서는 거친 감각기관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유형(有形)적인 것도 없는 것이오. 이것은 오직 체험을 해야만 깨칠 수가 있소.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대는 다른 데가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소.

"제발 거기는 가지 마시오. 내 머리가 어주 어지럽고 온통 뒤죽박죽이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앎, 내가 가지고 있던 지식이 몽땅 사라져 버렸소!"라고 말이오.

 

질문자 : 어떤 사람은 자기 전생을 본다고 합니다. 그것은 어떻습니까?

 

마하리지 : 그것은 그들이 그것을 믿기 때문이오. 정치인들의 약속과 같이 그것은 그냥 말뿐이오. 

 

질문자 : 티베트인들이 그들의 라마를 선택하는 것은 그가 화신이기 때문입니다. 

 

마하리지 : 그것은 하나의 전통적인 개념인데, 나는 그런 개념 같은 것들에 전혀 관심이 없소. 그대가 어떤 답변을 원한다면, 우리가 죽을 때 우리가 품고있는 어떠한 개념도 될 수가 있다는 것이오. 그 개념에 따라 구처적인 형상을 취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오. 

 

질문자 : 만일 제가 죽을 때 신의 개념을 가지고 있으면 제가 신이 되겠습니까?

 

마하리지 : 그러나 어떤 종류의 신이 될 것이냐 하는 개념도 가지고 있어야 하지요! 팔이 네 개고, 머리가 세개거나 머리가 열개라는 식으로 말이오. 문제는 그대들이 모두 자신의 개념과 관념에서 어떤 이익을 끓어내고 싶어 한다는 것이오. 그대가 이용하기 위해서 어떤 생각도 갖지 마시오. 생각에 의지함이 없이 이해하고 가만히 머물러 있으시오. 보통의 욕구나 지성을 가진 사람들은 여기 올 수가 없소. 여기에 올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진보된 영혼인 것이 분명한 것 같소. 이 분이 여기에 매일 방문하는데, 이것이 한 개인의 욕구나 한 몽뚱이의 욕구라고 생각하오? 그것은 그 영혼이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오. 위대한 성자 뚜까람이 '내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소. 

 

질문자 : 어떤 사람이 저에게, 자기가 마하리지님을  방문 한 뒤에 체험한 것을 이야기 했는데 ---.

 

마하리지 : 여기에 찾아온 어떤 이들은 무슨 체험을 하고 나서 마하리지를 '위대하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도데체 누구를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이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오, 나는 완전히 비어 있소.

 

질문자 : 어떻게 하면 이 악순환에서 빠져 나올 수 있습니까?

 

마하리지 : 그대는 이 소용돌이 속에 말려들어 있소. 벗어나고 싶으면 그  중심부로 들어가야 하오. 안으로 깊히 잠수하시오. 이 탄생, 죽음, 환상이라는 악순환은 의식과 함께 시작되었소. 그 의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시오. 그러면 그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그대가 바로 그것들의 백그라운드(배경), 그 토대라는 것을 깨치게 될 것이오.(213) 

 

                                                                  - Seeds of Consciousne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