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진인 2020. 10. 19. 21:15

ㅇ. 객이 주인을 간파하다.(客看主)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

선종의 견해로는 죽음(死)과 삶(活)이 돌고 도는 일은 분명하다.

참선하는 사람들은 모름지기 이 점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주인과 손님이 서로 만나면 곧 말들을 주고 받는다. 

어떤 때는 주인이 상대방의 역량에 맞추어서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체작용을 다 드러내 보이기도 하며

어떤 때는 상대방을 건드려 보아 의향을 넌즈시 떠보며

기뻐하거나 성내기도 하며

어떤 때는 몸을 반쯤 나타내 보이기도 하며 

어떤 때는 사자를 타기도 하고 혹은 코끼리를 타기도 한다."

 

"진정한 학인이 있어 대뜸 '할'을 하여 아교풀 단지를 속임수로 내놓으면

선지식은 그것이 유혹의 경계인 줄 모르고 곧 그 경계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지어낸다. 

이것을 본 학인이 다시 '할'을 하여도 

눈앞의 선지식은 이를 놓아버리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의사도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다. 

이런 경우를 '객이 주인을 간파한다(客看主)' 라고 한다. 

 

ㅇ. 주인이 객을 간파하다(主看客)

"혹 어떤 선지식이 아무 것도 내놓지 않고 

학인이 물으면 묻는 대로 즉시 빼앗아버린다. 

학인은 빼앗기고도 죽어도 놓아버리려 하지 않는다. 

이것을 '주인이 객을 간파한다(主看客)'이라 한다. 

 

ㅇ. 주인이 주인을 간파하다(主看主)

" 혹 어떤 학인이 하나의 청정한 경계를 선지식 앞에 내놓으면

선지식이 그것이 경계인 줄 간파하고

집어다가 구덩이 속에 던져버리고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학인이 '참으로 위대한 선지식입니다'라고 하면

선지식은 곧 '쯧쯧, 좋고 나쁜 것도 분간하지 못하는 한심한 사람이로구나'

라고 나무라고, 학인은 곧바로 절을 한다. 

이것을 일러 '주인이 주인을 간파한다(主看主)'라고 한다."

 

ㅇ. 객이 객을 간파하다.

"혹 어떤 학인이 목에 칼을 쓰고 발에 족쇄를 차고서 선지식 앞에 나타나면

선지식이 그 위에 다시 칼과 족쇄를 한 겹 더 씌운다. 

학인이 어리석게도 이를 기뻐하면, 학인과 선지식이 피차간

서로 안목이 없는 것이니 이를 '객이 객을 간파한다(客看客)'라고 한다. 

큰스님들이여 ! 산승이 이같은 예를 든 것은

모두가 마구니와 이단을 가려내서 삿됨과 바름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

 

ㅇ.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

진실한 마음을 내기란 매우 어렵고

불법은 심오하지만 알고 보면 쉽고 쉬운 일이다. 

산승이 온종일 그들과 함께 설파해주지만,

학인들은 도무지 바로 그 자리가 깨달음의 장소임을 알지 못한다. 

찬 번 만 번 밟고 다니면서도 도무지 캄캄하고 어둡기만 하다. 

그것은 아무런 형체나 모습도 없으면서 

분명히 밝고 뚜렷하게 홀로 빛을 비추건만,

학인들이 믿지 못하고 이름과 글귀로 이해하려 한다. 

나아가 반백이 넘도록 단지 죽은 몸을 짊어지고 밖으로만 다니는구나 

이렇게 짐을 지고 천하를 돌아다녔으니

짚신 값을 깊을 날이 반드시 있으리라. "

 

ㅇ. 

"큰스님들이여!

산승이 밖에는 없다고 말하면 학인들은 이를 알아듣지 못하고 

곧 안으로 향하여 법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일으킨다. 

그러고는 곧이어 벽을 바라보고 앉아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고요히 움직이지 않고 좌선하는 것을 조사 문중의 불법이라고 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 아는 것이다. 

그대들이 만약 움직임이 없는 청정한 경계에 집착한다면

그대들은 무명번뇌를 주인으로 잘못 아는 것이다. 

옛사람이 '깊고 깊어 캄캄한 구덩이는 참으로 무섭고 두렵다'라고 했는데,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

 

 

"이번에는 반대로 그대들이 만약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옳다고 인정한다면

온갖 초목들도 다 움직일 줄 아니 그것도 응당 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움직이는 것은 바람의 특징이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땅의 특징이다. 

움직이는 것이든 움직이지 않는 것이든 모두 고정된 자성이 없다 (無自性)

그대들이 만약 움직이는 곳에서 붙잡으려 하면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곳에 있다.

또 그대들이 만약 움직이지 않는 곳에서 붙잡으려 하면

그것은 움직이는 곳에 있다..

비유하자면 마치 물 속에 있는 물고기가 

쏟아지는 물결을 거슬러 뛰어 오르는 것과 같다. 

큰스님들이여,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은 두 가지 경계일 뿐이다.

의지함이 없는 도인(無依道人)이라야 움직임도 쓰고 움직이지 않음도 쓴다."

 

                                                                       -임제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