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의 금강삼매경론 총지품 게송 몇편
[금강삼매경문]
지장보살이 말하였다.
"존자이시여, 이와같은 법은 곧 인과 연이 없습니다. 만일 연의 법이 없다면 인이 곧 일어나지 않으니, 어떻게 움직이지 않는 법으로 여래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地藏菩薩言 尊者 如是之法 卽無因緣 若無緣法 因卽不起 云何不動法 入如來?
이때에 여래께서 이 뜻을 펴기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일체의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은
자성이 공적하여 움직이지 않으니
그 법은 현재 여기에 있다 하더라도
현재 여기서 일어나는 바 없고,
그 법은 과거,미래가 없으므로,
과거,미래에도 일어나는 바 없네.
그 법은 동(動)과 부동(不動)이 없으므로,
자성조차 공적하여 적멸하다네.
자성이 공적하여 적멸한 이 경우
그 법은 이 현재 여기에 드러나네,
상을 떠났기 때문에 적멸에 머물며
적멸에 머물기 때문에 연(緣)도 따르지 않네."
爾時如來 欲宣此義 而說偈言
一切諸法相 性空無不動 是法於是時 不於是時起
法無有異時 不於異時起 法無動不動 性空故寂滅
性空寂滅時 是法是時現 法無動不動 性空故寂滅
性空寂滅時 是法是時現 離相故寂住 寂住故不緣
[원효금강삼매경론]
이하는 의심할 바를 여래께서 그대로 해결해 준 대목이다. 그 평등하고 부동하여 여래장에 들어간 뜻을 선설한 것이다. 전체 여덟 게송에는 두 부분이 있다.
첫째로 앞의 세 게송은 간략한 설명이다.
둘째로 뒤의 다섯 게송은 자세하게 신설한 것이다.
첫째에도 두 부분이 있다.
첫째에 해당하는 앞으로 두 게송(첫째,두번째줄)은 부동의 뜻을 설명한 것이다.
둘째로 뒤의 한 게송(셋째줄)은 여래장에 들어간 뜻을 드러낸 것이다
첫째에도 세부분이 있다.
첫째는 표(標)한 것이다
줄째는 해석(釋) 한 것이다.
셋째는 결론(結)지은 것이다.
말하자면 제일구와 제이구는 부동의 뜻을 표한 것이다. 다음의 제삼구부터 제육구까지는 부동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그 법은 현재 여기에 있더라도 현재여기에 일어나는 바 없고"에서 "현재 여기에 있더라도"는 말하자면 '이 세상'을 가리킨다. '이 세상'은 곧 현재이다. '현재'의 시간은 영원히 잠시도 머물지 않고, 과거와 미래를 떠나서 그 중간 곧 현재는 없다. 마치 빛과 그림자를 떠나서 중간의 도리가 없는 것과 같다. 때문에 현재라 해도 일어나는 바가 없다.
"그 법은 과거 미래가 없으므로 과거 미래에 일어나는 바 없다"에서 "과거 미래(異時)"는 소위 과거와 미래이다.
미래는 아직 유(有)가 아니므로 무기(無起)의 뜻이고, 과거는 이미 없으므로 또한 무기(無起)의 뜻이다. 이런 도리로 말미암아 모든 법은 기동이 없다.
이미 생기(生起)하는 동(動)도 없고 또한 항주(恒住)하는 부동도 없다. 때문에 " 그 법은 동과 부동이 없으므로 자성조차 공적하여 적멸한다"라고 말한다. 곧 이 제칠구와 제팔구의 두 구는 부동의 뜻을 결론지은 것이다.
다음으로 둘째에 해당하는 한 게송(여덟 게송가운데 제삼의 게송)은 여래장에 들어가는 뜻을 설명한 것이다.
"자성이 공적해 적멸할 그 때"는 자성이 공적함을 요견하여 자성이 적멸할 때로서 부동한 법이 현현한 경우를 말한다. 그것이 마음에 현현하므로 여래장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상반의 이 두 구(제구구와 십구)는 여래장에 들어간 뜻을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제법이 일체상을 떠나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제상을 떠나 있으므로 적정하게 머물고, 적정하게 머물기 때문에 늘상 반연을 따르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비록 여래장에 들어가 있을지라도 반연을 떠나 있다는 뜻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하반의 두구(제십일구와 제십이구)는 반연의 뜻을 떠나 있음을 드러낸다.
[금강삼매경문]
곧 인연(緣) 통하여 일어난 모든 법,
이 모든 법의 인연(緣)은 발생하지 않는다네.
인(因)과 연(緣)은 생멸(生滅)작용이므로 본래 없나니,
생(生)하고 멸(滅)하는 성품은 공적(空寂)하다네.
연의 자성 그리고 능연(能緣)과 소연(所緣)은
본래 반연(攀緣)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네.
이 때문에 법의 생기(生起)도 연은 아니며,
반연이 생기하지 않는 것도 또한 그렇다네.
인연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모든 법은
그 모든 법은 비록 인연이지만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습
그 모습의 자성은 생(生)과 멸(滅)이 없네.
是諸緣起法 是法緣不生 因緣生滅無 生滅性空寂 緣性能所緣 是緣本緣起
故法起非緣 緣無起亦爾 因緣所生法 是法是因緣 因緣生滅相 彼卽無生滅
[원효금강삼매경론]
이하는 둘째로 자세하게 신설한 대목이다. 여기에 두 부분이 있다.
첫째는 앞의 세 게송(여덟 게송 가운데 제사.제오, 제육 게송)은 부동의 뜻을 자세하게 신설한다.
둘째는 뒤의 두 게송(여덟게송 가운데 제칠,제팔 게송)은 여래장에 들어간 뜻을 신설한다.
첫째에도 또한 두 부분이 있다.
첫째는 말하자면 앞의 두 게송은 근본을 추구해도 터득할 수 없다는 것으로써 부동을 드러낸다.
둘째는 뒤의 한 게송은 지말을 좇아도 터득할 수 없다는 것으로써 부동을 드러낸다.
첫째 가운데 세 부분이 있다.
말하자면 첫째는 표한(標) 것이다.
둘째는 해석한 것이다.
셋째는 결론 지은(結) 것이다.
처음에 말한 "곧 인연을 통하여 일어난 모든 제법의 인연은 발생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모든 과법은 그 반연이 불생임을 표한 것이다.
그 다음의 네 구절(인과 연은 생과 멸로 본래 없으니, 생하고 멸하는 성질은 공적하다. 연의 자성과 능연 및 소연은, 본래 반연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는 불생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인과 연은 생과 멸로 본래 없으나" 라는 것은 모든 인연은 생멸로서 머물지 않기 때문에 과의 공능을 발생시키지 못함을 설명한 것이다.
"생하고 멸하는 자성은 공적하다"는 머물지 않으므로 생멸도 없고 자성이 공적하므로 또한 과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연의 자성 그리고 능연 및 소연은"이란 인연으로서의 종자(種子)가 감추어져 있는 것을 자성이라 말하고, 증상연으로서의 근은 경곌르 능대(能對)하므로 능연이라 말하고, 소연으로서의 경계는 근의 소대(所對)아므로 소연이라 말한다. 차제연(次第緣; 心과 心小法이 차례대로 무간상속하는 발생과 소멸을 말함)은 제법의 연멸에 해당하므로 더 이상 논하지 않겠다. (여기서는 불생의 측면에서만 설명하는 대목이므로 차제연의 연멸을 말함)
이와 같이 종자의 자성과 연 및 그 능연과 소연은 모두 본래 반연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 본래 반연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곧 근본이 된다. 그 밖의 모든 연은 또한 앞의 설명과 같이 생멸의 자성이 공적하므로 발생의 작용이란 없다. 이와같은 세 가지 뜻(종자가 공적하고, 본래 연이 공적하며, 능연과 소연이 공적하다는 것)을 말미암아 반연은 곧 무생의 뜻이다.
"이 때문에 법의 생기도 연도 아니고" 는 과법의 발기는 반연으로 발생한 바가 아님을 결론 맺은 것이고, " 반연이 생기지 않음도 그렇다네"는 반연의 무기(無起)도 또한 그와 같다는 것을 결론 맺은 것이다.
다음의 한 게송(여덟 게송 가운데 제육의 게송)은 둘째로 지말을 좇아도 터득할 수 없다는 것으로서 부동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인연을 말미암아 발생하는 제법은 그 모든 법은 곧 비록 인연이지만" 은 모든 과법도 또한 인연이 됨을 설명한 것이다.
과법은 뒤에 발생하는 제법에 대하여 그 반연이 되기 때문이다. 곧 모든 과법은 이미 그 인연이 되어 있음은 앞에서 설명한 "생하고 멸하는 자성은 공적하다네" 의 경우와 같기 때문에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습 그 모습의 자성은 생과 멸이 없다네"라고 말한다.
위에서 간략하게 설명한 대목( 제일,제이,제삼 게송)에서는 그대로 과(果)의 공적함에 대해서만 드러냈다. 그러나 지금 자세하게 선설하는 대목(제사의 게송부터 제팔의 게송까지)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인연의 설법에 대하여 제법의 인과가 부동한 즉 그것이 곧 평등보리의 도리이다. 그러므로 이 법 이외에 별도로 보리를 추구하지 얺음을 드러내려 한 것이다. 이것이 말하자면 이 게송의 대의이다]
승조법사는 "도가 어찌 멀리 있겠는가, 부딪치는 것이 모두 진리이다. 성스러움이 어찌 멀리 있겠는가. 그것을 체득하면 곧 신통이다"고 말한다.
[경문]
저 진여의 진실한 모습은
본래 나타나고 숨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모든 법의 경우
스스로 나타나고 숨을 뿐.
이에 지극히 청정한 근본은
본래 여러가지 힘에 의하여 영향받지 않네.
곧 (수행하여) 뒤에 터득한 그 자리에서
본각의 도리를 또 터득하네.
彼如眞實相 本不於出沒 諸法於是時 自生於出沒 是故極淨本 本不因衆力
卽於後得處 得得於本得
[원효금강삼매경론]
이 두 게송은 여래장에 들어간 뜻을 신설한 대목이다. 여기에 세 부분이 있다.
첫째로 한 게송은 모든 기동에 대하여 진여의 부동을 드러낸다.
둘째로 두 구( 둘째 게송의 제일구와 제이구)는 부동은 본래 뭇 반연에 대대(對待)하지 않음을 설명한다.
셋째 두 구(둘째 게송의 제삼구와 제사구)는 반연과 제법을 떠나 여래장에 들어간 뜻을 설명한다.
" 후에 터득한 도리에서"는 말하자면 도를 닦은 후의 경지이다. 제 앞의 간략하게 설명한 대목에서 말한 "적멸한 그 때"는 곧 여기에서 말한 "후에 터득한 도리에서"에 해당한다. 이미 적멸한 경지인데 어찌 처소(處)와 시제(時)가 있겠는가. 단지 처소와 시제를 떠나 있는 까닭에 그 처소와 시제에 의거했을 뿐이다.
" 본각의 도리 또 터득하네"는 시각(始覺)이 완성된 까닭에 "터득하네" 라 말하는데 이것은 능득(能得)이다. 시각이 완성되면 다시 본각과 동일하기 때문에 "본각의 도리"라고 말한다.
이상으로 저 여래장품의 셋째의 의심을 없앤 대목을 마친다.
-원효지음 <금강삼매경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