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십지품 공부(13)
(11) 십대서원은 십진구(十盡句)로 성취한다.
[본문]
"불자여, 이 큰 서원은 열 가지 끝나는 구절(盡句)로 성취되느니라.
무엇이 열인가. 말하자면 중생계가 끝나고, 세계가 끝나고, 허공계가 끝나고, 법계가 끝나고, 열반계가 끝나고, 부처님의 출현하는 계(界)가 끝나고, 여래의 지혜의 계가 끝나고, 마음으로 반연하는 계가 끝나고, 부처님의 지혜로 들어갈 경계의 계가 끝나고, 세간의 진전(轉), 법의 진전, 지혜의 진전하는 계가 끝나는 것이니라."
[해설]
환희지에 머문 보살이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발원하고, 일체 불법을 수지할 것을 발원하고, 법륜 굴리기를 발원하고, 자리이타를 발원하는 등의 열 가지 발원을 하였는데, 이와 같은 발원을 시간적으로 얼마 동안 하는 것인가를 열 가지 끝나는 구절로써 밝혔다.
[본문]
"만약 중생계가 끝나면 나의 원도 끝나며, 만약 세계와 내지 세간의 진전, 지혜의 진전하는 계(界)가 끝나면 나의 원(願)도 끝나려니와, 중생계가 끝날 수 없으며 내지 세간의 진전, 지혜의 진전하는 계가 끝날 수 없으므로 나의 이 큰 원의 선근도 끝날 수 없느니라."
[해설]
중생계가 끝나고, 세계가 끝나고, 허공계가 끝나고, 법계가 끝나고, 열반계 등이 끝나면 보살의 서원도 끝나려니와 그 모든 경계가 어느 것 하나도 결코 끝나지 않으므로 보살의 큰 서원의 선근도 결코 끝나지 아니한다. 보살의 서원은 끝날 수 없다. 보살은 그 자체가 곧 서원이기 때문에 만약 서원이 끝난다면 보살도 그 순간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십진구가 있다.
(12) 서원을 발한 후 얻는 열 가지 마음.
[본문]
"불자여, 보살이 이와 같은 큰 서원을 발하고는 곧 이익하게 하는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과 따라 순종하는 마음과 고요한 마음과 조복하는 마음과 적멸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과 윤택한 마음과 움직이지 않는 마음과 혼탁하지 않은 마음을 얻는다. "
[해설]
환희지에 오른 보살이 열 가지 서원을 발하고는 매우 훌륭한 마음을 얻게 된다. 그 마음을 열 가지로 밝혔다.
환희지에 오른 보살 뿐 아니라 불법을 철저히 믿고 불법으로 삶의 기쁨을 삼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열 가지 마음을 항상 지니게 된다. 평소에 이러한 마음만 지니게 되면 어떤 험한 세상이라도 평정심을 유지하여 중생을 위한 보살행으로 일관할 수 있을 것이다.
11) 믿음을 성취한 보살이 믿는 것.
[본문]
"청정한 신심을 성취한 이는 신심의 공용(功用)이 있어 여래께서 본래 행(行)으로 들어가신 것을 믿으며,
모든 바라밀다를 성취함을 믿으며, 모든 수숭한 지위에 들어감을 믿으며, 힘을 성취함을 믿으며,
두려움 없음을 구족함을 믿느니라. 또 깨드릴 수 없는 함께 하지 않는 불법의 생장함을 믿으며, 부사의한 불법을 믿으며, 중간도 가장자리도 없는 부처님 경계를 내는 것을 믿으며, 여래의 한량없는 경계에 따라 들어감을 믿으며, 과보를 성취함을 믿느니라. 중요한 점을 들어 말하자면 일체 보살의 행과 내지 여래의 지혜의 지위와 말하는 힘을 믿는 것이니라."
[해설]
환희지에 오른 보살이 특별히 열 가지 믿는 것이 있음을 밝혔다.
보살 수행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십신위(十信位)에서 믿는 것과는 달리 십신을 넘고 삼현(三賢)을 넘어 십지 초지에 들어와서 믿는 내용이다. 초지 보살은 청정한 신심을 성취했기 때문에 신심의 뛰어난 작용(功用)이 있다.
그래서 먼저 여래께서 본래의 행(行)으로 들어가신 것을 믿는 것으로부터 불보살의 모든 지혜의 경지와 보살행을 남김없이 믿는 것이다. 이 믿음 속에는 불법의 위대하고 불가사의한 내용들이 빠짐없이 있음을 다시 한 번 명백하게 밝히는 것이다.
12) 환희지에 머문 보살의 염려
[본문]
"불자여, 이 보살이 또 이런 생각을 하느니라.
'부처님의 바른 법이 이와 같이 깊고, 이와 같이 고요하고, 이와 같이 적멸하고, 이와 같이 공(空)하고, 이와 같이 모양이 없고, 이와 같이 원(願)이 없고, 이와 같이 물들지 않고, 이와 같이 한량이 없고, 이와 같이 광대하건만, "
[해설]
환희지에 오른 보살이 인생사의 만능열쇄와도 같은 위대한 불법을 생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부중생들이 고통에서 허덕이는 모습을 생각하여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고통을 떠나서 안락을 누리도록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것을 밝혔다.
다시 정리하면 세상 중생들의 삶은 어떠하며, 불교는 또한 어떠하며, 불교를 실천 수행하는 사람들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밝혔다. 이것이 곧 뜻 있는 불교인, 즉 보살이 잊지 않고 늘 생각해야 할 바다.
불법의 위대함을 깊음과 고요함과 적멸함과 공함과 형상이 없음과 원이 없음과 물들어 더러움이 없음과 한량없음과 광대함으로 밝혔다. 이 아홉 가지 낱말 속에 일체 불법이 다 포함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이"는 화엄경과 팔만대장경에서 설명하고 있는 모든 참되고 바른 이치와 가르침을 말한다.
[본문]
"모든 범부들이 삿된 소견에 빠져"
[해설]
불법은 그토록 위대하건만 범부 중생들이 삿된 소견에 빠져서 번뇌무명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고통받고 있는 까닭을 자세히 하나하나 밝혀 나간다.
삿된 견해에 대해서 청량스님은 "삿된 견해란 앞에서는 정법은 이치가 본래 치우침이 없음을 밝혔고, 지금은 저 진실한 뜻을 미혹하여 이치 밖에 그릇 취함을 모두 삿된 견해라 이름한다"라고 하였다.
"정법은 본래 취우침이 없다"는 것은 일체 존재의 중도성(中道性)을 말한다. 모든 존재는 있음과 없음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삿된 견해며 치우친 견해이다.
[본문]
"무명에 가려져서 교만의 깃대가 높이 섰으며, 애착의 그물에 얽매여 아첨과 거짓의 빽빽한 숲 속을 다니면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며,마음은 인색과 질투가 서로 맞아서 버리지 못하고, 여러 갈래에 태어날 인연을 항상 짓느니라."
[해설]
번뇌무명에 가려진 사람은 오히려 교만심이 높아서 잘난 체를 잘한다. 집착과 애착이 심하여 거짓의 빽빽한 숲 속을 헤메면서 벗어날 줄 모른다. 또한 아끼고 탐하는 것과 질투가 그 마음에 들어서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지옥과 같고 아귀와 같고 축생과 같은 성질을 부리면서 그것으로 자신의 삶의 인연을 짓는다.
[본문]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으로 모든 업을 지어서 밤낮으로 증장하고, 분노의 바람으로 마음과 의식의 불을 일으켜서 치성한 불꽃이 쉬지 않으며, 모든 짓는 업이 다 뒤바뀜과 상응하게 되느니라."
[해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탐진치(貪嗔痴)라 하여 팔만사천의 번뇌 중에 가장 근본이 되는 번뇌다.
팔만사천의 번뇌가 이 탐진치를 뿌리로 하여 벌어진 줄기와 가지와 잎들이다.
이것이 밤낮으로 불어나고 성장하여 분노와 원한의 바람이 심식의 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여 쉴 줄 모른다.
그래서 매일 매일 짓는 업들이 모두 다 전도몽상과 상응하여 지옥과 같고 아귀와 같고 축생과 같고 아수라와 같은 세상을 연출한다. 이것이 미혹한 중생들의 삶이다. 지혜와 자비로 충만한 보살이 왜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본문]
"욕망의 폭류(欲流)와 있음에 대한 폭류(有流)와 무명의 폭류(無明流)와 소견의 푝류(見流)가 서로 계속하여 마음과 뜻과 의식(心意識)의 종자를 일으키느니라"
[해설]
여기까지 12인연 중에 무명(無明)과 행(行)과 식(識)의 경계에서 미혹한 중생이 온갖 여러가지 삶을 펼치게 되는 근본을 밝혔다. 무명(無明)과 행(行)과 식(識)이 근본이 되어 욕망이 마치 폭포수가 쉬지 않고 쏟아져 내리듯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일체 존재는 공하여 없는 것이 아니라 굳게 있다고 여기는 고집 또한 폭포수가 쉬지 않고 쏟아져 내리듯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무명의 어두움과 자기 소견에 대한 집착이 그와 같이 서로 서로 계속하여 마음과 뜻과 의식(心意識)의 종자를 일으키고 있다.
[본문]
"삼계(三界)라는 밭에서 다시 고통의 싹을 내느니라. 이른바 정신(이름)과 물질(名色)이 함께 나서 떠나지 아니하며, 정신과 물질이 증장하여 여섯 군데의 기관(聚洛)을 내고, 그 속에서 서로 대하여 접촉함(觸)을 내며, 접촉함으로 받아들임(受)을 내고, 받아들임으로 사랑함을 내고, 사랑이 자라서 취(取)함을 내고, 취함이 증장하여 소유(有)를 내느니라."
[해설]
12인연 가운데 앞에서는 무명과 행과 식을 말하였고, 다시 정신과 육신(名色)이 생기고, 육신이 발전하여 여섯가지 받아들이는 육입이 생기고, 다시 감촉하는 기능이 생기고, 나아가서 감촉이 좋으면 받아들이게 되고, 받아들이다 보면 애착하게 되고, 애착하다 보면 그것을 취하게 되고, 급기야는 소유하게 된다.
[본문]
"소유가 생김으로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번거로움을 내느니라.
이와 같이 중생이 고통의 갈래 속에서 생장라느니라."
[해설]
12인연에서 소유가 생김으로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번거로움 등의 고통이 연속되는 것이다. 우리들 인생은 언제나 이와 같은 과정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그것이 중생의 삶이다.
[본문]
"이러한 것들 가운데는 모두 공하여 '나'와 '나의 것'을 떠났으므로 알음알이가 없고, 깨달음도 없으며, 짓는 것도 없고 받는 것도 없음이 마치 초목이나 돌과 같으며 또한 영상(그림자)과도 같으니라."
[해설]
사람들은 열두 가지 인연으로 삶을 영위하지만 그 열두가지 인연은 모두 공하여 실체가 없다. '나'라 할 것이 없으며 '나의 것'도 없다. 아무런 지각이 없으며 짓거나 받음이 없는 것이 마치 저 무정물인 초목이나 돌덩이와 같다. 또한 그림다와 같다.
[본문]
" '중생들은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구나.'라고 하느니라."
[해설]
미혹한 중생들은 12인연으로 살아가는 그와 같은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본문]
보살은 모든 중생들이 이와 같은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보고, 큰 자비와 지혜를 내어 다시 또 생각하기를
'이 모든 중생들을 내가 응당히 건져 내어 구경까지 안락한 곳에 둘 것이니, 그러므로 큰 자비와 광명의 지혜를 내리라.'라고 하느니라,"
[해설]
보살은 중생들이 12인연의 굴레에 갇혀서 고통받고 있는 사실을 알고 큰 지혜와 자비를 일으켜서 그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여 완전한 안락의 경지에 머물게 하려는 생각을 한다.
- 여천무비 저 <대반광불화엄경 강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