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사 금강경 강의(14-3)
離相寂滅分(이상적멸분) 第十四(제십사) -③
[본문]
如來說一切諸相(여래설일체제상)은 即是非相(즉시비상)이며 又說一切衆生(우설일체중생)은 即非衆生(즉비중생)이니라.
여래가 말한 일체 제상도, 곧 이 상이 아니며, 또 말한 일체 중생도, 곧 중생이 아니니라.
[해설]
일체 제상도 상이 아니고, 일체 중생도 상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생각하여 보라.
[본문]
須菩提(수보리)야 如來(여래)는 是眞語者(시진어자)며 實語者(실어자)며 如語者(여어자)며 不誑語者(불광어자)며
不異語者(불이어자)니라.
수보리야 여래는 이 참다운 말을 하는 자며, 실다운 말을 하는 자며, 같은 말을 하는 자며, 속이는 말을 않는 자며,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자이니라.
[해설]
이 말씀에서 부처님의 뜻이 어데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무엇때문에 금강바라밀경을 설하시었는가.
중생의 병이 있기 때문이다. 중생의 병이 어찌 하나 둘 뿐이요마는, 천병 만병의 근원이 집착하는 데에서 원인이 된 것이요, 집착하는 원인은 내가 있기 때문이니, 이 병을 고치는데는, 나를 놓아 버리는 것 밖에는 아무 약이 없다.
그러나 이 약을 먹을 사람은 고금을 통하여 만에 하나 있기가 어려웁니다.
어째서 그러냐 하면, 나를 놓아 버리면, 천하 만사가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없으면, 좋은 음식도 못 먹고, 좋은 옷도 못입고, 좋은 물건도 못 가지고, 좋은 벼슬도 못 살고, 애인도 못 보고, 즐거운 음악도 못 듣고, 좋은 법도 못 배우고, 아들도 없고, 손자도 없고, 부처도 없고, 천당도 없을 것인데, 어떻게 나를 놓아 버릴 수가 있을 것인가 말이다. 정말로 나를 놓아버리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이약을 먹지 않고는 도저히 중생들의 병을 고칠 수가 없을새, 부처님께서 천언 만언으로써 이약을 먹이고저 노바심절, 고구정녕(老婆心切 苦口丁寧)하시었으니, 동쪽을 들어서 모르는 사람에게는 서쪽을 들어 말씀하시고, 서쪽을 보여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남쪽을 보이시고, 남쪽을 일러 모르는 사람에게는 동서남북이 없는 것을 들어 말씀하시고, 없는 것이 고집하는 자에게는 없는 것도 없다 말씀하시고, 상을 고집하여 상으로써 부처를 보려는 자에게는 상을 여이어사 부처를 보는 것을 말씀하시고, 상을 떠나서 부처가 따로 있는 줄로 고집하는 자에게는 상이 곧 부처임을 말씀하시고, 있는 곳에 걸린 놈은 없는 약을 주시고,
없는 것에 체한 놈은 있는 약을 주시고, 있도 없도 않은데 체한 놈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약을 주시어, 하나도 일정한 약이 없고, 하나도 일정한 화제가 없는 것이, 이 경의 설법이시나, 요는 나를 놓아 버리라 하심은 나를 놓아서 참으로 참나, 참으로 큰 나, 참으로 영원불멸인 실다운 나를 얻기 때문이다.
이 얻음은 얻음이 없이 얻는 것이다. 이 때문에서 여래는 참 말을 하는 자며 실다운 말을 하는 자며, 여여한 말을 하는 자며, 속이는 말을 않는 자며, 다른 말을 않는 자라고 다섯번이나 말씀하신데서, 우리들은 더욱 부처님의, 중생을 위하시는 간절하신 마음과 고심되는, 모습과 이법을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과, 중생들의 근기가 얼마나 열한가를 절실히 짐작할 수 있다. 참말은 말이 없는 것이어늘, 여래는 부득히 참 말이라고 말씀하시고, 참 말이라고만 하여도 중생이 믿지 아니할가 염려되시어, 또 다시 실다운 말이라고 하시고, 그래도 부족하여 여여한 말씀이라 하시고 그리고도 시원치 못하여 속이는 말이 아니라 하시고, 그리고도 또 못 믿어 다른 말을 않는다고 당부를 하시었으니, 참말은 곧 실다운 말이요, 여여한 말이요, 속이지 않는 말이요, 다른 말이 아니어늘, 이렇게 다섯번이나 같은 말을 중복하심은 이토록 중생을 위하심이 간곡하신 뜻에서, 행여나 이 법을 맏지 않을가 하는 염려가 크시기 때문이다.
[본문]
須菩提(수보리야 如來所得法(여래소득법)은 此法(차법)이 無實無虛(무실무허)니라.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바 법은 이 법이 실로 없고 허도 없나니라.
[해설]
중생은 말만 떨어지면 병을 이루나니, 이것이 상을 여의지 못한 소이이다.
그러므로 실을 말하면 실병이 되고, 허를 말하면 허병이 될새. 실과 허가 둘 다 없는 근본을 들어서 밝히시니,
실이 있으면 실 아닌 허가 있는 것이요, 허가 있으면 허 아닌 실이 있는 것이니, 이것은 마음을 주하는 법이 못되는 것이요, 실과 허를 둘 다 놓아사, 이것이 참으로 마음을 주하는 법이요, 이것이 참으로 반야바라밀법이요, 이것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법인 것이다.
[본문]
須菩提(수보리)야 若菩薩(약보살)이 心住於法(심주어법)하여 而行布施(이행보시)라하면 如人入闇(여인입암)에
即貿所見(즉무소견)이어니와 若菩薩(약보살)이 心不住法(심불주법)하여 而行布施(이행보시)하면 如人有目(여인유일)커던 日光明照(일광명조)하여 見種種色(견종종색)이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마음을 법에 주하여 보시를 행하면 사람이 어둔데 들어감에, 보이는 바가 없는 것과 같고, 만약 보살이 마음을 법에 주하지 않고 보시를 행하면, 사람이 눈이 있고 햇빛이 밝게 비치어, 가지가지 색을 보는 것과 같나니라.
[해설]
보는 것으로써 보는 것을 삼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 많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써 보는 것을 삼으면 안보이는 것이 없는 것이니, 주하고, 주하지 않는 보시의 차이가 이 만큼 다른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본문]
須菩提(수보리)야 當來之世(당래지세)에 若有善男子(약유선남자) 善女人(선여인)이 能於此經(능어차경)에 受持讀誦(수지독송)하면 即爲如來(즉위여래) 以佛智慧(이불지혜)로 悉知是人(실지시인)하여 皆得成就無量無邊功德(개독성취무량무변공덕)하나니라.
수보리야, 마땅히 오는 세상에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능히 이 경을 수지독송하면, 곧 여래가 큰 지혜로써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보아, 한량이 없고 가 없는 공덕을 얻어 성취함이 되나니라.
[해설]
아무 것도 없는 깨끗한 물에다 소금을 치면 짜고, 초를 치면 시고, 설탕을 풀면 달고, 쓴 것을 넣으면 쓰고, 기름을 치면 고소하고, 고추를 넣으면 맵다. 그리하여 이 물을 마시는 사람들이 짜다,시다, 달다,쓰다, 고소하다, 맵다고, 제 각기 말하고 있으나, 물의 본맛은 시고, 달고, 짜고, 맵고, 쓰고, 고소한 것이 아니요, 담담하여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물의 본맛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저 맛있는 물들을 즐겨 다투어 마시고, 이 아무 맛없는 본 물의 본맛을 즐기는 자는 매우 드믈다.
이와 같이 아무 것도 섞이지 않은 본연 청정의 법 아닌 법을 설한, 심심미묘한 이 경을 수지 독송하는 사람이야 말로, 물의 본맛을 즐기는 자이니, 이는 곧 자기의 깨끗한 본심을 증득한 사람이므로, 부처가 곧 이 사람이다.
내가 곧 부처요, 무량무변의 공덕을 성취한다는 말씀이시다.
-해안선사 강의 <금강반야바라밀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