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寂滅)이 보리(菩提)이다
지식들이여 ! 자신의 몸 가운데 불성이 있으나 아직 명료하게 보지 못합니다. 왜 그러한가?
비유컨대 이곳에서 각자 가내(家內)의 주택과 의복, 와구(臥具) 및 일체의 물품들을 헤아려 보고 모두 있다는 것을 알아서 다른 의심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이를 이름하여 지(知)한다 하고 견(見)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만약 집에 가서 위에서 말한 물품들을 본다면 바로 견(見)이라 하고 지(知)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지(知) 한다는 것은 모두 다른 것에 의지하여 말하는 것이어서 몸 가운데 있는 불성이 있음을 알아도 아직 명료하게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역주 ; 여기서 직접 체험함이 견(見)이고, 남의 말을 듣거나 생각으로 미루어 아는 것은 지(知)이다.)
단지 생각을 짓지 아니하고, 마음 일어남이 없으면 이것이 참다운 무념입니다.
필경에는 견(見)이 지(知)를 떠나지 아니하고, 지(知)가 견(見)을 떠나지 않습니다.
일체 중생이 본래 무상(無相)입니다. 지금 상(相)이라 하는 것은 모두 망심(妄心)입니다.
마음이 무상이면 곧 그대로 불성입니다.
만약 생각을 지어서 일어나지 않게 한다면 이는 식정(識定)이고, 또한 이름하여 법견심자성정(法見心自性定)이라 합니다.
마명(馬鳴)이 이르길, [만약 중생이 무념을 관한다면 불지(佛智)가 된다<원경문은 불지(佛智)에 향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때문에 지금 설하는 반야바라밀은 생멸문으로부터 진여문에 돈입(頓入)하는 것입니다.
다시 앞을 비추어 보고 뒤를 비추어 보는 행이 없고, 멀리 바라보거나 가까이 바라보거나 하는 모든 이러한 마음이 없습니다. 제7지(第七地) 이전의 보살은 모두 다 어긋난 것입니다. 오직 불심을 가리켜서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경에서 이르길, [마땅히 여법(如法)하게 설하나니 입으로 보리라 설하나 마음에 머무르는 곳이 없고, 입으로 보살이라 설하나 마음은 오직 적멸할 뿐이며, 입으로 해탈이라 설하나 마음은 묶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여러분들의(지식들의)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아시겠습니까? 모르겠습니까?
답하되, "알겠습니다."
<보살경>에서 설하길,
[이것이 제일의(第一義)의 공(空)이다. 삼처(三處)가 모두 공(空)하다면 곧 본체가 텅 비어 고요함(空寂)이다. 중도(中道)라 하더라도 또한 그 가운데 있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중도의 의(義)는 변(邊)에 인하여 세운 것입니다. 이를테면 세 손가락과 같아서, 양변(兩邊, 양편의 손가락)이 있어야 비로소 가운데 손가락을 세울 수 있습니다. 만약 양쪽의 손가락이 없다면 가운데 손가락 또한 없습니다.
경에 이르길, [허공에는 중간과 변두리가 없다. 제불(諸佛)의 신(身)도 또한 이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제불의 해탈법신(法身)도 또한 허공과 같이 중간과 변두리가 없습니다.
지식들이여 ! 반드시 항상 이와 같이 알아야 합니다.
이제 무상(無上)의 도법을 여러분께 분부할 것이니 이 말을 잘 받아들인다면 육바라밀과 항아사 제불의 팔만사천 제삼매(諸三昧)가 일시에 여러분들의 신심에 흘러들어 갈 것입니다.
<유마경>에 설하길, [보리는 몸으로 얻을 수 없고, 마음으로 얻을 수 없다. 적멸이 보리이나니 모든 상을 멸한 까닭이다]고 하였습니다. '몸으로 얻을 수 없다'는 것은 마음이 밖에 있지 않음을 말하고, '마음으로 얻을 수 없다'는 것은 몸이 안에 있지 않음을 말하며, '적멸이 보리이다'는 것은 (안과 밖의) 중간에는 처소가 없음을 말하고, '모든 상을 멸했기 때문이다'는 일체의 망념이 생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지식인들이여 ! 마땅히 이와 같이 운용하십시오.
-박건주님 역주 <남양화상돈교해탈선문직료성단어>-