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향기로운 시

[詩] 가을 일기, 그리운 나무, 벽

무한진인 2018. 10. 22. 10:45


  -가을 일기 -​


혼자 밥 먹고

혼자 놀다

책을 읽다

깜박 졸다

새소리에 깨어보니

새들은 간데 없고

가을만 깊을 대로 깊었다

나무들도 아픈가보다.​


                -김제현-






           

        -그리운 나무-


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애틋한 그 마음 가로로 뻗어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사랑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나무는 속절없이 저리도 꽃을 피고

벌 나비 불러 그 맘 대신 전하는 기라

아아,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고 

바람 불어 그 향기 실어 날려 보내는 기라.


                                   -정희성-





          

               -벽-


나는 이제 벽을 부수지 않는다

따스하게 어루만질 뿐이다.

벽이 물렁물렁해질 때까지 어루만지다가

마냥 조용히 웃을 뿐이다.

웃다가 벽 속으로 걸어갈 뿐이다.

벽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을 걸을 수 있고

섬과 섬 사이로 작은 배들이 고요히 떠가는

봄바다를 한없이 바라볼 수 있다


나는 한때 벽 속에는 벽만 있는 줄 알았다

나는 한때 벽 속의 벽까지 부수려고 망치를 들었다

망치로 벽을 내리칠 때마다 오히려 내가

벽이 되었다

나와 함께 망치로 벽을 내리치던 벗들도

결국 벽이 되었다

부술수록 더욱 부서지지 않는

무너뜨릴수록 더욱 무너지지 않는

벽은 결국 벽으로 만들어지는 벽이었다


나는 이제 벽을 무너뜨지지 않는다

벽을 타고 오르는 꽃이 될 뿐이다

내리칠수록 벽이 되던 주먹을 펴

따스하게 벽을 스다듬을 뿐이다

벽이 빵이 될 때까지 쓰다듬다가

물 한잔에 빵 한 조각을 먹을 뿐이다

그 빵을 들고 거리에 나가

배고픈 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줄 뿐이다


                            -정호승-













 



홀 ~로~


벅~ 뚜 벅~ 뚜 벅~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