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아무 형상도 없고,색깔도 없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시오
마하리지 : 죽음이 다가오면, 그대에게는 아무 형상도 아무 색깔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나는 니르구나(Nirguna : 속성이 없는 것)다', 이것이 그대가 마지막으로 지녀야 할 생각이오
그대는 몸을 알지만 그대는 그 몸이 아니오. 잠자리에 들 때도 그것을 기억하면서 잠에 드시오,
'수많은 오염된 잡생각들이 오고 가지만 나는 불변(不變)이다. 나는 무한하다. 나는 진리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잠자리에 들어가시오. 그러면 그런 모든 비순수한 생각들이 멀어져 갈 것이오.
마음의 노예로서 잠들지 말고 그 주인으로서 잠드시오.
이 습관으로부터 시작하여 절대적으로 초연해지고 그 마음의 주인이 되시오.
질문자 : 어떻게 하면 두려움을 근절할 수 있습니까?
마하리지 : 탄생했다는 공포를 없애야 하오. 그대는 온갖 교육을 받아 많이 배우고 여기 왔소. 나는 그대가 배운 것들과 섭취한 개념들을 제거하고 싶소. 그 개념의 음식과 지식을 얻기 이전의 그대는 무엇이었소?
이것을 깊히 생각해 보기 바라오.
질문자 : 의식이란 무엇입니까?
마하리지 : 그대의 존재성의 활동, 즉 그대가 보는 전체 세계의 움직임이오. 이 의식에는 아무 색갈이 없는데, 하나의 생명체가 있는 곳에서는 그 특정한 생명체의 색깔을 띄지만, 그 존재성이 사라지면 다채로운 생명체도 '색깔 없는 것', 곧 의식에 합일되는 것이오. 의식에는 아무 차별이 없고 모두 하나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여러가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오. 그것은 전부 지(知)이고 전부 의식이며, 아무런 크기도 없소. 그대가 오늘 느끼고 있는 그 존재성의 맛이 저 보편적 의식에 합일되면 그것은 유한한 개인의식을 갖지 않소. 그것은 어디서 온 것도 아니고, 어디로 가지도 않소.
그대 자신은 어떠한 욕망이나 목적도 없는 존재이며, 모든 현상적인 우주가 거기서 나오고, 또한 그 속으로 사라지는 저 큰 하나(Great one)인 것이오.
질문자 : 저는 <아이 엠 뎃>을 읽으면서 공부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저의 생활방식에 대해 불만을 느낍니다.
마하리지 :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내 보려고 했소?
질문자 : 아뇨, 제 생각에는 제가 저의 생명을 너무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마하리지 : 그대는 아직도 자신이 그 몸-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그래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이오.
질문자 : 그렇습니다.
마하리지 : 그대는 마음을 가지고 (그 책을)읽었소. 이제 그 책을 읽을 때마다 자신은 보편적인 의식이라고 생각하고, 그 관점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시오. 그대는 아무런 형상과 색깔이 없다는, 그대는 빛이라는 관점에서 그것을 읽으시오.
질문자 : 제가 몸도 마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습니다.
마하리지 : 읽을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고, 내가 말한 대로 그냥 해 보면 점차 일이 잘 풀려갈 것이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잘 되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얻어 맞아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만일 그대가 준비되어 있다면 그것이 풀려가겠지요. 어떤 사람들은 너무 질겨서 마치 인도 음식 뽐빠둠(반죽)과 같소. (부드럽게 하려면) 그 반죽을 많이 두둘겨야 하는데, 그래도 너무 질겨서 아주 힘을 주어 밀어야 하오. 그런 다음에 반죽을 불에 굽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힘들게 가르쳐야 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잘 준비되어 있어 듣는 즉시 받아들이 오. 어떤 사람들은 그냥 듣고 내 말에 집중하면 갑자기 어떤 폭발이 일어납니다.
몸과 마음을 붙들지 말고 저 '내가 있다'에 대해 명상해야 하오. 그대가 아기일 때 엄마 젖을 먹고 자랐듯이, 이 '내가 있다'. 즉 그대의 존재성에 대한 지(知)를 먹고 자라야 하오.
질문자 : 저는 4년 동안 '내가 있다'를 기억하면서 그 안에 머무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마하리지 : 오늘 내가 한 말대로 해 보겠소?
질문자 : 그 책을 읽으라는 말씀입니까?
마하리지 : 그대가 들은 무슨 말이든지 다 그렇게 하라는 말이오. 그대가 하나의 몸-마음이라는 느낌이 없이 그렇게 살수 있겠소?
질문자 : 저는 여기 오는 것을 겁냈던 것이 부끄럽습니다. 여기 왔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말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많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약간 걱정이 됩니다.
마하리지 : 그 두려움이 싹 없어질 것이오. 걱정이 안 될 뿐 아니라, 두려움 자체가 사라질 것이오. '내가 있다'는 앎을 먹고 자라야 하오. 이것도 기억하고 명상해 보시오. "나는 아무 두려움이 없다. 나는 두려움을 넘어서 있다"
질문자 : 저는 모든 사람에게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예를 들어 네델란드의 한 도시를 걷고 있으면 모든 사람들이 두렵습니다.
마하리지 : 내 말은 그 두려움이 점차 줄어들 것이고,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오. 나의 말은 바로 그 두려움에 대한 약처방이오.
질문자 : 속박이란 무엇입니까?
마하리지 : 마음이 바로 그대의 속박과 해탈의 토대인 것이오. 무슬림들은 사람이 죽고 나면 세계가 해체될 때까지 그 영혼이 무덤 안에 갇혀 있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그 영혼에게 음식을 바치오. 기독교에서도 사람이 일단 무덤에 묻히면 종말이 와서 심판이 이루어질 때에야 비로소 깨어날 거라고 믿고 있소.
질문자 : 그런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납니까?
마하리지 : 그런 개념을 가지고 죽으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겠지요. 왜냐하면 마음이 일체를 창조하니까요. 마음이 속박을 창조하고 마음이 해탈도 만들어 냅니다. 오늘 내가 생각할 수 없다면 내 마음이 그다지 명료하지 않은 것이오. 그것이 무슨 말이겠소? 내 음식 기운의 기능이 상당히 둔해진 것이오. 즉, 그것이 적절한 과정을 거쳐서 연소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오. 그래서 사고 기능도 둔하게 작용하는 것이오. 이 마음 기능과 작용도 몸의 기운에 속하지만, 그러나 나는 그것이 아니오.
'그대가 있고' '내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시오. 그런 감정들은 이 거친 대지의 (물질적인) 산물들이오. 대지로부터 식물이 나오고 '내가 있음'이라는 정수가 나오는데, 몸이 떨어져 나가면 그 '내가 있음'이 사라지는 것이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그것은 음식기운에서 산출된 것에 불과하니까 말이오.
-Seeds of Counsious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