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나 마하리쉬 최초저작인 <자아탐구>-4
13.
제자 : 일과 관련된 행위가 있을 때, 우리는 그 일의 행위자도 아니고 향유자도 아닙니다. 그 행위는 세 가지 도구(마음,말, 몸) 의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초연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스승 : 마음이 그것의 신(deity)인 진아 안에 머무를 수 있게 되고, 그것이 진아로부터 벗어나 헤메지 않으므로 경험적인 대상들에 대해 무관심해 진 뒤라면, 그 마음이 어떻게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생각들이 속박을 이루는 것 아닙니까? 잔류인상(원습) 때문에 그런 생각들이 일어날 때, 우리는 마음이 그런 식으로 흐르는 것을 제어하고 그것을 진아상태에 붙들어 두려고 노력하여, 그것이 경험적 대상들에 무관심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 속에 '이것이 좋은가, 저것이 좋은가? 이것을 할 수 있을까? 저것을 할 수 있을까?'와 같은 생각들이 들어설 여지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생각들이 일어나기 전부터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하고, 마음을 그 원초적 상태에 머물러 있게 해야 합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여지를 주면 그런 (어지러운) 마음은 마치 친구인 척하면서 우리에게 해를 끼칠 것입니다. 친구처럼 보이는 것과 같이, 그것은 우리를 쓰러뜨리고 말 것입니다. 그런 생각들이 일어나서 점점 더 많은 악을 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자신의 진아를 잊어버리기 때문이 아닙니까?
분별을 통해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모든 행위는 그 (세 가지) 도구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의 생각원습을 따라 흘러가는 것을 막는 수단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면) 마음이 생각의 원습을 따라 흘러갈 때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분별을 통해 그것을 제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습니까?
진아상태 안에 머무르고 있는 마음이 '나'로서 생각하고, '나'로서 경험적으로 이러저러하게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우리는 자신의 진아, 곧 신을 잊지 않도록 점진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을 성취하면 모든 것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다른 어떤 것에도 쏠리게 하면 안됩니다. 설사 우리가 발현업의 결과인 행위들을 미친 사람처럼 수행한다 할지라도, '내가 한다'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하면서 마음을 진아 상태 안에 붙들어 두어야 합니다. 무수한 헌신가들이 (행위나 그 결과에) 무관심한 태도로 수많은 경험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까?
14.
제자 : 출가수행(세속포기)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스승 : 출가수행이란 '나라는 생각'을 포기하는 것이지, 외부적인 대상들을 배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나라는 생각'을) 포기하는 사람은, 홀로 있든 아니면 광대한 윤회계 한가운데 있든, 똑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마음이 어떤 대상에 집중되어 있을 때는 다른 것들이 가까이 있어도 그것을 처다보지 않듯이, 진인은 아무리 많은 경험적 행위를 한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나'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하면서 마음을 진아 안에서 휴식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꿈 속에서 우리의 머리가 땅으로 곤두박질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우리가 움직이지 않고 있듯이, 무지한 사람, 즉 '나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은 사람은 홀로 끊임없이 명상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사실은 온갖 경험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입니다. 현자들이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주 :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의가 딴 데 가있는 사람처럼, 잔류인상이 해소된 사람의 마음은 행위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그렇지 않다. 잔유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행위하지 않는 것처러 보여도 실은 행위하는 것이다. 이것은 꿈을 꾸는 사람이 몸은 움직이지 않아도 꿈 속에서 산을 오르거나 굴러 떨어진다고 상상하는 것과 같다. ]
15.
제자 : 마음, 감각기관 등은 지각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것들은 지각되는 대상으로 보여야 합니까?
스승 :
아는 자 알려지는 대상
1,보는 자 에고성
2.눈 기관 몸, 항아리
3.시각(시각) 눈 기관
4.마음 시각
5.개인적 영혼 마음
6.의식(진아) 개인적 영혼
이 도식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 즉 의식이 모든 대상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아는 자'라고 일컬어 집니다.
'항아리' 등을 포함하는 범주들은 보이는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알려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에 나온 '지(知)-무지(無知)'(곧 '아는 자-알려지는 대상') 표에서는 아는 자들과 앎의 대상들 중에서 하나가 다른 하나와 관련하여 대상이 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 범주들 중의 어느 것도 (진정한 의미에서는) 아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아는 자'이고 다른 어떤 것에 의해 알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알려지는 대상들과 관련해서만 '아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은 '알려지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와 별개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둘(아는 자와 알려지는 것)을 초월하는 실재인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아는 것-알려지는 것'의 범주 안에 들어 갑니다.
16.
제자 : 에고성, 영혼, 진아 그리고 브라만은 어떻게 식별됩니까?
스승 :
예(例) 비유돠는 것
1. 쇠공 에고성
2.달구어진 쇠공 진아 위의 덧씌움으로 보이는 영혼
3. 달구어진 쇠공 안의 불 의식의 빛, 즉 모든 육신 안의 영혼,
안에서 빛나는 불변의 브라만
4. 하나로서 남아 있는 불길 하나로서 남아 있는 일체에 두루한 브라만
이 도식에서 에고성, 영혼, 주시자 그리고 모든 것의 주시자(브라만)가 어떻게 식별되는지 분명해질 것입니다.
밀납공의 밀납 덩어리 안에 온갖 다양한 금속 알갱이가 들어 있어도 그 모두가 하나의 밀납 덩어리로 보이듯이, 깊은 잠 속에서 모든 개인적 영혼들의 거친 몸과 미세한 몸들은 순전히 어둠의 성품을 갖는 무지(無知)인 우주적 마야 안에 들어 있는데, 그 영혼들이 진아 안에 녹아들어 그것과 하나가 되기 때문에, 그들은 어디서나 어둠만 봅니다.
그 잠의 어둠 속에서 미세한 몸, 에고성이 일어나고, 그것(에고성)으로부터 거친 몸이 일어납니다. 에고성이 일어날 때에도 그것은 달구어진 쇠공처럼 진아의 성품 위에 덧씌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영혼(개아) - 마음, 곧 의식의 빛과 결합된 에고성 - 없이는 영혼을 주시하는 자, 곧 진아도 없으며, 진아 없이는 모든 것의 주시자인 브라만도 없습니다. 대장쟁이가 쇠공을 두드려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만들 때, 그런다고 해서 그 안에 있는 불기운이 어떻게 변하지 않듯이, 영혼이 아무리 많은 경험을 하고 즐거움과 고통을 겪는다 하더라도 그 안에 있는 진아의 빛은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허공과 같이 일체에 두루한 순수한 지(知)로서 하나이며, 심장 안에서 브라만으로서 빛납니다.
17.
제자 : 진아 자체가 심장 안에서 브라만으로서 빛난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스승 : 등불의 불길 속에 있는 원소 허공이 그 불길의 안과 밖을 아무런 차이 없이 그리고 아무런 한계없이 채우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듯이, 심장 안의 진아의 빛 속의 지(知)-허공은 그 진아의 빛의 안과 밖을 아무런 차이도, 아무런 한계도 없이 채우고 있습니다. 그것이 브라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 저작전집(탐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