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라마나 마하리쉬의 실재사십송(3)

무한진인 2020. 2. 5. 20:07


                                                       -그것이 넘쳐 올라 나타날 때          

31. 에고를 소멸하므로써 일어나는 진여의 지복인 사람에게​ 

무엇 하나 할 일이 있겠는가? 진아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알지 못하는 그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지고자라고 공언되는

​32. 그것이 그대라고 경전에서 선언하고 있는데, 자기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알아내지는 않고, "그것이 나"이고

"이것은 '나'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힘이 부족한 탓이니,

언제나 그것이야말로 진아로써 존재하기 때문이네.


                                                         -그  외에

33. "나 자신을 모른다"거나 "나 자신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웃음을 살 일이네, 왜냐하면

자기가 '아는 대상'이라면, 자기가 두 개라는 것인가?

(자기가) 하나라는 것이 모두가 경험하는 진리이기 때문이네.


                                                         -단 한 생각도 없이

34. 항상, 모두의 성품으로 존재하는 실재를

심장 안에서 깨달아 확고히 안주하지 않고,

"그것이 있다, 없다, (그것은) 형상이 있다, 없다,

(그것은 ) 하나다, 둘이다, 아니다"라고

다투는 것은 마야에서 나온 무지이니, (그런 논쟁을) 포기하라.


                                                          -마음이 가라앉은 뒤

35. 성취되는 실체를 알고 그것으로 존재함이 (참다운) 싯디(성취)라네.

다른 싯디(초능력)들은 모두 꿈 속에서 얻는 성취에 불과하네,

잠에서 깨면 (그것들이) 실재하는가?

실재 상태에 안주하면서 실재하지 않는 상태를 버린 이들이 미혹되겠는가?

(그렇게) 알고 그대로써 존재하라.


                                                           -미혹을 지닌 채

36. 우리가 자신을 몸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이다."가  우리가 그것으로 안주하는 데 좋은 방편이 되네.

우리는 그것인데, 왜 줄곳 우리가 그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는가?

"나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진리를) 모르면서 우리가 취하는

37. "수행하는 동안은 이원성이고, 성취하고 나면 단일성"이라고

하는 주장도 맞지 않네.

열심히 찾고 있을 때나 자신을 발견할 때나,

그 사람은 열 번째 사람이었을 뿐 다른 누구도 아니네.

<주: 열명의 바보가 강을 건너서 자기를 빼고 숫자를 세니 아홉인데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한 사람씩 뺨을 때랴가며 숫자를 세니 열명이 맞아서,

마지막 열명째란 잊어버리지 않았는데, 잊어버렸다고 착각한 사람을 말함>


                                                           -씨앗 같은

38.행위들을 우리가 '하는 자'라면, 그로 인해 열매를 경험하게 되네.

"행위를 하는 자는 누구인가?" 하고 물어 진아를 깨달으면,

행위자 느낌이 사라지고 세 가지 업은 떨어져 나간다네.

이것이 실로 영원한 해탈이라네.


                                                          - 미친 사람이 되어

39. "나는 속박되어 있다"고 느끼는 동안만 속박과 해탈의 생각이 있네.

"속박된 자는 누구인가?" 하고 탐구하여 자기 자신을 보게 되면,

항상 해탈해 있는 자(진아)가 진리로 남게 되네.

속박에 대한 생각이 머무를 수 없는데,

해탈에 대한 생각이 머무를 수 있겠는가?


                                                           -마음에 맞추기 위해

40. "명상이 있고, 형상이 없고, 형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세 가지

중에 어느 것이 우리가 얻는 해탈인가?"라고 한다면,

"형상이 있다, 없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분별하는 그 에고의

형상이 소멸되는 것이 해탈이라고 알라.  -終-



                                                            - 라마나 마하리쉬의 실재사십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