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발심(發心)과 구경(究竟)은 둘이 아니다

무한진인 2018. 8. 23. 19:59


상근상지인(上根上智人)이라면 반야바라밀을 설함을 듣고 곧바로 받아들여 능히 설한 바대로 수행할 것입니다.

중근이(中根人)이라면 비록 아직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부지런히 질문하며 배워간다면 또한 ( 그 법에)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근인(下根人)은 단지 지극한 믿음으로 물러섬이 없다면 당래(當來)에 또한 능히 대승의 십신위(十信位)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단지 도를 수학하면서 망(妄)을 없애고 정(淨)을 취하는 행은 더러움으로 인한 정(淨)이지 본연의 청정이 아닙니다.

<대반열반경>에 설하길, <비유컨대 때 묻은 수건을 깨끗이 하는 데는 먼저 잿물을 바르고 그 후에 깨끗한 물로 씻어내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비록 깨끗함을 얻었다 하더라도 아직 깨끗함이라고 이름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러한가? 이 청정은 더러움으로 인하여 얻어진 청정인 까닭이니 오히려 여전히 부정(不淨)한 것입니다.

<유마경>에 설하되, <더러운 행도 아니고, 청정한 행도 아닌 것, 이것이 보살행이다>고 하였습니다.

지식(人)들이여 ! 용심(用心)하지 않고 있는 때에 만약 망념이 일어나 사념이 왔다 갔다 하더라도 이를 잡아서 지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러한가? 마음을 밀쳐내는 것이 이미 병이니 잡아당겨서 지키는 것도 또한 병이어서 (마음을) 가게 하고 오게 함이 모두 다 병인 것입니다. 경에서 설하되, <모든 법이 오고 감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법성이 어느 곳에나 두루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오고 감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망념이 일어나면 곧 생각(覺;知覺)이니 생각이 멸하면 곧 본성인 머무르지 않는 마음입니다.

유(有)와 무(無)가 모두 함께 버려지고, 경계와 지(智: 사물에 대한 分別智 또는 분별하는 者)가 모두 사라집니다.

생각을 짓지 않으면 곧 자성보리(自性菩提)입니다.

미세한 마음이라도 이를 가지고 어떻게 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본체가 텅 비어 고요한지라 일물(一物)도 얻을 수 없으니 이를 이름하여 아누보리(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上正等覺)의 줄인 말)라고 합니다. <유마경>에 설하길, "무주(無主)를 본(本)으로 하여 일체법을 세운다"고 하였습니다. 보살광(菩薩光)과 계광(戒光)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자성(自性)이 공적(空寂)함에 형상(形相)이 없습니다.

(初)발심과 구경(窮極)은 둘이 아닌데

이러한 이심(二心) 가운데 앞의 마음(發心)이 어렵네​

자신이 아직 해탈하지 못하였는데 남을 먼저 제도하고자 함이니

이 까닭에 초발심에 경례하네.

초발심하였으면 이미 천인의 스승이라,

성문(3乘行者)과 연각(2乘行者)보다 뛰어나네.

이와 같이 발심함은 삼계를 넘어서나니

이 까닭에 최무상(最無上)이라 할 수 있는 것이네.

제자들은 물어보면 숨기고 말하지 않으나 저는 이 문에서 전혀 그러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이든 적은 사람이든 물어보면 누구에게나 모두 두루 설해 줍니다.

스승이 있는 곳에서 가르침을 받고 선법을 얻었다면 배운 바를 각자 잘 다스리되 오직 그 마음에서 통해야 합니다.

만약 마음에서 득통한다면 일체 경전의 의(義)가 통하지 않는 것이 없게 됩니다.

부처님의 재세(在世)시에도 또한 상주하의 중생들이 부처님께 투신하여 출가하였습니다. 과거 제불께서 설법하심은 모두 팔부중(八部衆)을 상대로 해서 설한 것이어서 사설(私說)이 아니고, 훔쳐서 설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비유컨대 해가 정오에 있을 때 비추지 않는 곳이 없고, 용왕이 비를 내림에 평등 무이(無二)하여 모든 초목이 생류별로 윤택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제불의 설법하심도 또한 이와 같아 모두 평등심에서 설하시며, 무분별심에서 설하시는데 상중하의 중생들은 각자 받아들여 이해합니다. 경에서 설하되, <부처님께서는 일음(一音)으로 법을 설하시나 중생들은 부류별로 각자 이해한다>고 하였습니다.

지식인들이여 ! 반야바라밀을 배우려거든 반드시 널리 대승경전을 읽어야 합니다. 여러 선(禪)을 가르치는 이들을 보건대 돈오를 허용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방편을 거치도록 해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그야말로 하품(下品)의 견(見)입니다. 밝은 거울로써 얼굴을 단정히 할 수 있고, 대승경전으로써 정심(正心)할 수 있다는 것은 제일의 의심할 나위 없는 사실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삼업(三業)을 청정히 해야 비로소 능히 대승에 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돈문(頓門)은 오직 여래(如來)의 설(說)에 의거하는 것이며, 수행하면서 반드시 서로 기만해서는 안되고, 부지런히 공부에 힘써야 합니다. 의문이 있는 분은 와서 물어보길 바랍니다. 잘 가십시오 !

                                         - 박건주님 역해<남양화상돈교해탈선문직료성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