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라마나 마하리쉬의 최초저작인 <자아탐구>-8

무한진인 2019. 12. 20. 09:34



30.

제자 : 심장괴 범혈(梵穴)만이 명상하기에 적합한 장소라고 할지라도, 만약 필요하다면 여섯 군데 신비한 중심들에 대해 명상할 수도 있습니까?

스승 : 명상의 장소라고 하는 여섯 군데의 신비한 중심(차크라) 따위는 상상의 산물일 뿐입니다. ​그런 것은 모두 요가의 초심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여섯중심에 대한 명상에 관해 시바 요기들(知수행자,知요가)은 이렇게 말합니다.

"비이원적이고 완전한, 의식-자아의 성품을 가진 자인 신이, 우리 모두를 나타내게 하고, 유지하고, 해체한다. 실재에다 가나빠띠, 브라마, 비슈누, 루드라,마헤슈와라, 사다시바(여섯중심차크라에 각각의 신들의 이름을 붙임) 등 온갖 이름과 형상들을 덧씌워 그것을 망치는 것은 큰 죄이다" 그리고 베단타 학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그 모든 것은 마음의 상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만약 일체를 아는  의식의 성품을 가진 진아를 알면, 우리는 일체를 아는 것입니다. 위대한 성인들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하나를 그 자체 있는 그대로 알게 되면, 모르고 있던 모든 것을 알게 된다." 만약 여러 가지 생각에 걸려 있는 우리가 진아인 신에 대해 명상하면, 우리는 그 하나의 생각으로써 온갖 생각들을 제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 한 생각마저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진아를 아는 것이 신을 아는 것이라고 말하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앎이 해탈입니다.

31.

제자 : 진아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스승 : 진아는 어둠도 빛도 없이 스스로 빛나고 있으며, 스스로 드러나는 실재입니다. 그것을 이런 것이나 저런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생각한다는 그 생각 자체가 속박을 가져옵니다. 진아에 대한 명상의 취지는, 마음으로 하여금 진아의 형상을 취하려 하려는 것입니다. 심장동혈의 한가운데는 순수한 브라만이 '나-나'의 형상을 한 진아로서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것을 앞에서 말한 대로 알지 않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것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무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32.

제자 : 브라만은 '나-나'의 형상으로 심장 안에서 진아로서 드러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스승 : 깊은 잠이 들었을 때나 기절했을 때와 같은 경우에는 전혀 어떤 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 즉 자기도 알지 못하고 다른 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바가 아닙니까? 그런 다음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거나 '나는 기절해서 회복되었다'하는 경험이 있을 때, 그것은 앞에서 말한 분별없는 상태에서 일어난 특수한 앎의 한 형태 아닙니까?이 특수한 앎을 명지(明知,vijnana)라고 합니다. 이 명지는 진아와 관련해서나 비아(非我)와 관련해서만 드러나지 그 자체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진아와 관련될 때 그것을 진지(眞知)라고 합니다. 즉, 그 대상인 진아인 그러한 마음의 상(相)을 가진 형태의 지(知), 혹은 그 내용으로서 유일자(唯一者,眞我)를 가지고 있는 지(知)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비아(非我)와 관련될 때, 그것을 무지라고 합니다. 진아와 관련되어 진아의 형상으로서 드러날 때의 명지의 상태를 '나' -나툼(I-manifestation, 아함 스푸라나를 말하는데, '광휘' 또는 '맥동'으로 번역되는 이것은 진아 깨달음의 전단계에서 나타나지만, 진아 그자체는 아님)이라고 한다. 이 나툼은 실재(즉,진아)와 별개로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실재에 대한 직접체험의 표지 역활을 하는 것이 이 나툼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 자체로 실재인 상태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나툼이 거기에 의존하여 일어나는 그것이 근본적 실재이며, 그것을 완전의식이라고 합니다. 베단타 문구인 "완전한 의식이 브라만이다.(Prajnanam Brama)"도 같은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 경전의 취지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십시오. 스스로 빛나는 것이고, 모든 것의 주시자인 진아는 명지각(明知殼,지성의 껍질) 안에 거주하면서 스스로를 나툽니다. 나뉘지 않는 마음의 상으로서, 이 진아를 그대의 목표로 꽉 붙잡아 그것을 자기(진아)로서 즐기십시오,  


33.

제자 : 내적인 숭배 혹은 속성없는 것에 대한 숭배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스승 : <리부 기타> 같은 책에서는 속성 없는 것에 대한 숭배가 (하나의 별개의 원리로서)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희생(犧牲:신에게 짐승을 제물로 바치는 것), 보시,고행, 맹세의 준수(묵언의 맹세 따위), 염송, 요가, 예공 등 모든 행법들은 사실상 '나는 부라만이다'하는 형태의 명상 방식들입니다. 따라서 모든 행법에 있어서, 우리는 '나는 브라만이다' 하는 생각에서 자신이 벗어나지 않도록 잘 살펴야 합니다. 이것이 속성없는 것에 대한 숭배의 의미입니다.​

                                                        - 라마나 마하리쉬의 자아 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