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의심하는 자가 뿌리 봅혀야 한다.
질문자 : 천상과 지옥이 있습니까?
마하리쉬 : (그런 것이 있으려면) 거기 가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들은 꿈과 같습니다. 우리는 꿈 속에서도 시간과공간을 봅니다. 꿈과 생시 중 어느 쪽이 참됩니까?
질문자 : 그래서 우리는 욕망, 분노 따위를 없애야 합니다.
마하리쉬 : 생각들을 포기하십시오. 다른 어떤 것도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것을 보려면 그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진아)입니다. 자기는 항상 의식합니다.
질문자 : 성지 순례 같은 것을 하면 좋습니까?
마하리쉬 : 좋지요.
질문자 : 진아에 도달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합니까?
마하리쉬 : '나'를 소멸해야 합니다. 진아에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 한 순간이라도 자기가 없는 때가 있습니까? 그것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존재하는 그대로 존재하십시오. 새로운 것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실재하는 것은 항상 존재합니다.
질문자 : 지혜의 제사(祭祀)등의 제사는 무엇입니까?
마하리쉬 : 다른 행법들은 그것을 위해 존재합니다. 수행은 지혜를 얻기 위한 것입니다.
질문자 : 생존해탈자들은 여러 부류입니까?
마하리쉬 : 그들은 외부적으로 다르다고 한들 그것이 뭐 중요합니까? 그들은 지혜에는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질문자 : 한 스승에게 충실하면서 다른 스승들을 존경할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 : 스승은 오직 하나입니다. 신체적인 존재가 아니지요. (제자의) 약함이 있는 한 (스승이) 힘을 지탱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질문자 : J. 크리스나무리티는 "스승은 필요없다"고 하는데요?
마하리쉬 : 그는 그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깨달은 뒤에는 그렇게 말할 수 있으나, 그 전에는 그럴 수 없습니다.
질문자 : 당신께서는 대단한 노력으로 이 상태를 얻으셨습니다. 저희같이 가련한 영혼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미하리쉬 : 우리는 우리의 진아 안에 있습니다. 세계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질문자 : 천상과 지옥, 그것은 무엇입니까?
마하리쉬 : 그대가 천상과 지옥을 가지고 다닙니다. 그대의 욕망, 분노 등이 그런 세계를 만들어 냅니다. 그런 것들은 꿈과 같습니다.
질문자 : <기타>에서 말하기를, 만일 사람이 양미 간에 주의를 기울이고 숨을 멈추면 지고의 상태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어덯게 합니까?
마하리쉬 : 그대는 항상 진아 안에 있으므로 거기에 도달한다는 것이 없습니다. 미간은 주의를 고정하는 하나의 장소 (명상의 자리)에 불과합니다.
질문자 : 당신께서는 심장을 명상의 자리라고 말씀해 오셨습니다.
마하리쉬 : 예, 그렇기도 하지요.
질문자 : 심장이란 무엇입니까?
마하리쉬 : 그것은 진아의 중심입니다. 진아는 중심들의 중심입니다. 심장은 영적인 중심을 나타내지, 신체적 중심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질문자 : '지(知)'(jnana)라는 용어는 깨달은 지혜입니다. 같은 용어가 수행법에 대해서도 사용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하리쉬 : '지(知)'는 수행법도 포함됩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가져오니까요.
질문자 : 사람은 자신의 지(知)가 아무리 불완전해도 그것을 남에게 가르쳐야 합니까?
마하리쉬 : 만약 그의 발현업(운명)이 그렇다면 가르쳐야지요. <기타> 제7장에서 아르쥬나는 끄리슈나에게 행위가 하나의 수행법이냐고 묻는데, 끄리슈나는 만일 그 행위가 '행위자라는 느낌'없이 이루어진다면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행위를 부정하는 경전들이 인정하는 행위들도 마차가지입니다. 그 경전들이 부정하는 행위는 행위자라는 느낌을 가지고 하는 행위입니다. 행위를 떠나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행위자라는 느낌을 놓아 버리십시오, 행위는 자동적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아니면 행위가 그대로부터 떨어져 나가겠지요. 만일 발현업 따라 어떤 행위가 그대의 몫이라면 그대가 그것을 의욕하든 않든 그 행위는 분명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만일 그 행위가 그대의 몫이 아니라면, 열심히 그 일을 한다해도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고대의 진인인) 자나까, 수까 등도 에고 없이 일을 했습니다. 행위는 명성을 얻기 위해 할 수도 있고, 사심없이 공익을 위해 할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사람들은 박수갈채를 원합니다. 따라서 그것도 실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질문자 : 그것을 알면 모든 의심이 해소되는 그 한 가지 것이 무엇입니까?
마하리쉬 : 그 의심하는 자를 아십시오, 의심하는 자를 붙들면 의심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의심하는 자는 의심을 초월해 있습니다. 또 의심하는 자가 존재하지 않게 되면 어떤 의심도 일어나지 않겠지요. 그 의심들은 어디서 일어납니까? 모두가 진인이고 생존해탈자입니다. 단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를 뿐입니다. 의심을 뿌리 뽑아야 하는데, 이것은 그 의심하는 자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의심하는 자는 바로 마음입니다.
질문자 :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마하리쉬 : '나는 누구인가?'가 그 탐구법입니다.
질문자 : 저희는 염송을 해도 되겠습니까?
마하리쉬 : 그대는 왜 '나는 이것이다'라고 생각합니까? 탐구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런 생각들은 종식됩니다. 존재하는 것, 즉 진아가 불가피한 잔여물로서 드러날 것입니다.
질문자 : 하타 요가는 필요합니까?
마하리쉬 : 그것은 보조 수단 중의 하나이지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할 것인가 여부는 그 사람에게 달렸지요. 탐구는 조식(호흡법)을 능가합니다. <요가 바쉬슈타>에서는 쭈달라가 시키드바자에게 에고를 죽이려면 탐구를 하라고 조언합니다. 생기나 지성을 착파하면(확고히 붙들면) 실재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하타요가는 전자이고, 탐구는 후자입니다.
질문자 :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진인에게 어떤 개인성이 있습니까?
마하리쉬 : 그가 어떻게 개인성을 보유할 수 있습니까? 흔히 보는 일이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어떤 일을 착수하기 전에 - 그것이 세간사든, 비세간사든 - 물 한모금을 마시거나 호흡을 고르라고 합니다. 그것은 마음을 집중해야 그 일을 이루어낸다는 뜻입니다.
질문자 : 저는 네띠-네띠(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다)를 명상합니다.
마하리쉬 : 아니, 그것은 명상이 아닙니다. 근원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그 근원에 도달할 것입니다. 거짓 '나'가 사라지고 진정한 '나'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전자는 후자와 별개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라마나 마하리쉬 대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