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을 수 없음도 또한 얻을 수 없다.
[본문]
어떤 사람이 능선사(楞禪師)에게 물었다.
"마음이 과거와 미래의 일을 연(緣)하게 되면 바로 묶이는데 어떻게 해야 멈출 수 있습니까?
답한다.
"만약 (마음의 대상에) 연(緣)할 때 즉시에 (그 상이) 멸진함을 알면 필경에 일어나지 않게 된다.
왜 그러한가? 마음에 자성(自性)이 없는 까닭이다.
까닭에 경에서 이르길, '모든 것은 자성이 없다'고 하였다.
때문에 한 생각 일어날 때 바로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다. 왜 그러한가?
마음이 생할 때 동방에서 온 것도 아니고 또한 남서 북방에서 온 것도 아니다.
본래 온 곳에 없으니 바로 생함이 없다. 만약 생하지 않았음을 안다면 바로 멸함도 없다."
[본문]
또 묻는다.
"마음에 묶여 업을 짓는 것을 어떻게 끊을 수 있습니까?"
(능성사가) 답한다.
"무심(無心)인 까닭에 끊을 필요가 없다. 망상인 까닭에 이 마음은 생한 곳도 없고 또한 멸한 곳도 없다.
망상이 생한 법인 까닭이다.
경에 이른다. '업장의 죄는 (동방에서 오지도 않았고) 남서북방 사유(四維)와 상하(上下)에서도 오지 않았다.
모두 전도(顚倒)된 까닭에 생긴 것이다. (이러함을)의심해서는 안된다.
보살이 과거 모든 부처님의 법을 살피며 시방(十方)으로 구하였으나 모두 얻을 수 없었다."
[해설]
일체가 오직 마음뿐인 까닭에 아무 것도 얻을 바 없다. 오직 마음 뿐이어서 마음도 얻을 바 없다.
[본문]
어떤 사람이 현선사(顯禪師)에게 물었다.
"무엇을 약이라 합니까?"
답한다.
" 모든 대승은 병을 대치(對治)한 말씀이다. 만약 능히 병을 일으키지 않게 되면 병을 대치할 약이 필요하겠는가 !
유병(有病 : 있다고 집착하는 병)을 대치하고자 공무(空無)의 약(藥)을 설하였다.
유아(有我 : 我가 있다고 보는)의 견(見)을 대치하고자 하여 무아(無我)의 약을 설하였다.
생멸의 견을 대치하고자 생멸이 없음을 설하였다. 인색함을 대치하고자 보시를 설하였다.
어리석음을 대치하고자 지혜를 설하였다. 내지 삿된 지견을 대치하고자 정견(正見)을 설하였다.
미혹을 대치하고자 이해하는 법을 설하였다. 이것은 모두 병을 대치하는 말이다.
만약 병이 없을 때라면 이러한 약이 어찌 필요하겠는가?
[본문]
어떤 사람이 훤선사(暄禪師)에게 물었다.
"체(體)를 얻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답한다.
"마음이 도의 체(體)이다. 이 심체는 체가 없다. 이는 불가사의한 법이다.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다. 왜 그러한가? 마음에 자성(自性: 實體)이 없는 까닭에 유가 아니다.
인연화합으로 생한 까닭에 무가 아니다. 마음에 형상이 없는 까닭에 유가 아니다.
용(用)함이 그침이 없는 까닭에 무가 아니다."
[본문]
연선사(淵禪師)가 말하였다.
"만약 일체 모든 것이 필경에 공이라면 능지(能知), 소지(所知)도 또한 공이고, 능지의 지(智)도 공이며,
소지의 법도 또한 공이다. 까닭에 이른다. '법과 지(智 :能知)가 함께 공하니 이를 공공(空空)이라 한다.'
까닭에 <불장경(佛藏經)>에 이른다.
'과거불께서 일체 모든 것이 필경에 공이다 하였고, 미래불께서도 일체법이 필경에 공이라고 설한다. "
[본문]
장법사(藏法師)가 말하였다.
" 일체 모든 것을 얻음이 없는 자를 수도인(修道人)이라 한다.
왜 그러한가? 눈으로 일체 사물을 보는데 눈이 일체 사물을 얻음이 없다.
귀가 모든 소리를 든는데 귀가 모든 소리를 얻음이 없다.
내지 의(意)의 연(緣)이 되는 경계도 또한 이와 같다.
까닭에 경에서 이른다. '마음에 얻을 바 없으면 불(佛)이 바로 수기(授記 : 成佛할 것을 약속함)한다'
경에 이른다 '일체법은 얻을 수 없고, 얻을 수 없음도 또한 얻을 수 없다.'"
[해설]
일체 모든 것은 오직 마음 뿐이어서 얻을 것이 없다. 마음에 얻을 것이 있다면 마음 외에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이 되어 오직 마음일 뿐이라는 뜻에 어긋난다. 그런데 '얻을 것이 없다'는 법을 취하거나 향하고 있으면 그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 되어 얻을 것 없다는 뜻에 스스로 모순되어 버린다. 그래서 얻을 것 없다는 그 법에도 향하거나 머무르거나 취착할 수 없다. 요컨대 '얻을 바 없다'는 법에 의해 그 마음이 일어나 버리면 이 또한 마음이 동(動)한 것이고, 마음에 떨어진 것이니 얻을 바 없다는 생각에도 향하거나 머물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본문]
현선사(賢禪師)가 말하였다.
"눈이 보는 자리가 곧 실제(實際 : 眞如,心體,一心,佛性)이고,
일체 모든 것이 다 실제인데 다시 무엇을 구하겠는가?"
[해설]
본래 당념 당처 그대로 항상 실제(實際: 一心,佛性)에서 조금도 떨어져 있지 않은데 무엇을 구하고자 하면
마음이 붕 떠서 본 자리를 잃어버린다.
그래서 무원무구(無願無求)인 때 즉심(即心)이 되고, 즉심(即心)에 성불한다.
-담림 편집,박건주 역주 <보리달마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