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관의 형태(1)
- 번뇌의 측면에서 본 지관 수행 -
다음은 지관의 체상(體狀)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지관의 체상은 다시 두 분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우선 번뇌로 작용하는 세 가지 성품 측면에서 지관의 체상을 설명하고,
다음은 지혜로 작용하는 세 가지 성품 측면에서 지관의 체상을 밝히겠다.
번뇌로 작용하는 세 가지 성품(染濁三性)을 밝히는 데는 다시 세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 분별성(分別性)에 의거하여 <지관의 모습>을 밝히며,
- 의타성(依他性)에 의거하여 <지관의 모습>을 밝히며
-진실성(眞實性)에 준거하여 <지관의 자체 모양>을 설명하겠다.
(왜 지관의 자체 모습을 진실성에서부터 설명하지 않고 분별성에서부터 역으로 설명하는가. 지관은 직접 수행하는 방편이기 때문에 분별성을 먼저 밝히는 것이다. 즉 사물을 분별하는 성질에 의지하여 수행을 시작하고, 점차 의타성으로 깨달아 들어가면 의타성을 밝힘으로써 진실성을 깨닫게 된다. 진실성이란 우리의 청정한 마음을 지칭하는 말로서 이 진실성이야 말로 지관을 닦아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자체이다.)
1. 분별성의 측면
1) 종관입지(從觀入止)
(1) '관(觀)'을 설명
분별하는 성질의 측면에서 지관 자체의 모습을 밝히겠다. 먼저 '관(觀)'을 닦고 차츰 '지(止)'의 수행으로 들어간다.
우선 '관(觀)'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중생은 자기의 육체(五陰身)와 외부의 대상세계(六塵)를 인식(觀)할 때 낱낱의 형상에 대하여 모든 것이 다 생각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즉 '내가 지금 대하고 있는 형상이 실제(實有)가 있어 다른 형체와 서로 융합하지 못하고 장애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만 중생의 의식 속에 무명(果時無明)이 있기에 현상사물(法)이 허상이라는 이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현상사물이 허상이라는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망상을 일으켜 그것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 양 굳게 집착한다.
지금까지 중생은 의식 속에 사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굳게 집착해 왔다. '중생은 무시 이래로 항상 <오온과> 사물현상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집착해 왔기 때문에 일체 사물(境界)을 대할 때마다 탐내고, 화를 내며,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 해 갖가지 악한 업을 지어 생사의 고통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중생은 스스로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이상과 같이 관찰하는 것이 바로 '관(觀)'수행의 시작이다.
(2) '지(止)'를 설명
이와 같이 '觀'을 닦고 나서 다시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한다.
나는 지금까지 무명, 명상 때문에 <대상사물과 우리 몸을> 실제가 아닌 허상인데도 그것을 실제라고 여겨 지금까지 한량없이 윤회하면서 생사의 고통을 받아왔음을 알았다. 이제 다시 이 어리석은 허망한 마음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반드시 허망하게 분별하는 망상을 돌이켜 제법(諸法)은 오직 우리의 마음을 따라 망상으로 나타난 모습이기 때문에 이것은 허상으로써 실체가 없다고 억지로라도 관(觀)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마치 어린 아이가 거울 속에 나타난 모습을 보고 그것이 실재하는 사람인 양 사랑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거울에 나타난 모습은 그 자체의 성품이 실체가 없는 것인데, 다만 어린아이의 착각 때문에 그것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 양 생각할 뿐이다. 어린 아이가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 착각하는 순간 바로 그것은 실제가 없는 것이다. 나도 지금까지 위의 비유에서 어린 아이처럼 무명 망상 때문에 사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도 그것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 양 집착해 왔지만, 비록 내가 의식으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집착할 때라도 그것을 실제가 없는 것이다. 마치 우리의 망상에서 생겨난 상상 속의 경계(境界)는 단지 <공상일 뿐> 실제(實事)가 없는 것과 같다.
다시 우리가 주관적으로 관찰하는 마음까지도 역시 실제로 존재하느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觀) 한다. 단지 어리석은 망상 때문에 그것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 여겼지만 사실은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마음까지도 실제가 없다.
이와 같이 차례로 집착을 끊으려는 마음(後念)을 가지고 집착하는 마음(前念)을 끊어버리기를 마치 꿈 속에 일어났던 기억과 생각, 즉 사량(思量)하는 마음은 실재하는 마음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듯이 해야 한다.
이와 같이 이해하기 때문에 그 집착하는 마음을 멈추게 된다.
<이렇게 마음의 이치를 관찰해나가면 마음과 대상 경계 어느 쪽에도 집착함이 없어 망상을 쉬게 되는데> 이것을 '觀'수행을 통해서 '止'의 수행으로 들어 간다고 한다.
2) 종지기관(從止起觀)
다시 모든 현상법은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망상을 그친 자리에서> '<모든 현상법이> 실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단지 이것은 무명 망상으로 나타난 모습이구나' 하고 스스로 돌이켜 관찰하는 것을 '止'로부터 다시 '觀'으로 들어가는 수행이라고 한다.
-남악혜사 지음, 원경 번역<대승지관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